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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과 달리 제멋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 일침을 놓고 싶거나 저항하고 싶을 때 그리고 그에 머무르지 않고 당당히 맞서 '대항'하려 할 때 우리는 문득 주춤하게 된다. 무엇부터 또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몰라 어색한 모습으로 주위를 둘러보게  된다. 나름대로 '이건 아니다'는 생각을 하더라도 실제로 그것을 표현하려면 의외로 표현 방식과 수단을 찾는 일에 어려움을 겪곤 한다. 가만 보면,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 사이에는 의외로 넓은 틈이 있다.

 

<反자본주의>(사이먼 토미 지음/유토피아 펴냄)를 보면서, '시장독재와 싸우는 사람들'을 보면서, 제멋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선뜻 '아니다'를 외치고자 할 때는 급작스럽게 떠오르는 생각대로 무조건 행동하기보다는 먼저 할 일이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것은, 잠시 주위를 둘러보면서 내 머리와 입술을 감도는 수많은 의구심들이 세상 어디쯤에 자리 잡고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말인즉슨, '아니다'에도 여러 가지가 있으므로 '아니다'를 외치려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꼭 되짚어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아니다'를 외치는 목소리는 어느 순간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를 외치는 허무한 목소리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처절한 외침이 어이없게도 한 사람 또는 몇몇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내뱉는 철없는 투정으로 비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양한 반자본주의 운동들, 21세기에는 모여서 말해볼까?

 

"'초보자'라는 말을 진지하게 생각해보게 된 건 출판사의 요구에 맞춰 작업하기 위한 것도 있지만, 그 개념이 반자본주의처럼 '정치적' 주제에서는 모호해지기 일쑤여서이기도 하다. '초보자'는 수동적일 수도, 능동적일 수도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단순히 반자본주의에 관한 좀더 많은 것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일 수 있다. 반자본주의 운동이 왜 일어났으며 거기에 누가 참여하는지, 반자본주의 운동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말이다. 아니면 '무언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저항과 운동들을 '좀더' 찾으려면 어디부터 봐야 할지 자문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다행히도, 이 책은 이러한 두 갈래의 초보자를 모두 겨냥했다. (중략)

 

그렇다 해서 이 책을 통해 '올바른' 방향을 제시하겠다는 건 물론 아니다. 이 책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이 토픽에 관심이 있다는 초보자들에게 관련된 문제의 지형도를 제시하는 데 있다. (…) 다시 말해 이 책은, 전지구적 불평등을 폭로하기 위한 새로운 탐색이나 현장의 활동상을 보여주는 것과는 무관하다. 여러 문제와 입장, 대안들을 둘러보는 것, 이게 바로 내가 의도하는 바다."(<反자본주의: 시장독재와 싸우는 사람들>, 서문, 17-18)

 

'아니다'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고 했던가. 그래, 그래서 사이먼 토미(Simon Tormey)처럼 "여러 문제와 입장, 대안들을 둘러보는 일"을 새삼 중요하게 여긴다면 2004년에 세상 빛을 보고 한국에는 2007년에 발을 디딘 이 책을 다시 들여다볼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게다. 이곳저곳에서 '아니다'를 드높이는 이때에 그 다양한 목소리들 어디쯤에서 '아니다'를 외치는지를 물어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사이먼 토미가 말하는 '초보자'란 이렇듯 '새내기'를 말한다기보다 세상과 자신을 차근차근 되짚어보는 일을 도와줄 이를 찾는 이들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는 목차가 잘 말해준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태어나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1장), 반자본주의 운동의 흐름은 어떠했는지(2장), 반자본주의 운동들이 얼마나 다양하며 또 어떻게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서로 다른' 목소리를 담아낼 수 있는지(3,4장), 반자본주의 기치를 내건 목소리들이 국제사회 변화와 맞물려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5장) 살펴보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의외로 중요한 부분은 한국어판 후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지은이는 이 부분에서 새 세기 들어 생긴 중요한 국제 사회 변화들을 언급하면서 그런 변화들이 대안세계화 운동들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말했다. 독자들은 한국어판 후기부터 읽고 본문을 읽어보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겠다.

 

"3장에서 밝혔다시피, 반자본주의 '운동'을 하나의 단일한 운동으로 규정하는 데는 상당한 난점이 있다. 문제의 '운동'이란 사실상 '운동들의 운동'이기 때문이다. 일부는 민족국가나 몇몇 지역의제 차원의 이해에 결박돼 있는 반면 다른 일부는 그 범위와 지향에서 진정 '지구적' 면모를 갖춘 가운데, 그야말로 백화제방의 사상 조류와 집단, 조직들이 변화무쌍하니 교차·분기하는 '아상블라주'인 셈이다. 한편에는 뚜렷한 이데올로기적인 목표가 있는 그룹이, 다른 한편에는 당장의 불의에 맞서 싸우거나 이를 바로잡으려는 그룹이 있으며 세상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별다른 견해가 없는 그룹도 있다."(같은 책, 5장, 255)

 

지은이는 오늘날 반자본주의 운동들이 각각 어떤 특징을 보이며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말하기 위해서는 "지구정치 체제에서 미국이 누리는 위상에 관한 것"과 "세계화의 진전으로 대응이 더 힘겨워진 자본의 지구적 유동성"이라는 외부 요인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두 가지 외부 요인들을 다룰 때 이를 "운동 내부의 역학관계와 집합적 행동의 문제"와 별도로 다루어야 한다고도 말했다. 지은이가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는지를 새삼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말이다.

 

'철의 장막'이라는 말을 낳았던 시대를 떠올리면 알 수 있듯, 세상을 단 두 가지 형태로 나누던 시대가 있었다. 그리고 '철의 장막'으로 세상을 양분하던 논리가 무색해진 이후 세상은 어느덧 '미국 일방주의'마저 이미 훌쩍 넘고(또는, 넘고자 노력하면서) '다자주의'를 주장하는 시기까지 이르렀다. 이 책을 통해 사이먼 토미(Simon Tormey)가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를 되물어보았을 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다양한 목소리를 환영하면서 동시에 '함께' 행동하는 것 역시 환영하는 시대에 수많은 반자본주의 운동들이 어떻게 '같은' 공간에서 '다른' 목소리들을 내며 '함께' 행동할 수 있는지를 자신을 비롯해 우리 모두에게 묻고 싶었으리라고.

 

"새로이 거듭난 반자본주의 운동이란, 목소리와 현전의 정치이자 대화와 소통의 정치이고, 저마다의 구상과 꿈을 함께 나누며 구체화하는 정치인 셈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낡은 간판을 달고 있지만 전에 없이 새로운 유형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말하자면 대표와 엘리트들의 민주주의가 아닌, 다채로운 무늬를 지닌 민중들의 민주주의다. 다시 말해 정치적인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그리고 모든 걸 왜소한 소비욕망으로 동일화하려는 시장과 그 옹호자들하고의 화해불가능한 차이에 우선순위를 두는 전복顚覆의 민주주의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새로운, 그러니까 21세기를 맞이하는 반자본주의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같은 책, 한국어판 후기, 328)

덧붙이는 글 | <反자본주의: 시장독재와 싸우는 사람들> 사이먼 토미(Simon Tormey) 지음. 정해영 옮김. 유토피아, 2007. 지은이는 각 장 끝에서 적잖은 '읽을거리'와 누리집을 소개하고 있다.


반자본주의 - 지식발전소 01

사이먼 토미 지음, 정해영 옮김, 유토피아(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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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자본주의#사이먼 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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