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광란은 끝났다"라는 광고를 몇몇 수구세력들이 크게 냈다. 핵을 가진 북한과 "한판 붙자"는 것이 아니라면, 과거 10년간 한반도 평화를 보장해 준 6.15남북공동선언을 원점으로 되릴 것을 주장한다는 것은 북한과 전쟁하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국민의 절대 다수는 북한과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북한과 전쟁이 나면, 한반도는 방사선 오염으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으로 변한다. 남북 모두의 공멸이다. 한반도 뿐 아니라 극동 전체가 핵전쟁의 참화에 끌려들어갈 위험성이 농후하다. 이런 사정을 알기나 하고 "북한과 한판 붙자"고 떠드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방부는 북핵에 대비하여 지하에 방어시설을 구축하고 선제공격을 포함한 국방계획을 발표했다. 국방부가 구축하는 지하 방어시설에 숨을 수 있는 사람은 그 정보를 미리 알 수 있는 극히 일부의 정부 고위 관계자들뿐이다. 그렇다면 북핵 방어 용 지하시설은 정부 고위층만 살아남기 위한 시설인 셈이고, 일반 국민은 북한의 핵공격의 위험에 노출된 채 방치된다는 엄첨난 결과를 가져온다.
국방계획을 입안한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런 논리적 인과관계를 알고서 그런 계획을 발표하지는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핵무기의 위력에 비추어, 논리적으로 북핵 방어시설이 정부고위층만 살아남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받을 소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 국민의 안전은 아랑곳 하지 않고 고위층만 살아남으려고 국방비를 사용하려고 하는 꼴이라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없다.
가장 확실한 국방은 전쟁을 방지하고 평화를 보장하는 것이다. 6.15남북공동선언은 남북의 평화공존의 가능성을 열었다는 데 역사적 의의가 크다. 이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북한이 가까운 시일 안에 붕괴된다면 모르지만, 그럴 가능성이 희박다면, 일부 수구단체처럼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맞서 전쟁을 선동한다는 것은 상식에서 벗어난 일이다.
북한이 내부분열로 망하든가 굶주림에 지친 민중이 폭동을 일으켜 붕괴하는 것을 기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런 가능성은 지금으로선 거의 없다. 그렇다면 북핵문제는 협상을 통한 해결의 길 이외에는 해결될 가능성이 없다. 시간을 끌면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결과가 될 우려가 있다.
미국은 북한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임으로, 북핵에 의한 위험성 측면에서는 한국이나 일본에 미치지 못한다. 북한이 핵을 갖고자 한 것은 미국 정보국장의 말대로 공격용이라기보다는 체제 옹호용이며, 협상용이라고 보는 사람이 많다. 미국은 느긋하게 븍한을 대할 수 있지만, 북한 미사일의 사정권에 노출된 한국과 일본은 미국과 같이 느긋하게 대할 처지가 아니다.
한국과 일본의 입장에서 가장 바람직한 북핵 문제의 종착점은 북한의 안전보장을 국제공조를 통해 확실하게 약속하고,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고, 한반도와 일본을 확실하게 비핵지대화하고, 지금 당장은 어려울지라도 한반도와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의 철수일정을 분명하게 국제적으로 약속하고, 한반도와 일본의 중립화를 국제적으로 확고하게 보장하는 등, 북한에 대한 안보 위협요소들을 완벽하게 제거해 주면서, 북한이 그 동안 계속 말해온대로 핵무기를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닐 것 같다.
북한이 내부적으로 붕괴하거나, 국제적 압력에 굴복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면, 시간을 끌면 끌수록 핵을 포기하는 데 대한 대가만 늘어나게 된다. 어차피 협상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 이외에 다른 해법이 없지 않은가?
협상을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것이 한국을 위해서도 유리하다. 미국이나 일본 쪽만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은 외교적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사태를 막연하게 희망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금물이다. 냉철한 실리의 추구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미국이나 일본 만 뒤쫓아 가면 어느 날 갑자기 '닭쫓던 개' 꼴이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중국과 미국이 수교할 당시에 그렇게도 치열하게 대립하던 미국과 중국이 어느 날 갑자기 동반자 관계로 돌변하여 일본과 한국이 발칵 뒤집혔던 과거의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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