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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미국은 워싱턴, 도쿄, 베이징 사이의 고위급 회담을 요구해야만 한다.… 미국-중국-일본의 전략적 정상회담은 중국을 도전자가 아니라 협조적이고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끌어낼 수 있다"

 

지난달 26일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 문제를 총괄하는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로 인준된 커트 캠벨이 지난해 6월에 쓴 'The Power of Balance: America in Asia'(힘의 균형: 아시아에서의 미국)의 한 구절이다. 그는 자신이 소장인 미국 신안보센터(CNAS)에서 이 보고서를 냈다.

 

 커트캠벨 등이 2008년 6월에 '신안보센터'에서 낸 보고서 표지
커트캠벨 등이 2008년 6월에 '신안보센터'에서 낸 보고서 표지 ⓒ 황방열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 국방부 아태담당 부차관보를 지낸 캠벨은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부소장으로 활동하다가 2007년에 CNAS를 세운 뒤 대선후보 시절의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게 아시아 정책을 자문했다. 민주당 경선이 끝난 뒤에는 오바마 진영에 합세한 미국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인물이다. CNAS는 최근 오바마 정부 대외정책의 산실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신안보센터 보고서 2개... 작성자들은 오바마 정부 외교라인 핵심으로

 

이 보고서는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은 상황에서 차기 대통령이 가야 할 외교안보정책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 캠벨이 그의 동료 2명과 함께 쓴 글이다.

 

그는 "미국은 (아시아에서) 3자(미중일)협력을 통해 미국의 전략을 확대시켜야 한다"면서 이를 위해, 우선 3자간의 고위급 회담(high level meeting)을 만들고 이를 3자 정상회담(U.S.-Sino-Japan strategic summit)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구상을 내비쳤다. 이렇게 해서 중국을 '도전자'가 아닌 '건설적인 협조자'로 끌어내자는 것이다. 전 세계 GDP의 40%를 차지하는 3국의 정상회담 협의체를 만들자는 그랜드 디자인이다.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의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하고 있을까.

 

CNAS가 한 달 뒤인 2008년 7월에  낸 'Strategic Leadership'(전략적 리더십: 21세기 국가안보전략을 위한 프레임워크' 보고서에서 이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캠벨을 비롯해 현  국무부 부장관인 제임스 스타인버그, 유엔대사 수전 라이스, 국무부 정책기획국장인 앤 마리 슬로터 등이 함께 쓴 이 보고서 역시 차기 미국 대통령의 외교안보정책을 조언하는 것이었다. 이들은 현재 오바마 행정부의 미국 외교안보정책의 핵심담당자들이다.

 

보고서는 동아시아를 세 가지 틀로 나누면서 미국은 이들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미중일 3자협의(trilateral-U.S.-Japan-China),  동북아시아 하위 협력 구조(sub-regional, Northeast Asian cooperation building off of the six-party framework), 아세안국가들과 동아시아 국가들 사이의 정상회담과 같은 지역적 협의 포럼(regional fora-ASEAN Regional Forum and East Asia Summit)  등이 그것이다.

 

세 가지 틀을 위계적인 것으로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미중일 3자협의를 상부구조로, 6자회담은 그 하부구조로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년이 지난 지금 이들의 구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 유력지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지난 6월 28일 "미국과 중국, 일본 등 3개국이 정책협의를 위한 정기 대화의 틀을 발족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신문은 "3개국은 일단 국장급 대화를 가진 뒤 이를 차관급으로 격상할 방침"이라며 "이들 3개국이 정기 대화의 틀을 발족하려는 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해서는 미·일 동맹뿐 아니라 중국의 역할이 상당히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면서 "중국도 미국, 일본과의 협의 채널 강화를 통해 인도, 러시아 등을 견제하려 하고 있다"고 전했다.

 

3자협의에 미국은 앤 마리 슬로터 국무부 정책기획국장, 중국은 러위청 외교부 정책기획국장, 일본은 벳쇼 고로 외무성 종합외교정책국장이 참석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슬로터 국장은 'Strategic Leadership' 보고서의 공동작성자라는 점에서, 자신의 구상을 실천하기 위해 직접 나서는 셈이다. .

 

앞서 6월 7일에도 일본의 교도통신이 비슷한 소식을 전했다. 미중일 3국의 새로운 대화틀이 동아시아의 핵심적인 다자포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는 한편,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이 3자협의의 의제에서 '원칙적으로' 북한 관련 문제들을 제외하겠다며 한국의 양해를 구하고 있다고 전했다.

 

"2007년에도 움직임 있었으나 한국 반대로 무산"

 

미중일 '3자협의' 구상은 이번에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청와대 정책실장과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낸 송민순 민주당 의원은 "2006년과 2007년에 6자회담에서 주변화되는 것을 우려한 일본의 희망과 미국 내 일부의 동조로 미중일협의체를 만들자는 움직임이 있었다"면서 "그러나 당시 우리 정부가 미국에게 강력한 반대의사 즉, '한국이 없는 데서 한국 문제를 논하지 말라'는 뜻을 전달하면서 무산됐었다"고 전한다.

 

이명박 정부도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지난 2일 내외신 정례브리핑에서 '미중일 3자협의의 의제와 한국과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 "그동안 학계와 정부 정책기획 측면에서 그런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아직 구체적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입장은 명백히 밝힌 바가 있다"고 전했다. 우리 정부 역시 주목하고 있는 대상이라는 것이다.

 

유 장관은 이어 "(3자 협의가) 한반도문제를 논의하는 자리가 돼서는 안 되며, 한반도 논의에는 우리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었다"면서 "현재 (3자협의의 주제로) 논의되고 있는 것은 지역정세를 제외한 기후변화 문제, 환경문제, 에너지 안보 문제 등 글로벌 이슈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오바마 대통령은 미중일 3국의 전략대화까지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대상"이라면서  "현재로서는 우리나라가 적극 반대하고, 중국이 일본의 부각을 견제할 경우 정상수준으로까지 진전되기는 어려워 보이지만, 장관급으로 격상될 경우는 주목도가 크게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미중일 3국이 모이는데, 한반도 문제 논의하지 않을까

 

핵문제 등 북한 문제에 이익이 걸려 있는 세 강대국이 모이는 자리에서 한반도 문제가 과연 논의의 테이블에 오르지 않을 수 있을까. 만약 북핵 문제가 논의될 경우 한국은 이를 제어할 수 있을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뒤 '핵우산'을 명문화한 '한미동맹 공동비전' 등 한미공조에 '올인'하면서, 북한에 대한 독자적인 지렛대가 사라진 것은 물론 중국과의 협력여지도 크게 줄어들었다. 또 한국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독자적인 구도를 만들려 하기보다는, 미국에 강경론을 부추기면서 여기에 편승하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한국이야 어차피 미국과 일본이 하자는 대로 따라올 것이라고 보고, 굳이 한국의 입장을 살피려 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송민순 의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미중일협의체#북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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