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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여행하며 읽는, 또는 마실하기 앞서 읽는 책

 

 2000년대에 이 나라를 다스리는 분들은 한결같이 '토목건설'로 나라살림을 북돋웁니다. 1990년대에도 마찬가지였고 1980년대, 1950∼70년대에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바로 오늘 대통령ㆍ국회의원ㆍ공무원 자리에 서 있는 분들은 '서울과 부산 잇는 물길'을 뚫으려 한다지만, 이 물길이 아니더라도 수없이 많은 고속도로며 아파트며 고속철도며 닦고 세웠습니다. 시골 작은학교를 때려부수고 도시 큰학교를 새로 지었습니다. 해마다 보도블록 갈아엎기를 그치지 않는데, 이 일을 나무라는 사람이 많아도 그치지 않는 까닭은, '한국땅에서 일자리 만들기'란 바로 보도블록 갈아엎기와 같은 '토목건설 공사'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어느새 지하철 9호선까지 냅니다. 지하철을 타는 분들이 몸으로 느끼시는지 모릅니다만, 지하철이든 시내버스이든 대중교통이 아닙니다. 이러한 교통 얼거리는 하나같이 '토목건설 공사를 하며 일자리 늘리기'를 하려는 발버둥이고, 자꾸자꾸 큰돈 들여 지하철 놓기를 밀어붙이는 까닭 또한 '실업률 낮추고 공사비 뒷돈 챙기며 밖으로는 번듯하게 보여주려는' 꿍꿍이 때문입니다. 참된 '교통-환경 정책'이었다면, 자가용 흐름을 줄이고 새 찻길을 늘리지 않으며 모든 문화ㆍ교육ㆍ사회ㆍ정치ㆍ경제ㆍ예술 따위가 서울에만 몰려들지 않도록 골고루 나누면서, 서울 한복판에도 논밭을 일굴 수 있도록 했으리라 봅니다.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2009)를 쓴 '이매진피스' 임영신ㆍ이혜영 님은 이야기합니다.

 

.. "하나의 리조트가 생겨날 때마다 몰디브 사람들에게 돌아오는 일자리는 리조트를 건설하는 일용직 노동자, 리조트가 완공된 후에는 객실 청소부, 식당 설거지, 호텔 잡부 같은 단순 노무직이었다. 기술도 필요 없고, 교육도 필요 없는, 언제든 해고당할 수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 ..  (50쪽)

 

 이런 말마따나, 우리가 나라밖 나들이를 할 때 마주하는 그곳 사람들은 하나같이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나라안에서 돈 좀 번다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토목건설 일을 하거나 토목건설과 얽힌 일을 하게 되는' 비정규직 노동자로 바뀌어 갑니다. 나라에서는 일부러 제도권 입시교육을 더욱 단단히 하면서, 우리 모두를 '생각 안 하고 돈만 벌면 그만인 사람'이 되도록 내몰려 한다고 느낍니다.

 

 《탐라기행》(학고재,1998)을 쓴 일본사람 시바 료타로 님은 말합니다.

 

.. "조선조에도 실학은 있었다. 그러나 그 압도적인 주력은 주자학이었는데, 그것은 1그램의 실학성도 없는 사변철학이었다 … 지폐 위에 찍혀 있는 이퇴계는 훌륭한 인물임에 틀림없으나, 중국 주자학을 몇 세기 뒤에 전달해 준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 조선 왕조는 도그마에 얽매인 관료들이 고의로 문명을 정체시켰다." ..  (186∼187쪽)

 

 얼마 앞서 5만 원짜리 종이돈이 새로 나왔습니다. 이 나라 종이돈에는 너나없이 '조선 사대부 권력자'만 아로새기고 있습니다. 오늘을 낮은자리 사람하고 함께 살거나, 오늘을 이웃과 어깨동무하는 길을 내려고 땀흘리는 사람은 안 담습니다. 아무래도, 지난날에는 '실학이 있기는 했어도 주자학이 내리누르던 삶터'였고, 오늘날에는 '참교육과 대안교육이 있기는 해도 대학바라기 제도권 교육이 무시무시하게 억누르는 삶터'이며, 이런 틀을 우리 스스로 벗어던질 마음이 없거든요.

 

 ㄴ. 아톰은 눈물을 흘린다

 

 예순두 해를 살다 떠난 만화쟁이 데즈카 오사무 님은, 병원침대에 누운 채 마지막 책 하나를 붙잡고 있었으나 끝내 마지막 책은 마무리를 짓지 못했습니다. 그러고 스무 해 뒤인 2009년, 마무리를 짓지 못한 책이지만, 《아톰의 슬픔》이라는 이름으로 글모음이 하나 세상에 나옵니다. 당신이 왜 만화를 그렸으며, 당신은 어떻게 만화를 그릴 수 있었고, 당신은 만화에 어떤 뜻과 이야기를 담으려 했는지를 낱낱이 풀어헤친 편지와 같은 글이 알알이 모여 있습니다.

 

.. "나는 계속 그렸습니다. 그 맹렬한 비판의 폭풍 속에서도 만화를 그려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무리 로봇의 격렬한 싸움을 그린다 해도 내 만화(아톰)의 주제는 항상 자연에 뿌리를 둔 '생명의 존엄'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  (13쪽)

 

 얼마 앞서 리영희 님이 말잔치를 베풀었습니다. 리영희 님은 몇 해 앞서부터 손을 쓰지 못합니다. 입으로 읊으면 누군가 받아적기를 해 주어야 합니다. 그동안 리영희 님 글을 읽고, 말잔치 이야기를 사람들한테 건너들으면서 생각해 보건대, 리영희 님 생각줄기에는 언제나 '목숨을 섬기는 매무새'가 바탕이었다고 느낍니다.

 

.. "국가권력이 '정의'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에게 휘두른 폭력의 실상을 내가 살아 있는 동안 기록해 두어야겠다는 마음으로 그린 작품이 《아돌프에게 고한다》입니다." ..  (41쪽)

 

 지난 2003년 8월에 세상을 떠난 이오덕 님은 1925년에 태어났고 데즈카 오사무 님은 1928년에 태어났습니다. 서로 비슷한 때에 태어나 서로 다른 땅에서 태평양전쟁을 겪고 치렀는데, 저마다 '전쟁을 일으키는 권력자가 사람들을 얼마나 내리누르고 괴롭히는가'를 몸소 깨달아, 이 아픔과 생채기를 뒷사람한테 물려주지 않으려는 매무새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 "어른들이 자신의 삶에서 발견한 가장 소중한 것을 어린이에게 이야기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세대를 뛰어넘어 같은 인간으로서 꿈을 공유하고 신념을 나누길 바라는 것입니다." ..  (55쪽)

 

 올해 유월, 국회도서관에 '송건호문고'가 마련되었습니다. 1927년에 태어나 2001년에 세상을 떠난 송건호 님인데, 나날이 당신 이름이 잊혀지고 있음을 헤아리면, 다른 정권도 아닌 오늘날 정권 때에 국회에 당신 이름으로 작은 도서관이 마련된 일은 몹시 뜻밖입니다. 그러나, 송건호 님이 걸었던 길은 언제 어디에서 누구하고라도 옳고 바른 목소리를 나누려는 몸짓이었음을 떠올린다면, 외려 오늘날 같은 때에 국회도서관에 한 자리를 얻을 만하지 않느냐 싶습니다.

 

.. "전국적으로 교통망이 발달해 각지의 간선도로가 그물망처럼 교차하고, 그 결과 지역산업이 발전하지만 모든 지방도시들이 정형화되어 엇비슷한 도시 구조를 지닌 특색 없는 모습으로 변해 갈 것입니다." ..  (171쪽)

 

 아침에 옆지기가 《2인조 가족》이라는 청소년소설을 읽고는, 책이 아주 재미있으니 저보고 얼른 읽어 보라고 건넵니다. 저는 《아톰의 슬픔》을 눈물로 읽고 있으니 이 책을 옆지기한테 건네면, 눈물과 웃음이 반가이 만나겠습니다.

 

 책만 보는 엄마 아빠 옆에서 아기가 저하고도 놀자며 빽빽 웁니다. 우는 아기를 달래어 밥 세 숟갈 떠먹이고 나서 조금 놀다 보니 어느새 곯아떨어집니다. 조용해졌으나 갖은 물건이 널브러진 마루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이웃나라 만화쟁이는 눈물로 아톰을 빚어냈는데, 우리네 만화쟁이는 무엇으로 뭐를 만들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눈물만화까지 바라기는 힘들더라도 돈만화만 철철 넘치지 않느냐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은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습니다.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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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톰의 슬픔

테즈카 오사무 지음, 하연수 옮김, 문학동네(2009)


태그:#책읽기, #책이 있는 삶, #여행책, #아톰,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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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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