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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프리카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로버트 게스트 지음) 겉그림.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로버트 게스트 지음)겉그림. ⓒ 지식의날개
옮긴이 말이 아니어도, 우리는 '저 멀리 어딘가에 있는' 아프리카 대륙을 생각할 때 항상 무언가 '이미지'를 찾는다. 그리고 그것은 대개 서로 다른 두 가지로 나타난다. 가난, 질병, 전쟁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곳이라는 생각이 한 쪽에 있고 다른 한 쪽에는 지구가 태어나던 때 모습 그대로 지금껏 숨 쉬는 듯이 드넓은 자연과 동식물이 마음껏 뛰노는 곳이라는 생각이 있다. 이상과 현실이 이룰 수 없는 사랑을 하려는 것 이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이 같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인식은 의외로 모두 현실이다.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로버트 게스트 지음/지식의 날개 펴냄, 2009)은 이보다 더한 사실이 없겠다 싶을 만큼 '지금 이 시각' 아프리카를 보여준다. 기자답게, 아니 굳이 기자라는 직업이 아니더라도, 로버트 게스트(Robert Guest)는 아프리카를 오랫동안 옥죄었던 유럽 식민 역사도 현 시점으로 끌고 들어와 지금 보는 아프리카 현실과 동등하게 다룬다. 그는 지금 아프리카 각국이 겪는 상처와 혼란들을 그저 지난날 유럽 식민 역사 결과로만 한정짓기를 단연코 거부한다. 엄연한 사실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아프리카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서는 '지금 이 시각' 아프리카를 냉철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자원이 넘치는 곳, 자연이 처음 그대로 숨 쉬는 곳, 아프리카는 '지금 이 시각' 어떤 현실에 있으며 어떤 미래를 열어가고 있는가? 아직은 흐릿하기만 한 무한한 가능성과 여전히 짙게 드리운 어두운 (정치)현실로 뒤범벅인 아프리카를 향해 지은이는 말문을 연다.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

'과거'엔 유럽 식민 역사가, '현재'엔 어두운 정치가 있는 곳이란...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라는 짧은 외마디 비명이 아프리카를 향해 우리가 우연코 내뱉는 솔직한 대답이 아닐까 한다. 아프리카를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말이다. 질문과 대답이 서로 뒤섞인 것 만큼이나, 아프리카는 '지금 이 시각'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두서없이 오가고 있다.

분명 아프리카는 무언가에 발목잡힌 땅(참고로, 이 책 원제는 'The Shackled Continent: Africa's past, present, and future')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풍부한 자연과 아름다운 자연마저도 어찌할 수 없는 지독한 화약 냄새와 어둔 (정치)현실 그리고 무엇보다 배고픈 속살들을 설명할 길이 없다. 이런 아프리카를 향해 '과거' 분명 있었고 큰 영향을 남긴 유럽 식민 역사를 함부로(!) 들이대지 말라고 충고하는 게 바로 이 책이다. 복잡한 현실을 더욱 왜곡할 여지가 있을까 하여 사진을 단 한 장도 싣지 않은 이 책에서 지은이는 그저 '지금 이 시각' 아프리카를 붙들고서 묻고 또 묻는다. '왜 아프리카는 가난한가'

현실을 현실 그대로 바라보려는 생각이 기자만이 지닌 독특한 태도라고 할 수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분명한 것은 지은이 눈에 보인 '지금 이 시각' 아프리카는 단연코 부정과 부패 그리고 무능과 독재가 얽히고설킨 땅이다. 그가 듣는 아프리카의 신음소리도 다 이런 아프리카 때문에 생긴다. 그가 곳곳에서 제시하는 아프리카 발전 대책도 다 이런 아프리카를 생각하며 내놓은 것들이다. 그가 본 아프리카는 분명 무지개 빛깔 넘치는 곳은 아니다.

아름다운 아프리카를 일부러 외면해서 아름다운 아프리카를 못 본 것은 아니다. 다만 아름다운 아프리카를 보며 웃기엔 그의 눈에 비친 아프리카 현실이 너무 복잡하다. 유럽 식민 역사가 남기고 간 악행 중 하나인 무분별하고 무성의한 국경들은 각국마다 서로 다른 종족이 무분별하게 뒤섞이는 결과를 낳았고 이런 과거 역사는 지금껏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권력자들의 정치놀음에 필요한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 그리고 안정되지 못한 정치는 안정된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최대 장애물이며 무엇보다 국민 건강을 해친다. 언제부턴가 아프리카 하면 드넓은 자연과 함께 떠올리게 된 에이즈는 아프리카를 발목 잡는 대표적인 어둔 현실이다.

사하라 사막을 기준으로 그 위는 아랍 아프리카로 그 아래는 검은 아프리카로 부르는데, 이 책이 말하는 아프리카는 바로 검은 아프리카이다. 지은이는 아프리카가 직면한 현실을 어둔 정치에서 찾는다. 그리고 그는 아프리카를 지금껏 혼란스럽게 하는 지난 과거 역사를 시도때도 없이 들먹이는 것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기 쉽다고 보는 것 같다.

자원 확보, 원자재 확보와 같은 분야에서 국제 논쟁과 분쟁이 더욱 거세지는 상황에서 지은이는 아프리카 미래를 위한 조언을 대부분 경제 분야로 채운다. 이는 그가, 안정된 자원 확보를 바탕으로 자국 경제와 기업들을 지원하려는 각국(특히, 이른바 선진국이라 하는 나라들)이 아프리카를 계속 탐내고 있는 또 다른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항상 정치 문제가 뒤꽁무니를 붙잡는다.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들려오는 소리... '가난한 정치'가 문제다!

유럽 식민 역사 꽁무니를 틀어잡은 아프리카 각국의 어둔 정치 현실을 보며 지은이는 그곳이 지금도 뱀파이어들이 거의 아무런 제재 없이 활동하는 땅이라 생각했다. 말하자면, 무능, 부패, 부정 등 온갖 악은 다 뒤집어쓰고 있는 것 같은 각국 권력자들이 아프리카의 미래를 발목잡고 있는 상황을 그는 아프리카의 현실이라 이름 지은 셈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에이즈 외에 원조라는 말마저 함께 떠올리게 하는 아프리카를 향해 그는 계속 묻고 또 묻는다. '아프리카는 왜 가난한가'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이랄까, 그는 이 책을 읽는 이들이 그를 향해 묻고 싶을 질문에 대답하기라도 하듯, 자기 소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내가 이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은 지금의 아프리카 빈곤이 전적으로 유럽 식민주의자들의 잘못이거나 글로벌 무역체제의 불공평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물론 유럽 식민주의자 대부분이 잔혹했고 무역 체제가 지금도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불공정하다는 점은 나도 인정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부정직하고 무능한 아프리카 정치 지도자들 때문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에필로그, 428-429)

아프리카의 현실을 제대로 파고들려 노력한 책인 만큼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바뀌곤 하는 아프리카 상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법. 옮긴이는 이런 변수를 고려하여 원서 발간 시기인 2004년 이후 아프리카 상황을 옮긴이 주(註)와 '더 알아두기'를 통해 보완했다. 각 장 머리에는 '리딩 포인트'를 두어서 각 장 개요와 주요 사항을 알도록 하였다.

솔직히, 지난날 어둔 정치가 현실을 어떻게 뒤틀어버리는지 그리고 지난 역사를 틀어쥐고 권력놀음을 하는 정치 구조가 사회를 어떻게 병들게 하는지를 온몸으로 겪어 아는 우리 눈에도 이 책은 무척 낯익다. 지은이가 누구인지 몰라도 이 책이 보여주는 아프리카 현실은 그런 이유에서 무척 낯익다. 다소 뜬금없는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아프리카를 향해 손길을 뻗는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 역시 아프리카를 대하는 태도에서 서로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사실도 새삼 기억해야 한다.

아프리카가 왜 가난한지를 묻기에 오로지 먹고 사는 문제를 다루는가 생각한다면 오해도 이만저만한 오해가 아닐 것이다. 차라리 조금 어색한 표현이더라도 '아프리카 정치는 왜 가난한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질문은 의외로, 어떤 면에서는 정말 자연스럽게도, '지금 여기서도'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로버트 게스트 지음. 김은수 옮김. 지식의날개, 2009.7.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

로버트 게스트 지음, 김은수 옮김, 지식의날개(방송대출판문화원)(2009)


#아프리카, 무지개와 뱀파이어의 땅#아프리카#로버트 게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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