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줄기가 굵어집니다. 아침에는 가늘게 흩뿌리더니, 낮나절부터는 굵직굵직해서, 지붕을 때리는 소리, 길바닥을 때리는 소리, 골목길 거니는 사람 우산을 튕기는 소리가 고스란히 들립니다.
엊그제 비가 내릴 때에는 후덥지근했는데, 오늘은 시원합니다. 아기는 집에서 벌거벗은 채로 뒹굴고, 아기 아빠는 도서관 문을 열고자 우산을 받고 골목 사이를 사뿐사뿐 누비면서 일터로 갑니다. 오늘은 어느 골목으로 해서 갈까 헤아려 보다가, 동인천역 뒤쪽 송현동으로 가로지르기로 합니다. 이곳, 동인천역 뒤쪽은 '북광장 재개발 사업'을 한다면서, 이 둘레에 있는 골목가게와 골목집을 모두 허물고 있습니다. 이주보상비를 받은 가게는 옮겨 가고, 아직 이주보상이 안 된 집과 가게는 고스란히 남아 있습니다.
인천시는 2009년은 '인천 관광의 해'로 삼고 '인천 도시축전'을 한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이처럼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밀어붙이는 재개발 정책과 철거는 바깥손님한테 얼마나 보기 좋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바깥손님한테 내보이기 앞서, 이 땅에서 뿌리내리며 살아왔던 사람들 어제와 오늘 앞에 무슨 이야기를 남기며 앞날에는 어떤 이야기를 아로새기게 될까요.
허문다며 건물 안팎으로 죄다 뜯어 놓고 부수어 버린 건물 한 곳으로 올라가서 물끄러미 골목길을 내려다봅니다. 송현동 골목에서 송현시장을 지나 수도국산 배수지 언덕받이에 지어진 주택공사 아파트 무리가 한눈에 보입니다. 저 너머로도 인천 앞바다가 있으나, 높직한 아파트는 다른 데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도록 합니다. 자유공원 둘레 송월동에서 바라볼 때에도 바다가 아파트한테 막히고, 도원동 황골고개에서 바라볼 때에도 바다가 아파트한테 막힙니다. 아직 북성동과 선린동 언덕받이에서는 아파트한테 막히지 않지만, 새로 지은 호텔이 눈길을 떡하니 가로막는 데다가 숱한 타워크레인이 바다를 못 보도록 합니다. 예전에는 웬만한 언덕받이나 골목집 옥상에서 바라볼 수 있던 바다였는데, 이제는 아파트 높은층에 깃들지 않고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아파트 높은층에 깃든다 하여도 먹고살기 바쁜 나머지 바다를 바라볼 겨를이 없는 우리들입니다.
며칠 뒤면 허물리겠구나 싶은 건물에서 내려와 송현시장을 가로지릅니다. 송현동에서 송림1동 골목길로 접어들고, 산업도로 공사터를 끼고 수도국산 배수지 언덕으로 올라서는 골목계단을 하나하나 딛습니다. 언덕받이로 다 올라와서 가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보니, 금곡동과 창영동이 둘러싸는 배다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이내 송림2동으로 건너갑니다. 길바닥에는 '여기는 송현동, 여기는 송림1동, 여기는 송림2동'이라 하는 금이 그어져 있지 않습니다. 그저, 골목집 문패와 주소패를 흘깃흘깃 쳐다보면서, 여기는 무슨 동 몇 번지이고, 저기는 무슨 동 몇 번지이구나를 헤아리면서 머리속으로 길그림을 그립니다.
번지ㆍ통ㆍ반을 속으로 읊는 가운데, 송림1동에 자리한 '삼거리정육점' 앞에 닿습니다. 간판은 정육점이되, 거의 꽃집처럼 이루어져 있는 산뜻한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봅니다. 늘 지나다니는 길임에도, 이 앞을 지날 때면 언제나 넋을 잃고 한참 서 있습니다. 오늘도 우산을 받는 채로 비 내리는 골목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빗방울에 흔들리는 골목꽃과 골목나무를 물끄러미 마주합니다. 골목마다 빗물이 조르르 흐릅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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