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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을 파괴하려는 자 누구인가...
지리산을파괴하려는 자 누구인가... ⓒ 지리산생명연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는 지리산(1915m)은 제주에 있는 한라산을 빼면 육지 속 섬나라인 대한민국에서 가장 높은 산입니다. 하지만 어리석기 그지없는 나 같은 사람에겐 지리산이 그저 단풍놀이 혹은 쌍계사와 화엄사 등의 절집을 휘돌아 보고 돌아설 산이겠으나 지혜로운 사람에겐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산인 것은 분명합니다.

두류산 또는 방장산이라 불리기도 하는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신선이 하강하여 놀았다는 전설이 있어 삼선산(三仙山)에 들었고, 정감록에 나오는 십승지 중의 하나로 포함될 정도로 지리산은 예로부터 은둔과 원시의 영토입니다.

그런 이유로 지리산은 근현대사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한 땅이기도 합니다. 대한제국 말기 농민운동에 실패한 동학교도들이 지리산으로 숨어들었고, 1948년엔 여순사건을 일으킨 일부 군인들이 지리산으로 몸을 피하기도 했습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형제가 총부리를 겨눈 한국전쟁 때엔 퇴로가 끊긴 인민군과 빨치산들이 '조선인민유격대'라는 이름으로 게릴라 활동을 하다 지리산에서 죽음을 맞거나 체포되었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남부군 사령관 이현상도 지리산에서 죽었고, 지리산 자락에 산다는 이유로 수많은 백성들이 죽음을 맞기도 했습니다.

한의 땅, 눈물의 땅, 주검의 땅, 신들의 땅인 지리산은 높습니다. 산이 높은 만큼 그 품이 넓고 들어찬 골짜기들 또한 많고 깊습니다. 지리산의 둘레는 320km로 800리나 됩니다. 서둘러도 이십일 꼬박 걸어야 언저리를 둘러볼 수 있는 지리산은 해발 1천m가 넘는 산봉만도 20여 개나 됩니다.

높은 산은 깊은 골을 만들었고 원시림에 가까운 골짜기는 맑고 찬 물을 마을을 지나면서 새로운 생명들을 키워냈습니다. 지리산 사람들의 젖줄인 계곡물은 분수령에 따라 낙동강으로 가기도 하고 섬진강으로 흘러 질박한 남도 땅을 고루 적셔 주었습니다.

지리산은 1967년 말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될 정도로 자연생태계가 살아있는 산입니다. 3개 도(전남·경남·전북), 5개 시군(남원·함양·산청·구례·하동)의  수십만 백성을 거느린 지리산은 천연기념물과 각종 보호동식물을 비롯하여 화엄사·실상사·쌍계사·연곡사·천은사·칠불사·내원사·대원사·벽송사 등의 천년 고찰이 지리산의 오랜 역사를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하니 지리산은 산 전체가 문화재 보호구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한 지리산이 요즘 불안에 떨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인근의 지자체들이 지리산 자락에 댐과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입니다. 기실 따지고 보면 지리산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것이 어제오늘의 이야기는 아니었으나 이명박 정부 들어 그 추진 속도와 지자체 간의 경쟁이 전에 없이 빠르고 집요합니다.

지리산을 두고 왜 이런 일이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걸까요. 그것은 아마도 자연을 바라보는 이명박 정부의 정체성과 관련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에 있어 생명존중과 평화를 근간으로 하기 보다는 '자연이야 파괴되든 말든 돈벌이만 되면 무슨 문제냐' 라는 이명박식 정책이 각 지자체까지 파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니 지리산에 댐을 만들거나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는 것은 한반도 대운하의 기초 작업인 이른바 4대강 살리기라는 억지 명분을 가지고 전국의 강을 시멘트로 치장하려는 '이명박식 화장술'을 각 지자체에서 도입하려고 하는 일련의 '이명박 따라하기' 현상일 뿐인 것입니다.

엄천강 지리산댐 예정지로 거론되는 함양군 엄천강 모습
엄천강지리산댐 예정지로 거론되는 함양군 엄천강 모습 ⓒ 지리산생명연대

낙동강 죽이고 지리산댐으로 부산 식수원 해결?

신령스런 지리산에 댐을 만들겠다고 나선 것은 경남 함양군입니다. 정부에서 댐을 만든다고 해도 앞장 서서 막아야 할 천서령 함양군수가 오히려 두 팔을 걷어붙이고 댐 건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지리산을 아끼는 사람으로서 경천동지할 일입니다.

지리산에 댐을 건설하겠다는 속셈이야 따로 있겠지만 함양군에서 밝힌 이유라는 것이 하류지역의 홍수조절과 가뭄 극복 식수난 해결, 지리산권 산불 발생시 취수원 확보, 지리산 자락에 산재한 사찰과 문화재를 화재로부터 보호 등이라고 합니다. 홍수조절과 식수난 해결은 이런 저런 자료를 훑어 보아도 그 이유라는 게 궁색하기 그지 없고 사찰 문화재를 보호한다는 명목에서는 차라리 헛웃음만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헛웃음을 지을 때 정부와 수자원공사는 함박웃음을 터트리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낙동강 공사로 인해 부산 지역의 식수원 문제를 풀어야 하는 정부로서는 함양군에서 지리산에 댐을 만들어달라고 먼저 나서주니 고마운 일이기도 할 겁니다. 

정부는 4대강 살리기 공사로 인해 죽음의 강이 될 낙동강의 식수원을 지리산댐으로 해결할 수 있으니 좋고, 수자원공사는 지리산이야 죽건 말건 안정적인 일감을 찾고 물장사를 할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까지 좋은 일 아니겠는지요. 

지리산 자락에 댐이 생기면 한국내셔널트러스트가 선정한 한국의 자연문화유산 9곳 가운데 한 곳인 용유담 계곡이 수몰되는 것은 물론이고,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칠선계곡 입구와 백무동 계곡이 엄천강으로 합수되는 마천면 일대가 물에 잠긴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수천년을 이어온 지리산의 생태계가 혼란에 빠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지리산에 댐을 만드는 일만도 뒤숭숭한 소식인데, 지리산 곳곳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하는 소식은 뒤숭숭을 넘어 아찔한 소식입니다. 반달곰마저 어디론가 도망치고픈 그 소식은 어이없게도 환경부가 제공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보호하는 정책을 펴야할 환경부가 4대강 살리기에 힘을 실어준데 이어 이번엔 1967년 이후 단 한 차례도 개정한 적이 없는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냈습니다. 그 내용이라는 것이 해상국립공원에 숙박시설 건립 금지에서 허용하는 것과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거리 규정을 현재 2km에서 5km로, 케이블카 정류장 높이를 9m에서 15m로 완화하겠다는 항목등입니다.

이는 환경부가 자연환경이 뛰어난 곳을 보호하고 있는 현재의 자연공원법을 풀어 대한민국을 개발천국으로 만들 목적과 다르지 않습니다. 환경부의 이러한 움직임이 있고 난 후 법이 완화되기만을 바라던 각 지자체에서는 지역에 있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난리들입니다.

산정 시위 우리는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을 원한다!
산정 시위우리는 케이블카 없는 지리산을 원한다! ⓒ 지리산생명연대

설악산은 물론이고 지리산만 해도 당장 전남 구례군에서 4.5㎞(산동 온천~노고단) 거리의 케이블카를 시작으로 전북 남원시에서 3.46㎞(고기마을~정령치), 경남 산청군 5.0.km(중산리~제석봉)과 함양군에서 5.0㎞(백무동~제석봉) 거리의 케이블카를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하이힐 신고 천왕봉 올라볼까요?

이쯤되면 지리산은 가히 케이블카 천국이 됩니다. 어느 곳에서도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 지리산을 오를 수 있는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지리산은 현재도 등산객으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데, 한 해 수백만의 사람이 산정으로 몰리면 지리산은 어찌 되겠는지요.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은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했을까요? 이명박 정부가 들으면 불행스런 일이겠지만 국립공원 제도를 처음으로 만든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단 한 곳도 없다고 합니다.

그럼 일본은 어떤가요? 1990년대까지 케이블카 바람이 불던 일본의 자연공원들도 지금은 그것이 주는 피해가 적지 않아 케이블카를 철거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외국의 사정이 이런데도 대한민국은 케이블카를 전국적 네트워크화 하고 있습니다. 이 무슨 조화이며 세계질서와 역행하는 후진적인 일인가요.

이 모든 것이 결국 자연과 그 자연속에서 살아가는 대다수 백성들의 의견과는 달리 일부 부자들과 투자유치라는 명목으로 끌어들인 기업들의 배만 불려주는 정책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리산 자락에 띄운 유람선에서 뱃놀이를 할 사람이 누구이며, 슬리퍼나 하이힐을 신고도 지리산을 정복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게 되는 세상을 만드는 이들은 어느 시대 사람들이며 그들은 누구입니까.

환경부는 지금이라도 케이블카 천국을 만드는 자연공원법 개정 시도를 즉각 중지해야 합니다. 그것이 환경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고 미래를 위한 길입니다. 또한 이명박 정부는 자연공원을 돈벌이 대상으로 전락시키는 '개발정책'을 포기해야 합니다. 국립공원은 대한민국의 심장이자 허파를 그런 식으로 파괴하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합니다.

복원 중인 노고단 등산객으로 인해 훼손된 노고단을 복원하고 있다. 한쪽에선 복원 한쪽에선 케이블카 추진...
복원 중인 노고단등산객으로 인해 훼손된 노고단을 복원하고 있다. 한쪽에선 복원 한쪽에선 케이블카 추진... ⓒ 지리산생명연대

환경 죽이기에 앞장선 환경부는 환경파괴부?

함양군도 지리산댐 건설을 포기해야 합니다. 지리산에 댐을 지어 얻을 것이 무엇입니까. 당대의 영화입니까? 아니면 뱃놀이를 통한 관광수입 입니까? 그도 아니면 부산 지역에 식수 팔아 군민 모두가 잘사는 일입니까?

그 모든 것이 아무리 중요해도 지리산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댐을 건설하지 않고도 함양군이 잘 살 수 있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강원도 평창군 대관령면(구 도암면)에 도암댐이 있습니다. 도암댐은 남한강 최상류의 지천인 송천에 1980년대 말 완공된 댐입니다. 담수 규모가 5천만 톤 정도니까 계획하고 있는 지리산댐 규모보다 조금 작을 듯싶습니다. 그렇게 작은 댐인 도암댐이 상류의 개발과 함께 각종 오염원이 흘러들어 국민의 강인 동강을 죽이고 있습니다. 한강의 최상류가 죽어가는데 하류라고 괜찮겠습니까.

오염된 물로 인해 발전방류마저 중단된 지 10여 년이 되고 있지만 도암댐은 여전히 '방치'된 상태입니다. 도암댐을 해체하여 동강을 살려야 하지만 정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습니다.

그 일과 비슷한 일이 지리산에 생길까 무섭습니다. 1200개나 되는 댐을 보유한 대한민국에서 또 댐을 필요로 할 이유가 무엇 있습니까. 더구나 그 댐이 지리산을 죽이는 일인데 댐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할 이유가 어디 있습니까.

지리산에 철탑을 꽂고 삽날을 들이대는 일은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리산을 시멘트로 치장하는 일은 후대에 큰 부끄러움으로 남을 것입니다. 역사에 죄짓는 일 더 이상 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리산은 대한민국의 영산(靈山)입니다. 또한 지리산은 어머니 산입니다. 우리가 살모사입니까? 어머니산인 지리산을 잡아먹는 살모사가 우리 인간이란 말입니까? 어머니의 젖가슴을 풀어헤치고 여기저기에서 팔과 다리 심장까지 파 먹어야 할 정도로 우리네 삶이 절박합니까?

우리가 재벌만을 위한 이명박 정부와 거대 자본 그리고 사소한 이익 앞에서 무릎 꿇을 때 우리는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고 있던 지리산 하나를 잃게 될 것입니다. 그때 가서 땅을 치며 후회한들 지리산은 살아나지 않습니다. 상처투성이의 지리산을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지리산을 지키는 일, 모두가 함께 해야 합니다.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 천년 삶터 파괴하는 지리산댐 백지화하라!
우리의 목소리를 들어라천년 삶터 파괴하는 지리산댐 백지화하라! ⓒ 지리산생명연대


#지리산생명연대#케이블카#지리산댐#도법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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