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 부평구 십정1동 선린교회 사거리에서 부평여상 사이 동네는 60년대 말, 70년대 초 서울과 인천 철거지역에서 옮겨온 주민들이 야트막한 산자락을 차지해 동네를 이룬 가운데 3300여세대가 사는 곳이다.
십정1동 190번지는 1996년 3월 주거환경개선1지구로 선정됐다. 1996년 6월26일 지구지정 공람공고를 붙이면서 주민이주와 철거가 시작됐지만 공사는 2001년에 들어서야 이뤄졌다.
십정1동 216번지 일대 또한 2004년 주거환경개선사업2지구로 지정됐지만, 사업시행자를 찾지 못해 2008년부터 공사에 들어갔다. 나머지 십정동 지역도 재개발 계획이 세워지고 있다.
주거환경개선사업이 시작됐지만 마을은 황폐해져 갔다. 주민들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집에 문제가 생기면 보수공사도 하고 아름답게 꾸미기 위해 노력도 했는데 개발 지역으로 묶이면서 집 관리를 소홀히 하게 되었다고 한다.
십정동은 주민들이 사용할 수 있는 식수로 우물이 열 개가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열우물 마을로 불리다가 지금은 십정동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아름다운 벽화가 있는 열우물길을 걸어본다.
열우물길에 희망과 숨을 불어 넣다.
벽화를 그리기 시작한 거리의 미술가 이진우(46)씨를 만났다.
-이곳에 벽화를 그리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열우물 마을은 주안수출 5~6공단이 들어서자 노동자 가족들이 일터를 찾아 이곳 주거 밀집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어요. IMF가 터지자 공단으로 출근하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었죠.
가장들은 술로 허송세월을 보내게 되었고 주부들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섰죠. 가정이 엉망이 되었고 마을도 피폐해져 갔습니다. 설상가상으로 IMF 즈음에 주거환경개선지구로 지정되었으나 수익성이 없다는 이유로 개발을 추진하던 업체 측에서 거부한 까닭에 개발도 주택보수도 되지 않는 마을로 바뀌게 되었지요. 10여년이 넘게 지나다보니 마을이 황폐해져 갔습니다.
열악한 환경에서 자녀들을 방치할 수가 없어 원주민들은 대부분 이사를 갔고 개발 이후 이윤을 노리고 외지사람들이 주인으로 바뀌었답니다. 저 역시 이곳에서 살았었는데 근처 작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습니다.
빈집이 늘어나니 우범지역으로 변하게 되었죠. 현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편하거나 나이 드신 어르신들인데 마을을 가꿀 여력이 없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아이들이 있는 가정도 형편이 녹록치 않아 동네 작은 공부방을 이용해야 할 정도고요. 황폐해져가는 마을에 희망을 주기 위해 2002년부터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주민들 표정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인원은 몇 명 정도이며 매년 벽화를 그리시나요?"2002년 한해만 그리려고 했는데 이곳 집들이 오래되다 보니 낡아서 비가 새면 벽화들이 떨어지거나 녹물이 스며들어 흉물스럽게 변했어요. 주민 한 분이 담벼락이 보기 싫다며 넌지시 벽화를 보수해주면 안되겠느냐고 부탁을 하기에 2003년 한해만 쉬고 매년 벽화를 그렸습니다. 연인원 300~600명 정도 자원봉사자들이 참가했습니다."
-비용도 만만찮을 텐데 어려움은 없는지, 언제까지 하실 건가요?"비용은 문화재청에 도움을 요청하지만 쉽지가 않아요. 애로 사항이 많습니다. 뜻이 있는 사람들이 도움을 주신다면 고맙죠. 이 마을이 존재하는 한 벽화를 계속 그릴 겁니다. 아이들을 위한 공부방도 계속 운영할 겁니다."
정 많고 인심 좋았던 제2의 고향인데...마을을 돌다보니 60~70년대에서 멈춘 듯한 이발소가 보인다. 이발소를 들여다보니 연세가 지긋하신 이발사 할아버지와 손님 또한 할아버지다. 이곳에서 40년째 이발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강창석(70)씨는 철거된다고 해서 이제나저제나 기다려 보는데 언제쯤 개발이 될지 모르겠다며 이사하자니 마땅한 곳이 없고 마지못해 살고 있다며 어느 쪽이든 빨리 결정 나기를 바란다고 한숨을 내쉰다.
67세 된 윤재필씨는 재개발이 되면 물론 주거환경이 나아질 수는 있겠지만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아파트 입주 능력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이 마을을 떠나가야 한다고. 비가 오면 신발이 젖어도 이 동네를 떠나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한다.
개발붐이 불기 전에는 인정이 많았던 곳인데. 이 나라는 힘없고 돈 없는 서민들 마음을 알아줄리 없으니 답답할 뿐이라고. 이곳이 고향인데 고향을 버릴 수 있겠느냐며 건너편 높은 아파트를 바라본다. 카메라를 들고 있는 나를 보고 언젠가는 사라지게 될 동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멋지게 찍어달라고 하신다.
이곳에서 50년째 살고 계시다는 조원구(94) 어르신과 76세 배숙현 부부는 이곳에 처음 들어왔을 때 집 앞에 우물을 파서 식수로 사용했다. 사람들이 이사 온 후 점점 우물을 파기 시작하여 10개의 우물이 되었단다. 저 아래 있는 저것이 우물이라며 가리키신다. 지금은 우물을 사용하지 않고 수돗물을 사용하신다며 우물은 뚜껑을 덮어 잠가 놓으셨다고 한다.
주위를 돌아보니 높은 아파트가 마을을 감싸고 있다. 언젠가는 이곳도 철거가 되고 새로운 아파트가 생기겠지. 낮은 지붕에는 고추가 널려있고 작은 골목에서 자전거를 타는 어린아이의 모습,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순박했던 정취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어린 시절 힘겹게살았던 우리 동네를 떠올리며 부끄러워했던 기억이 이제는 그리움과 추억의 대상이 되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