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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용무의 한 장면
 처용무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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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아내)이다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

신라 헌강왕(875~885)때 처용이 지은 향가다. 이 노래를 다양하게 해석하지만, 아내가 천연두에 걸리자 병(疫神)을 쫓아 내기 위해 부른 巫歌(무가)라는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에 따르면 처용은 무당 내지 주술사이며 花郞(화랑)과 직간접적 관련이 있을 것이다.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소장인 전기웅 교수는, 화랑이 주로 국가적인 제의를 담당하였지만 민간의 재앙, 즉 화재나 전염병 등을 관리하는 기능도 화랑 조직의 일부가 맡았을 것으로 추측한다. 

처용가에서 보듯이 처용이 아내를 범한 역신을 비난하지 않고 체념하자 疫神(역신)은 처용의 관용에 반하여 앞으로는 처용의 얼굴이 그려진 곳은 범접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래서 이후 처용의 가면과 부적, 처용무 등이 고려와 조선을 거쳐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으로 유행하게 된다.

처용과 같은 가면을 쓰고 역신을 몰아내는 모습을 그린 한자가 있는 데 欺(속일 기)이다. 우선 欺(기)를 구성하는 其(기)에 대하여 살펴보자.

 其(기) (공) 欺(기) 欠(흠) 棋(기)
 其(기) (공) 欺(기) 欠(흠) 棋(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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其(기)의 금문, 廾(공)의 갑골

其(그 기)는 곡식 따위를 까부르는 기구인 키를 양손(廾으로 잡고 있는 모습이다. 본래 키를 뜻하였으나 '그'라는 대명사로 쓰이자 竹(대 죽)을 더하여 箕(키 기)를 만들었다. 또 其(기)가 들어있는 글자는 키처럼 가로 세로로 얽혀있는 네모난 모습과 관련된 경우가 많다. 其他(기타)

欺(기)의 소전, 欠(흠)의 갑골

欺(속일 기)에서 其(기)는 倛(탈 기, 속일 기)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네모난 가면을 뜻한다. 欠(흠)은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  이 가면을 쓰고 큰 소리를 내거나 노래를 불러 疫神(역신) 또는 病魔(병마)를 물러나게 한 것이다. 처용과 관련된 민속으로 이야기 하자면, 처용의 탈을 쓰고 처용가를 부르면서 역신을 달래거나 속여 물러나게 하는 것이다. 詐欺(사기)

棋(기)의 소전

其(기)에 木(목)을 더한 棋(바둑 기)는 키처럼 좌우로 그려진 네모난 바둑판을 의미하는 자이다. 棋院(기원)

 旗(기) (언) 基(기) 期(기) 斯(사) 斤(근)
 旗(기) (언) 基(기) 期(기) 斯(사) 斤(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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旗(기)의 소전, (언)의 갑골

(깃발 언)의 현재 자형은 方(방)과 人(인)의 조합이지만 갑골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깃발의 모습을 그린 자이다. 여기에 사각형의 형상인 其(기)를 더한 旗(기 기)는 네모난 깃발을 의미한다. 太極旗(태극기)

基(터 기)의 금문

건축물 등을 세우기 위해 땅(土)을 네모난 형태(其)로 다진 것을 基(터 기)라 한다. 基礎(기초)

期(기)의 금문

其(기)가 키처럼 좌우로 획을 그은 사각형과 관련이 있으므로 일정한 위치나 간격·구분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여기에 時日(시일)과 관련이 있는 月(달 월)을 붙인 期(기)는 '기약하다·바라다·기간' 따위를 의미한다. 期間(기간), 期待(기대)

斯(사)의 금문, 斤(근)의 소전

斤(근)은 자루(ㅜ)가 달린 도끼(날 부분은 厂)의 모습이다. 其(기)에 사각형을 좌우로 여러 획을 그어나눈다는 의미가 있으므로 斤(근)을 더한 斯(쪼갤 사, 이 사)는 본래 '쪼개다'는 의미이다. 玆(이 자)·此(이 차)등과 마찬가지로 소리를 따서 '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斯文亂賊(사문난적)

우리 민족은 疫神(역신)과 같은 악신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배척하지 않고 잘 달래거나 감화시켜서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처용 설화가 그 대표적인 예다. 내가 보기에 악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싸워서 원한을 사지 말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처용이 우리 민족에게 끼친 민속문화적 공헌은 엄청나다. 짚을 꼬아 만든 처용(제웅이라 불렸다) 인형을 발로 차고 버리는 액막이 풍습은 최근까지도 있었다. 조선시대는 합리적인 성리학의 시대였지만 궁중에서 신년 첫날에 처용무를 춰서 역신을 몰아내는 의례를 행하였다.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이 확산하는 추세다. 통일신라 시대(9C)에도 천연두가 창궐하였다. 신라뿐 아니라 동아시아 일대가 전염병으로 몸살을 알았다. 이 때 탁월한 주술적 힘을 가진 처용이 이 역신을 잘 달래어 물러가게 한 모양이다.

필자는 주술적 힘을 어느 정도 믿는 사람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탁월한 치유 능력을 가진 주술사들이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오는 명절에는 처용의 탈과 부적, 짚 인형 등을 만들고 처용가를 부르며 처용무를 추면 어떨까 싶다. 처용의 주술적인 힘과 현대 의학이 어우러진다면 신종플루라는 전염병을 어느 정도 다스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 김점식 기자는 새사연 운영위원이자, 현재 白川(시라카와) 한자교육원 대표 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한자 해석은 일본의 독보적 한자학자 시라카와 시즈카 선생의 문자학에 의지한 바 큽니다.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신종플루#欺(기)#처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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