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살고 못 산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일까. 이미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돈'이 아닐까. 돈은 만물의 가치를 매길 수 있는 기준이고, 의식주를 충족할 수 있는 수단이며, 문화와 지식, 정보를 향유하게 할 수 있는 도구이다.
다큐멘터리에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의 교외지역이나 얼마 남지 않은 아마존 등지의 밀림에서 사냥을 통해 근근이 살아가는 부족들, 그리고 동남아시아 지역 산간 지방, 농업지대에 살고 있는 농민들을 보노라면, 그들의 궁핍과 가난, 갖추어지지 못한 관계시설과 등불로 밤을 밝히는 생활 등의 불편함이 그들에 대한 동정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일부 시청자들은 자발적으로 모여서 그들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시설'을 지원하는 행위를 자랑스러워 한다.
히말라야 고지대 인도와 파키스탄 중국의 국경이 이어지는 중앙에 몇백년 동안 이어지는 그들의 고귀한 전통과 문화를 잃어가는 공동체가 있다. 언어학자 헬라나 노베르 호지는 '에서티베트 고원과 고대문화의 고장 라다크'에서 16년이라는 시간동안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배움'을 얻는다.
라다크 사람들은 사회구성원 사이의 유대관계 그리고 주변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내면의 평화로움과 기쁨이 넘치는 삶의 태도를 부양할 수 있었다. 그리고 종교는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건강하고 따뜻하고 편안하고 풍요로움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었다.
'대부분의 서양인들은 무지와 질병과 끝없는 노역이 미개발 사회의 운명이라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한다. 우리가 진보라 생각하는 '개발'이 그들의 고유한 문화를 파괴하고 획일적인 의식주와 관습의 파괴와 정체성을 위협한다. 과거 그들이 외부의 '간섭'없이 살때의 평온과 만족, 행복에 대한 가치들을 스스로가 부정하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저자는 세계가 너무 한쪽으로 치닫지 않고 균형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한다.
평화와 풍요로움은 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소규모 자족사회가 이어오는 대가족 제도와 종교, 문화와 농경을 통해서 얻는 것은 '재화'가 아닌 생활의 '만족'이며 이를 통해서 우리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행복'의 단계에 이르고 있었다.
'편리'와 '풍요'가 행복의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우리가 그들을 이해하기는 쉽지 않다. 저자의 집념의 노력과 성품이 그들의 마음에 한발 가까이 갔지만, 그들의 세계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예컨대 그들이 말하는 '일'은 우리와 틀리다. 10시간이 넘게 문서작업을 하는 것은 일로 보지 않았다. 그들이 몸을 움직여서 무언가 생산하거나 이동하는데 쓰는 노동만을 일이라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일'을 한다고 스트레스를 받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라다크 사람들은 서구사회의 꽤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스트레스나 지루함, 좌절감 같은 것을 경험한 적이 없었다. 한번은 내가 마을 사람들에게 스트레스의 개념을 설명하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들의 반응은 이랬다.
"그러니까,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화가 난다는 말인가요."
그들의 가치는 생활을 통한 교육으로 자연스럽게 전해진다. 3대 4대에 걸친 대가족이 함께 생활을 하면서 각자가 맡은 역할을 성실히 수행하고 이는 누가 '계약'할 필요 없이 자연스럽게 행해져서 이방인들이 보기엔 잘 짜인 연극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학교에 다니지 않아도 그들은 스스로의 할 일과 세상을 바라보는 가치와 관점을 습득하게 되며 이는 공동체내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협력의 근본을 이룬다.
세대를 거류하면서 라다크 사람들은 스스로 의복과 주거를 마련하는 방법을 배우면서 성장했다. 그들은 야크 가죽으로 신발을 만들었고, 양털을 이용해 옷을 만들었다. 또 돌과 진흙으로 집을 지었다. 그들의 교육은 지역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있었고, 살아있는 세계와의 관계를 돈독히 한 것이었다. 그로 인해 어린이들은 성장하는 과정에서 자원을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직관적인 자각능력을 갖게 된다.
작은 규모의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고 하는 일들이 생활의 기반이며, 이를 통해서 돈이 없더라도 그들이 살아가는 데에 전혀 지장이 없다. 오히려 풍족하지 못한 소비는 그들에게 검소하고 절약하는 가치의 소중함을 알게 해준다.
우리가 지금 시급히 해야 하는 일은 농업자체에 그에 함당한 권위를 복원시킴으로써 앞서 언급한 추세를 반전시켜야 하는 것이고 또 농업을 정식 직업의 위상으로 끌어올려야 하는 일이다. 탈 중심화의 개발은 그 추진과정에서 소규모 농경세대에게 상당한 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다.
세계화와 신자유주의 경제는 위기에 있다. 농업은 무너지고 사회는 점점 양극화로 계급화가 심해진다. 고통받고 있는 다수의 민중에겐 '행복'과 '만족'이라는 단어는 위선이다. 작은 공동체에서 작고 느린 가치에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통해서 만족하며 생활하는 라다크에게서 선진국의 국민이 '배움'을 얻게 되길 바라는 것은 무리일까.
덧붙이는 글 | 오래된 미래/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중앙북스/ 1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