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신의 후손', 죽어서도 하늘나라로 돌아간다는 새, 하늘나라와 자기 자신들을 연결하여 주는 매개체.
제주시 중산간 마을에 가면 봉황이 사는 나라가 있습니다. 제주도 중산간 마을인 한경면 청수리 20-3번지. 이곳은 1110 마리의 봉황이 사는 나라입니다. 2천여 평의 땅을 가득 메운 봉황의 나라를 찾아가 보았습니다.
거북이 지붕과 봉황의 대문
여름이 익어가는 8월 중순, 제주공항에서 평화로를 따라 금악으로 접어드는 제주의 중산간 마을은 녹음이 짙어갔습니다. 금악 초등학교에서 한경면 청수리 마을에 접어드니 한적한 시골풍경이 이어졌습니다. 도로 옆에는 간간히 새로 생긴 관광지가 눈에 띄었습니다.
도로변에서 500m 정도를 들어가니 한 마리 거북이가 웅크리고 앉아 있는 지붕이보였습니다. 바로 봉황 솟대박물관/돌거북이 수석박물관입니다. 다른 박물관과 특이한 점이 있다면 입구의 기와 위에 봉황이 앉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정문 앞에서 방문객을 반기는 두 마리의 봉황은 초대받은 느낌을 들게 했습니다. 청와대 정문이나 대통령의 휘장에나 쓰여 지는 봉황이니 봉황의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행운이었지요.
친환경 자연소재로 만든 화려한 나무새
봉황 솟대박물관/돌거북이 수석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무인 커피숍의 분위기가 나그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자연카페라 할까요, 은은한 음악소리는 물론 제주 돌과 어우러진 수생식물들과 습지식물들이 조화를 이뤘습니다. 창가에 앉아있는 봉황 두 마리가 날개 짓을 합니다. 그것뿐이 아니었습니다. 창문을 통해 펼쳐지는 정원 풍경이 액자에 걸려 진 풍경화 같았습니다. 다른 한쪽에는 오붓한 가족처럼 엮어진 봉황이 무리를 지어 창가를 지켰습니다.
전시실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렇게 많은 봉황새는 본적이 있었던가요. 그렇게 화려한 봉황새는 처음 보았습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나무새는 처음 보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많은 봉황은 모두 자연을 소재로 만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무뿌리와 나무 가지, 솔방울 등. 부리와 꼬리가 인상적인 봉황의 자태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그저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좋을 마스코트 같았습니다.
'봉황의 나라', 세상 사람들의 모습 담아
전시실을 꽉 메운 나무새는 환생을 꿈꾸고 있는지 모릅니다. 유리벽 속에 갇혀 있는 봉황이 있는가 하면 전시실 모퉁이에서 비상을 꿈꾸는 봉황도 있었습니다. 각양각색의 소재와 테마가 전시관에 수를 놓았습니다. 한 쌍의 연인, 다정한 부부, 다복한 가족, 정다운 친구의 모습으로 서로 소곤대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봉황의 어우러짐은 바로 우리들이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었지요.
먼 옛날, 우리의 옛 조상들은 자신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하늘신의 후손'들"이라 믿어 왔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죽어서도 혼은 다시 떠나 온 고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간다고 하는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때문에 하늘나라와 자신들을 연결하여 주는 것은 '봉황'새라고 생각해 왔습니다.그리고 그 고을에서 가장 신성하다고 여겨지는 장소에 기다란 나무막대를 세우고, 그 위에 나무를 깎아 '봉황'의 형상을 한 새를 만들어 올려놓고 하늘에다 그들의 무리가 그곳에 살고 있음을 알렸습니다. 이처럼 기다란 막대 위에 '봉황' 형상의 나무새를 만들어 앉혀 놓은 것을 '솟대'라고 합니다. 솟대가 설치되어 있는 곳을 '소도'라고 하여 신성시하여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경사스러운 일이나 좋지 않은 일이 발생할 때마다 이를 하늘에 알리고 도와달라고 기원해 왔습니다.
박물관 포인트는 수컷을 상징
봉황솟대박물관/돌거북이 수석박물관 문시종 관장은 57kg이나 되는 수컷돌거북이(현무) 앞에서 "수석은 자연에 시달리고 물에 씻겨 다듬어진 것이 바로 수석이다."라고 말합니다. 64×30×42정도의 규모를 가진 수컷 돌거북이의 포인트는 바로 말 그대로 수컷을 상징하는 성기였습니다.
야외에 솟대가 펼쳐진 솟대 정원으로 나가봤습니다.
"이곳은 원래 지형이 낮아 음 기운이 흐르는 지형이었지요. 따라서 양 기운이 흐르는 솟대를 장식함으로써 음양의 조화가 이루는 '소도'의 도시입니다."
문시종 박물관장과 함께 솟대공원을 걸어보았습니다. 정말이지 최상의 나라에 온 것 같은 착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지상의 낙원이 아주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음양의 기운이 적당히 흐르는 '소도의 나라' 즉, '봉황의 나라'에서 느끼는 기운의 보충은 여름을 시커멓게 달군 심신을 보양시켰습니다.
자연이 어우러진 작은 왕국
거북이 연못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고 남성을 상징하는 작은 돌공원과 장승공원과 돌탑공원은 솟대와 어우러져 작은 왕국을 만들었습니다. 솟대에 매달려 있는 메시지를 담은 소원이 바람에 나부꼈습니다. 이 박물관을 방문한 관광객들은 저마다 소원을 담아 솟대위에 메달아 놓았습니다.
야외 정원에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가장 긴 솟대위에 새 한 마리가 날아오더군요. 새들도 이곳이 지상의 낙원인줄 알고 있는 모양입니다. 아마 봉황을 찾아 날아온 새들도 이곳이 하늘을 연결해 주는 메신저인 줄 알고 있는 게지요.
야외 솟대공원 한켠에 마련한 의자에 앉아있으니 봉황솟대박물관/돌거북이 박물관을 운영하는 서 대표는 박하향이 물씬 풍기는 박하차를 제공하더군요. 이 박하차는 이 박물관을 탐방하는 관광객들에게 무료로 시음하는 차라고 합니다. 입안이 씁쓸하던 차에 마시는 박하차는 가슴까지 파고드는 알싸함을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무더운 열기가 지나가는 계절입니다. 음양의 기운을 보충하는 지상 낙원으로 마지막 피서를 떠나봄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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