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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겉그림 김만권의 〈참여의 희망〉
▲ 책겉그림 김만권의 〈참여의 희망〉
ⓒ 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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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과 6월에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 모였다. 자발적인 참여였다. 광우병 발생 전력이 있는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위한 집회였다. 어른들은 말할 것도 없이 중·고생들 열기도 뜨거웠다. 왜 그렇게들 그 집회에 열을 냈나? 우리나라 사람들의 밥상 곧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요, 후손들에게 해악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시민불복종 운동의 차원으로 해석한 이가 있다. 다시 말해 정부와 집권 여당의 힘이 너무 거대하여, 그 힘이 한쪽으로 쏠리고 있는 까닭에 그것을 견제하기 위한 일환으로 시민들이 광장에 집결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식의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이요, 대화의 창문을 열고자 한 의도였다는 뜻이다.

김만권의 <참여의 희망>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그는 선거제도가 만능민주주의가 결코 아니라 대의민주주의의 하나에 불과한 것이요, 특정 정당에 힘이 쏠리는 순간 그것은 백성 위에 절대 군림하게 되고, 그것은 결코 여러 민중의 목소리를 대변해 줄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이탈리아나 남아메리카의 일부 나라처럼 정당을 지금보다도 더 많이 두자는 뜻도 아니다.

그가 원하는 것은 현재 취할 수밖에 없는 정당의 틀 내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더 귀담아 들을 수 있는 구조로 개선 한다면 더 바랄 게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하버마스의 관점을 통해 인용하고 있는 '소통적 합리성의 근거'가 그것이다. 시민이면 누구나가 공적 토론의 장과 포럼의 장, 광장과 길거리의 집회, 그리고 인터넷 상에 자유로운 토론의 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 주는 것이 그것이다.

"롤스는 헌법의 질서를 옹호하는 비폭력적 시민불복종 운동이 사회를 무질서에 빠뜨린다면, 그것은 그 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책임이 아니라 그 유인을 제공한 권력에 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무질서는 시민이 아니라 정부가 만든다는 로크의 말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정부가 정당하게 법을 행사하고 있으며 정당한 정책을 집행하고 있다는 믿음을 시민들에게 지속적으로 주었다면 시민불복종 운동 자체가 형성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145쪽)

너무나도 예리한 지적 같다. 시민들은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하는 문제라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서 광장과 길거리의 촛불집회에 누구나가 자발적으로 참여할 수 있다. 그것은 일상을 벗어난 초일상의 정치참여 형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인원이 참여하기에 때로는 길거리를 때로는 몇 몇 상점들에 방해가 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것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경찰병력을 동원하여 닭장 같은 차 안에 시민들을 강제로 집어넣는다면, 그것은 시민들의 잘못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정부의 잘못이라는 뜻이다. 정말로 명석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감히 그런 생각을 한 번쯤이라도 해 볼 수 있겠는가?

획기적인 것은 또 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대통령과 정치인들을 2년에 한 번씩 심판을 받도록 법을 개정할 것도 주장하고 있다. 미국식에 준하는 법 개정을 원하는 바라 할 수 있다. 만약 그렇게만 된다면 선거철마다 시민들 앞에 굽신거리다가도 권좌에 오르기만 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꼴불견 정치인들을 볼 수 없을 것이요, 그때 그들은 진정으로 시민을 위한 대변자로 서게 된다는 뜻이다.


참여의 희망 - 광장에서 민주주의를 만나다

김만권 지음, 한울(한울아카데미)(2009)


#시민참여제도#시민불복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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