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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벽이 많다. 단독 주택에도 있고 아파트나 상가 내부에도 존재한다. 지금은 붕괴된 베를린 장벽도 벽이고, 범위를 조금 넓히자면 만리장성이나 38선의 철조망도 벽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많은 벽은 높이나 두께, 색깔 등 천차만별의 외양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모든 벽의 본질적인 역할은 같다. 그것은 '분리'한다는 것이다. 우리집과 다른집을 분리하고 이곳과 저곳을 나눈다.

 

잘사는 사람은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서 높은 벽을 쌓아올린다. 벽이 높고 두꺼울수록 그 벽 안쪽에 있는 사람은 그만큼 무언가로부터 보호받고 싶은 심정일 것이다.

 

마르티나 빌드너의 2008년 작품 <무루스>에도 이런 장벽이 나온다. '무루스'는 '벽'이라는 의미를 가진 라틴어다. 제목에서 암시하는 것처럼 이 작품에 등장하는 장벽은 아주 거대하다.

 

높이는 22미터에 달하고, 두께나 길이가 얼마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장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그 벽을 보면서 서로 떠든다. 장벽 너머는 아무것도 없는 낭떠러지라고 하는 사람도 있고, 그 너머에도 사람들이 산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확실한 것은 오직 하나뿐이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똑바르게 벽이 뻗어 있고, 그 벽 너머로는 아무도 갈 수 없다는 것이다.

 

미래에 만들어진 길고 거대한 장벽

 

<무루스>의 배경은 먼 미래다. 베를린 장벽이 붕괴되고 나서 약 400년 가량이 지난 시대다. 공간은 독일어가 사용되는 지구의 어느 한 장소. 하지만 미래의 모습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의 생활수준은 형편없다. 도시에는 빈민들이 널려 있고 부모없는 아이들도 많다.

 

치안도 안정되어 있지 않아서 절도와 살인이 자주 발생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는 대신 밖에서 일을 하고 성인들의 지식수준도 낮다. 마치 유목민의 생활을 보는 것처럼 양떼와 낙타를 몰고 다니는 사람도 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장터에서는 닭과 토끼를 사고 팔고 음식을 만들 때는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한다.

 

그 장터 바로 옆에는 거대한 장벽이 있다. 햇볕을 워낙 강렬하게 반사하는 바람에, 해가 떠오를 때면 장벽은 마치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덩어리처럼 보인다. 아래에서 장벽을 올려다보면, 위로 올라갈수록 흐릿해지는 윤곽이 하늘과 곧바로 맞닿은 것 같다.

 

장벽은 353년 전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장벽의 높이인 22미터보다 더 높은 건물을 만드는 것도 금지되었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교통수단인 '에어모프'가 있지만, 그것도 22미터 이상으로는 올라가지 못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장벽 너머에 뭐가 있는지 알 방법이 없는 것이다. 이들에게 장벽은 곧 신성불가침의 존재이자 절대적인 성역이다.

 

이런 도시에서 '요요'라는 이름을 가진 14세 소년이 양부모와 함께 살고 있다. 요요는 평소에 양 우리를 청소하고 양들에게 먹이를 준다. 장터가 열리는 날이면 양아버지와 함께 양떼를 몰고 장터에 간다.

 

요요는 이런 삶을 싫어한다. 양을 돌보는 것보다 더 나은 삶을 원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지 못한다. 호기심이 많아서 장벽에 대해 궁금한 점이 많지만, 아무도 그것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단조로운 일상을 파괴하는 일이 생긴다. 요요는 자신의 집앞에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한 소녀를 발견한다. 어딘가 이 지역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외모를 가지고 있다. 요요는 이 소녀를 집으로 데리고 와서 치료하지만, 정신이 든 다음에도 이 소녀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여기에 왔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혹시 이 소녀는 장벽 너머의 세상에서 온 것 아닐까?

 

모든 것이 분리되기를 원하는 사람들

 

장벽이 분리를 상징한다면, 장벽이 없어지면 분리도 없어질 것이다. 그동안 나뉘어져 있던 것들이 한데 섞이게 된다. <무루스>의 인물들은 이런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이들은 모든 것이 정확하게 구별되기를 원한다. 빛과 어둠, 밤과 낮, 뜨거움과 차가움처럼.

 

이런 역할을 하는 장벽이 없어진다면 혼란이 생긴다. 양떼를 늑대로부터 보호하는 울타리가 없어진다면 어떻게 될까. 양과 늑대가 뒤섞이면서 비극이 일어난다. 이들에게는 인생도 그런 것이다. 끊임없이 나누고 가르는 것이 인생이고, 완벽한 분리가 이루어질 때 두 가지가 서로 부족함 없이 나란히 있을 수 있다.

 

분리가 진정한 통일인 셈이다. 장벽이 존재의 근본은 아닐지라도, 벽에 의해서 세계의 질서가 생겨난다고 믿는다. 도시 한쪽에 세워진 거대한 장벽이 아니라, 이들은 자신의 마음속에도 계속 나누고 가르는 견고한 장벽을 하나씩 가지고 있는 것이다.

 

작가 마르티나 빌드너는 1968년 독일에서 태어났다. 아마도 베를린 장벽을 보면서 이 작품을 구상했을 것이다. 작품에서는 끊임없이 대립되는 것들을 분리시키려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이런 일들이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그다지 바람직 하지도 않다. 분리시키는 것만이 능사는 아닌 데다가, 우리의 인생도 어쩌면 모든 것이 뒤섞인 잡탕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무루스> 마르티나 빌드너 지음 / 김희상 옮김. 스타로드 펴냄.


무루스 Murus

마르티나 빌드너 지음, 김희상 옮김, 스타로드(2009)


#무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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