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을 한다는 이른바 '좌파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했을까?
많은 이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묻고 싶은 질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으로 촉발된 이러한 논란은 다수의 참여정부 지지자들을 돌아서게 만들었다. 노 전 대통령은 좌파·우파 모두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이에 대한 답을 해줄 수 있는 적임자는 김병준 국민대 행정학과 교수일 터다. 노 전 대통령의 오랜 정책파트너로서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내며 국정을 총괄했던 김 교수는 "신자유주의 영향으로 한미FTA를 추진한 것이 아니다"라며 "'좌파신자유주의'라는 지적은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인의 능력을 믿었기에 개방을 선택한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이어 "노 전 대통령은 넘어진 이들을 일으켜 세우는 국가의 (사회정책적) 역할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17일 저녁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이 읽은 책들' 강독회에서 김 교수는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국가의 역할>을 통해 노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과 그 비전을 밝혔다. 두 번째 강좌였던 이날 강독회에는 '10만인클럽' 회원 100여명이 참석해 큰 성황을 이뤘다.
경제위기 불러온 신자유주의 비판... 노무현도 공감책의 제목이기도 한 '국가(정부)의 역할'에 대한 논의는 노 전 대통령이 집권 후반기에 큰 관심을 쏟았던 사안이다. 김 교수는 "노 대통령은 시장의 힘에 밀리기로 하고 양보하기도 하면서 시장의 결함에 대해 깊이 인식했고 '국가가 제대로 되려면 공적부분이 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퇴임 후에는 이 문제에 거의 천착했다"고 말했다.
이 책에서 장하준 교수는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기에 앞서 신자유주의의 모순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김 교수는 "장하준 교수가 이 책에서 신자유주의를 실증을 통해 비판한 부분은 탁월하다"고 말했다. 그의 강독을 들어보자.
"신자유주의는 국가·관료 조직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한다. 착취기구인 국가는 기업집단 등의 이익을 대변하는 역할밖에 하지 못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 교수는 오히려 국가·관료조직이 시장의 중요한 행위자인 기업보다 더 도덕적이고 공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 또한 정치와 경제는 애초부터 분리시킬 수 없는 것으로, 국가의 개입을 줄여야 한다는 논리는 잘못됐다고 말한다."신자유주의로 경제는 나아지지 않았고 오히려 경제위기를 불렀다는 장하준 교수의 신자유주의 비판에 노 전 대통령도 찬성했다고 김 교수는 밝혔다. 김 교수의 강독이 이어진다.
"기술 진보가 빠르게 이뤄지고 소비시장이 빠르게 변하는 시장에서 기업은 투자를 꺼린다. 하지만 정부가 보험·보조금 제도 등으로 리스크를 관리해주면 기업은 보다 쉽게 투자할 수 있다. 정부가 역할을 하지 않으면 투자가 안 되면서 일자리 적게 생긴다. 이어 중산층·서민이 무너지고 소비시장이 죽어가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업이 투자를 하지 않으면 시중에 자금이 쌓인다. 그 결과 2000년대 들어 기업이 은행에 돈을 저축하고, 가계는 이를 빌려 집을 사는 데 썼다. 금융자본은 가계에 부동산 자금을 빌려주면서 부동산 값 폭등을 부추겼다. 이는 낭떠러지로 가는 길이었다. 적절한 정부 규제가 없는 상태에서 탐욕적 행위가 일어난다. 신자유주의가 팽배한 사회를 그냥 둬서는 안 된다.""한미FTA를 추진한 것은 한국인의 능력을 믿었기 때문"
김병준 교수는 책의 내용을 100%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김 교수는 "<국가의 역할>에서 한국의 고도성장을 이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 정책에 대해 긍정 평가하는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 그림자가 너무 짙고, 고도성장의 이유가 박 전 대통령의 산업정책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박 전 대통령 시절 정부는 총칼을 앞세워 분배를 요구하는 노동자·농민을 진압하는 한편, 정책금융을 통해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공장 망해도 땅값이 남도록 부동산 가격 폭등을 방치했다"며 "그 결과, 정경유착·부정부패로 국가의 신뢰가 훼손됐고, 부동산 가격 폭등을 통한 빈부 격차가 크게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김 교수는 한국의 고도성장은 박 전 대통령의 국가산업정책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두 가지 특성에 기인한 것이라고 밝혔다.
"우선 한국인은 까다롭고 따지기를 좋아한다. 이는 한국이 전자제품·화장품 등의 소비시장에서 테스트마켓이 되도록 하는 것으로, 이는 혁신을 촉진한다. 이와 함께 엄청난 교육열과 지적인 탐구력 등 성공을 향한 열정이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도움을 준 것이라고 믿는다. 한미FTA를 추진한 것도 한국인의 이러한 능력을 믿었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충분히 뚫고 나가서 세계 중심으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해서, 한 번 믿고 개방해보자고 한 것이다."이어 김 교수는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이 장하준 교수의 생각만큼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부의 인센티브가 워낙 커, 관료사회가 이해관계에 포착될 가능성이 높다"며 "또한 우리사회의 힘이 매우 다원화됐기 때문에 여당조차 설득하기 힘든 국가의 통치능력은 쉽게 힘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그는 "참여정부는 과거사 청산에만 몰두한 실패한 정부"라는 장하준 교수의 비판에 적극 반박했다. 김 교수는 "힘이 떨어진 정부의 통치능력은 해방 이후나 박정희 정권 시절, 정부의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국가의 개입은 신뢰와 정당성에서 기인한다, 과거사 청산은 국가의 신뢰를 확보하는 미래지향적 정책"이라고 강조했다.
"노무현, 국가는 어머니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
비판은 비판에서 끝나지 않고 대안으로 이어진다. 김 교수는 노 전 대통령의 말을 빌려 "장 교수는 정부가 산업정책적(아버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하는데, 국가는 사회정책적(어머니) 역할을 맡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어머니 역할은 넘어지면 일으켜 세우고 공부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패자부활전을 살리는 것"이라며 "핀란드처럼 한번 직장에서 떨어져 나와도 새로운 기술을 배워 신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국가가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노 전 대통령은 평생교육체계를 갖추고 싶어 했다, 그래서 고용안정센터를 가장 많이 방문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김 교수는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며 '깨어있는 시민'을 강조했다.
"1인 1표만 가지고는 민주주의가 안 된다. 내가 내 표의 주인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민주적인 정부를 세워서 시장 규제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자유주의가 앞장서고 민주주의가 뒤따르면 많은 사람들이 소외된다. 노 전 대통령은 민주주의는 진전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졌다. 모두 잘 사는 나라를 위해 같이 생각을 다듬고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