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자와 출판사에 항의하고 싶을 정도로 어려운 책오마이뉴스와 한국미래발전연구원(이사장 이재정)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노무현 강독회>의 본격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국가의 역할>(장하준 지음)은 "고약하게 어렵기"로 소문이 난 책이다.
오죽하면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기자가 이 책의 번역자(시사IN 이종태 기자)와 출판사 사장(부키)에게 직접 전화해서 "항의하는 사람이 없었느냐"고 물었을까? 하지만 신자유주의에 대한 본질적인 비판을 하고 있고, 이를 통해서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도전이라는 국가, 정치, 조정의 의미를 깊이 추구하는 책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11개(제1강을 오리엔테이션이라고 한다면 10강) 강연 전체의 총론으로 손색이 없다.
개인적으로 <쾌도난마 한국경제>(2006), <나쁜 사마리아인>(2007), <다시 발전을 요구한다>(2008) 순서로 읽고 네 번째로 읽은 게 이 책인데, <국가의 역할>이 가장 인상에 많이 남았고 읽기에 즐거웠다. 마치 유명한 작가의 신춘문예 작품이나 데뷔작을 보는 기분이라고나 할까?
장하준 교수는 대중에게 말을 거는 법에 대해 엄청나게 고민을 많이 하는 학자이고, 그런 문제의식이 <쾌도난마 한국경제> 이후로 풍성하게 결실을 맺고 있다. 하지만 학자로서 마음먹고 쓴 책이 바로 <국가의 역할>이 아닌가 한다. 장하준 교수가 직접 소개한 <국가의 역할>에 대한 코멘트를 옮겨 본다.
"<국가의 역할>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근원이 어디에 있고, 자유화·민영화·탈규제로 요약되는 그들의 주장이 역사적으로 볼 때 타당한 것인지, 이론적으로 볼 때 문제는 없는지를 정밀하게 점검한다."- 부키 출판사에서 부록으로 내놓은 장하준 인터뷰 페이퍼(<나쁜 사마리아인들>의 장하준을 만나다) 일부논문투의 문장이 곳곳에 보이지만, 오히려 그런 거친 면이 장하준 교수의 진면모를 드러내주는 것 같다. 대중적 글쓰기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주제에 대한 심도 깊은 접근을 방해한다. 만약 장하준 교수의 최근작을 읽고 허기가 달래지지 않는 사람이라면 <국가의 역할>을 읽어 보라. 반대로 <국가의 역할>이 너무 어려워서 페이지를 걷기조차 힘들다고 느껴진다면 앞서 언급한 3권의 책을 곁들여 읽을 것을 권한다. 장하준 교수와의 첫 만남으로 <국가의 역할>을 읽는 것에 대해서는 말리고 싶다.
노무현 대통령의 16년 파트너 김병준 교수와 함께 읽어본 장하준
김병준 교수(국민대)는 노무현 대통령이 국회의원 시절이던 1993년부터 호흡을 맞춰온 정책전문가다. 당시 지방자치 연구를 하고 있던 것이 인연이 돼 참여정부 시절 대통령비서실 정책국장, 정책기획위원장을 역임했다. 교육부총리에 내정됐으나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중복 논문 논란으로 낙마하고 말았다.
우선 김병준 교수가 탁월하게 평가했거나 노무현 대통령과 생각을 같이 하는 대목을 살펴보면, 국가가 대내외적으로 '신뢰의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부분이다. 장하준 교수는 전략적 불확실성 속에서 조절된 결과를 이끌어내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조건이 바로 신뢰 환경의 조성인데, 국가의 개입이 필요한 것은 바로 이 '신뢰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국가의 역할, 284쪽)
김병준 교수는 참여정부 기간 내에 거의 사활을 걸다시피 한 것도 바로 '신뢰 문제의 극복'이라고 말했다.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도록 대외적 환경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에 북한에게 갖은 모욕을 겪으면서도 '평화적인 협력관계'라는 기조를 유지해 남북 정상선언까지 이끌어냈다. 투자환경이 개선된 것이다. 이런 일을 삼성이 할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가장 많이 방문한 곳은 '고용안정센터'와 '평생교육원'이었다고 한다. 교육을 통해서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노동자가 재기에 성공해 안정적인 직업전환을 할 수 있도록 체제를 마련하면 현재와 같은 극한적 구조조정과 옥쇄파업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결국 이것도 신뢰의 문제로 귀결된다. 노동자가 기업과 국가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목숨걸고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것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지는 않지만 "과거사 정리" 문제도 잃어버렸던 국가의 신뢰를 되찾기 위한 작업이라는 측면에서 장하준 교수의 입장과 원칙적으로는 같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의 이면에는 국가가 지금까지 국민들에게 잘못을 많이 해서 신뢰를 잃었다는 자성이 담겨 있다. 이에 비해 한나라당이나 극우세력들은 국가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별로 없거나 하나도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 대한 주장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생각과 완전히 일치한다. 장하준 교수는 서두부터 '자유시장'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강력하게 의문을 제기하며 이론적으로 볼 때도 국가와 시장은 명백히 구분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시장'이 성립되기 위해서, 또는 유지되기 위해서는 국가가 필수적인 선결조건이라고 말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이와 비슷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국가가 없다면 시장도 없다"(노무현 대통령)경제학자와 정책가가 갈리는 틈새
김병준 교수의 장하준 읽기 부분이 강좌의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차이점을 말하는 대목이었다. 왜냐하면 경제학자와 정책결정자(또는 정책참여자)의 차이점을 읽게 됨으로써 장하준 교수가 주는 메시지의 선을 분명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는 과거의 데이터를 분석하여 현상을 진단하고 조언을 하는 역할을 한다. 물론 과거의 분석을 통해 문제점을 명쾌하게 지적하고 그에 대한 확실한 대안을 제시하기도 하지만, 학자의 덕목은 학문적 분석에 머무른다.
하지만 정책결정자는 비록 경제학자처럼 과거의 데이터와 경험이라는 자료를 분석하지만 결국 '대안'이나 '정책'이라는 방식으로 수렴되기 때문에 경제학자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입장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제학자가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는 '선택'의 순간을 매번 맞이한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경제학자는 경제정책에 대해서 비판적일 수밖에 없고, 정책결정자는 방어적일 수밖에 없다. 김병준 교수와 함께 읽어본 '장하준'은 경제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와 정책결정자 간의 한판 대결이면서 동시에 공통의 문제를 모색해보는 시간이었다.
장하준 교수는 제도주의 경제학자이다. 제도주의 경제학이란 인간의 행위, 사회에 제도가 미치는 영향과 과정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태생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기 때문에 신자유주의에 대해서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장하준 교수는 제도주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의 경제정책을 대입했는데, 참여정부와 생각이 많이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김병준 교수는 장하준 교수가 제도와 국가정책이라는 거시적인 관점에 비중을 많이 두기 때문에 사회문화적인 부분에 대한 분석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다. 국가가 총칼 진압을 통해 사회적 갈등을 관리했고, 갖가지 특혜와 국가 보증, 일방적인 정책 금융으로 기업의 위험부담을 과도하게 책임졌을 뿐만 아니라 부동산 가격을 상승시켜 "공장이 망해도 땅값이 오르게" 만들었다. 이는 1945년부터 1975년까지 미국의 이른바 '황금시대'와 비교했을 때 단적으로 차이가 드러난다. 미국은 가장 높은 정도의 소득 균형을 달성했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냈고 전보다 더 많은 경제적 안정을 만들어냈다. 때문에 미국인들은 민주주의와 정부를 높이 신뢰했다. 이 과정을 보면 한국의 이른바 '황금시대'라 일컬어지는 박정희 시대는 왠지 작위적이고 왜소해 보이기까지 하다.
김병준 교수가 이런 비판을 보이는 것은 학자의 견해와 달리 정책결정자는 많은 이해관계자를 아우르는 정부의 조정 능력을 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한국인의 특성이나 잠재력 등 장하준 교수가 세심히 관심을 갖지 않는 미시적인 요소들을 활용해야 불확실한 미래에 선택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약간 은유적이기는 했지만 김병준 교수의 '어머니 역할'과 '아버지 역할'의 구분은 인상적이었다. 참여정부가 추구하고 정책에 비중을 많이 실은 것은 '어머니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어머니의 역할이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지나친 경쟁사회에서 패자부활전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즉 산업정책보다는 사회, 문화적 역할을 중시하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에 패자부활전이 없어져 가고 있다. 한 번 넘어지면 아들도, 손자도 탈락되게 생겼다. 한 번 직장에서 떨어져 나오면 재기할 기회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하준 교수가 다소 '아버지의 역할'에 비교 우위를 두는 것이 아닌지 물었다. 아버지의 역할이 옳으냐 어머니의 역할이 옳으냐는 논쟁은 아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어떤 처방을 내리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되는지를 고민해보자는 제안으로 들렸다.
장하준, 김병준 교수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시급한 처방의 우선순위에 대해서는 다소 의견을 달리하지만, 궁극적인 방향에서는 일치하는 것으로 보인다. 장하준 교수의 한 인터뷰에 대해서 김병준 교수는 전적으로 동의하며 매우 훌륭한 생각이라고 칭찬했을 정도다.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경제학자들이 접점을 찾은 모습을 본 것 같아 반가웠다.
"200년 전에 노예해방을 외치면 미친 사람이었습니다. 100년 전에 여자가 투표권을 달라고 하면 무시당했고요. 50년 전 후진국들에서 독립운동을 한 사람들은 테러리스트가 되어 감옥에 갔죠. 20년 전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을 철폐하고 만델라가 풀려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단기적으로 보면 불가능해 보여도 장기적으로 보면 사회가 계속 발전을 합니다. 그러니까 대안이 무엇인가 찾고 이야기를 해야죠. 지금 당장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장하준 교수의 한 인터뷰) 덧붙이는 글 | <노무현 함께 읽기>의 기획 후기로서 블로거뉴스, 아고라, 알라딘 등에 동시 연재합니다. 매주 일요일 첫 리뷰 기사를 올리고 나서 목요일 강독회에 대한 리뷰, 피드백, 강독을 포함한 후기는 금요일에 올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