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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시오노 나나미'가 지은 '로마인 이야기'를 읽는다. 5권 째다. 몸살 앓는 것 같은 육신의 통증은 독서의 즐거움까지 훼방 놓는다. 그러나 통증을 잊기 위해서도 계속 읽는다.

광란에 빠진 14명이 한 사람을 마구 찌른 결과 카이사르가 입은 상처는 모두 23군데, 그중 가슴에 받은 두 번째 상처가 치명적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깨달은 카이사르는 꼴사납게 자빠지지 않도록 토가 자락을 몸에 감으면서 쓰러졌고 잠시 후 숨을 거두었다. 오랜 정적이었던 폼페이우스의 입상 발치였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죽어가면서 느낀 고통은 어떤 것이었을까? 배신에 대한 아픔일까, 육신의 상처에서 오는 아픔일까. 수시로 찾아오는 근육통, 기력이 몽땅 소진된듯한 몸 상태가 내 병의 주 특징이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동작은 둔해지고 정신은 흐릿해져 갈 것이다.

살아 있다는 것은 단지 먹고 배설하는 것만이 아니라, 생각하고 움직이고 그리고 느낄 수 있어야 하는 건데. 그래서 담당 의사에게 물었다.

"몇 년을 더 살 수 있습니까?"
"10년 이상 더 살 수 있을 겁니다."

나는 인간답게 사는 기간을 물었지만 의사선생님은 숨 쉬는 세월을 통틀어 말하고 있었다.

어느 고승이 말하기를 삶과 죽음은 손등과 손바닥이라고. 형태가 다를 뿐 본질이 같다는 말씀이다.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 또한 연약하고 욕심 챙기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수아비임을 믿는 나는 죽음 뒤에 오는 것에는 관심도 소망도 없다. 마치 물이 끓어 수증기로 변해 흩어지듯, 내 육신이 죽어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하늘의 이치로 받아들인다.

삶이 죽음의 단계로 넘어갈 때 그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그 과정이 되도록 짧기를 바라는 사람인데, 죽음을 선택하는 추첨에서 내가 최악의 카드를 뽑은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남들이 살 만큼 살았다고 생각하는 나는 삶에 대한 애착이나 미련도 남아있지 않다. 생사의 순환을 자연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나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안타까움은 더더욱 없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온 몸의 기능이 마비되어 가는 이 죽음의 과정이 나를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이 과정이 나 자신의 삶은 물론이고 내 주변 사랑하는 사람들의 삶조차 고통스럽게 만들 것을 생각하면, 맷돌에 눌린 듯 답답함에 숨이 막힌다.

누구든 죽음을 가까이 느낄 때 자기 삶을 한번쯤 뒤돌아보고 싶어 한다. 동물적 귀소본능이 작동한 듯이, 바쁜 아들놈을 앞세워 고향을 찾는다. 옛 친구도, 옛 거리도, 옛 집도, 본래의 것은 아무 것도 찾을 수 없지만 희미한 옛 추억의 흔적을 기억하면서 회상에 젖는다.

또 20대 젊은 시절 첫 일터였던 시골 군청 방문은 함께 늙어가는 친구와 동행한다. 목조 청사는 콘크리트 빌딩으로 바뀌고 건너편 주막집은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데, 앞마당의 은행나무는 예전 그대로 우람하다. 즐거웠거나 슬펐거나 아쉬운 사연들이 물감이 되어 노랗게 은행잎을 물들이고 있다.

죽음이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니 불현듯 과거의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어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지난 삶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일까. 아니면 '내가 누구'인지 새삼스럽게 죽음 앞에서 자기 자신을 찾고자 하는 무의식적인 하나의 몸짓일까. 

죽음에 임하면 사람들은 마음을 비운다고 한다. 욕심을 버린다고 한다.(물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그런데 과연 마음이 비워질까? 욕심이 사라질까? 비워놓은 마음이 허전해서 가득 채우고 싶은 욕심이 더 불같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릇을 비우는 대신 그릇을 엎으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아무것도 담을 수 없다. 그릇이란 말을 마음으로 바꾼다면? 마음을 엎어버리는 것. 그것이 무엇일까? 이것이 나의 화두다. 오늘도 이 화두를 붙들고 죽음을 향해 나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앞으로 나아간다.

덧붙이는 글 | '죽음'에 관한 특별한 이야기



태그:#죽음, #병,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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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태어난 해: 1942년. 2. 최종학력: 교육대학원 교육심리 전공[교육학 석사]. 3. 최종이력: 고등학교 교감 명퇴. 4. 현재 하는 일: '온천세상' blog.naver.com/uje3 (온천사이트) 운영. 5. 저서: 1권[노을 속의 상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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