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서 나오는 콧물은 막아야 한다. 흥, 하고 풀어내거나 수건 같은 것으로 닦아서는 안 된다. 물이 새는 양동이에 땜질을 하듯이 콧물이 새는 구멍을 꽁꽁 틀어막아야 한다. 내 생각이 아니라 어머니의 '실천강령'이다.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뭔가 싶었다. 발바닥에 무슨 껌 같은 것이 달라붙곤 하는데 껌은 아니었다. 화장지를 조금 떼어서 꼬깃꼬깃 뭉쳐놓은 것 같은데 이상하게도 발바닥에 달라붙는 것이었다. 촉촉하게 물렁하고 끈적끈적한 것이 흡사 개똥이라도 밟은 기분이었다.
어느 날부터 갑자기 등장한 그 이상한 콩알만한 물체를 나는 손으로 집어 들고 한참씩이나 들여다보곤 했다. 하지만 물렁하고 끈적한 그 불쾌한 기분 때문에 정밀분석까지는 못해보고 이내 쓰레기통 속으로 던져버렸다. 그런데 쓰레기통 속에 있어야 할 그것이 한참 뒤에는 다시 물컹 발에 밟히는 것이었다. 그러기를 사흘째, 드디어 정체가 밝혀지기는 했다.
마주앉아 밥숟가락을 놀리는데 어머니의 코가 이상하게 커 보였다. 콧망울이 부풀어 오른 것도 같고 무슨 혹이 생긴 것 같기도 했다. 이게 뭐예요? 하고 손을 내밀어 만져보려고 하는데 어머니는 매몰차게 아주 매몰차게 뿌리치며 "암 것도 아녀"하신다.
건강하셨을 때 어머니의 자존심은 평균 이상이었다. 없으면 굶거나 안 하고 말지 어떤 경우에도 이웃에 손을 벌리지 않았고, 안 좋은 소리 듣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해서 억울하게 손해를 보면서도 이웃과 언쟁 한 번 벌인 적이 없었다. 정신을 놓아버린 뒤에도 그 자존심은 쩡쩡하게 살아 있었다. 그것을 알고 있는 나는 더 이상 그 문제를 거론하지 않고 어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정밀 감시하는 방식으로 문제의 비밀을 밝혀보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코마개라고 하는 기상천외한 기구를 제작해서 사용하는 어머니의 신종 의료기법을 알게 되었다. 화장지를 뜯어서 손바닥에 놓고 싹싹 비벼서 둥글고 단단하게 뭉친 다음 콧속에 집어넣는다. 콧물이 화장지 뭉쳐진 것을 적시면 미끌미끌해지고, 그러면 그것은 가볍게 흥, 소리 한 번에 자동으로 쏙 빠져 나온다. 어머니는 그렇게 아무 데서나 앉은 자리에서, 혹은 선 채로 흥, 하고 소리를 내서 콧물로 미끌미끌해진 작은 구슬 같은 것을 떨어트리고 다니는 것이었다.
귀마개와 마스크는 보았어도, 안대는 보았어도 코마개는 살다살다 처음이었다. 어쨌든 그 옛날 초등학교 입학했을 때 어머니가 내 가슴에 달아주었던 콧수건이 생각나서 수건 하나를 어머니 가슴에 달아놓기로 했다. "콧물이 나오면 이것으로 이렇게 닦는 거예요, 알았죠?" 그러나 어머니는 그것을 이내 뜯어버렸다.
"내가 무슨 애기간디."
화장지를 감추다, 방바닥이 찢겨나가기 시작하다
그래, 분명 애기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수건을 들고 어머니 옆에 붙어 다니며 콧물이 나올 때마다 닦아낸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생각다 못해 화장지를 감춰놓기로 했다. 그때그때 필요한 만큼씩만 뜯어서 변기 옆에 놔두고, 그러니까 어머니가 화장실을 다녀올 때마다 들어가서 화장지를 보충해 놓기로 하고 나머지는 죄다 감춰놓자는 참으로 어리석은 생각을 나는 기발한 발상이라고 스스로 칭찬까지 해가며 실천에 옮겼다.
효과는 다음날 바로 나타났다. 방안에 있는 종이들이 어머니의 콧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신문지든 책이든 손에 닿는 무엇이든 찢어서 둘둘 뭉쳐 콧속에 넣고 있었다. 그날 바로 화장지를 내놨으면 되었을 것을, 무슨 경쟁심이 발동한 것인지 나는 집안에 있는 모든 종이로 된 것들을 어머니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으로 몰아넣었다. 그러자 이번에는 방바닥이 찢겨나가고, 벽지가 찢겨나가기 시작했다.
집을 수리할 때 비닐장판을 깔지 않고 신문지로 초배를 한 다음 시멘트포대 종이로 마감을 했기 때문에 풀기가 모자란 모서리 같은 데가 마치 오래된 천의 보풀처럼 드러나 있기 마련이었다. 벽지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에는 잘 띄지도 않는 그것을 어머니는 기가 막히게도 찾아내서 온 정성을 다해 살살 뜯어내가지고 코마개를 만들어 사용하는 것이었다.
아, 이 무슨 어처구니없게 기발한 발상이란 말인가. 두 손 두 발 다 들고 항복을 선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화장지를 도로 내놓고 말았지만, 그러나 어머니는 이미 방바닥 찢어내는 재미에 맛을 들여버린 것 같았다. 화장지는 화장지대로 쓰면서도 장판지와 벽지를 찢어내서 코마개를 만드는 어머니의 이 기발한 창조정신은 그쯤에서 멈추지 않았다. 마치 진화에는 끝이 없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이번에는 마당에만 나가면 쪼그리고 앉아 잔디를 뽑아내기 시작했다.
처음 이 집에 이사를 와서 마당에 채송화씨를 뿌렸더니 꽃이 피면 페르시아 융단이라도 깔아놓은 것처럼 보기에 참 좋았다. 그런데 흙이 황토라서 비만 내렸다 하면 멋대로 골이 파이고 발이 푹푹 빠져 움직일 수가 없다. 게다가 발자국이 햇볕에 마르면 거의 돌이 되어버리는 게 황토의 특징이었다.
고민 끝에 눈물을 머금고 잔디를 심기로 했다. 마당에 깔 정도의 잔디는 굳이 돈 주고 살 필요도 없었다. 여름 한철 도로변에 아스팔트 위로 무성하게 기어 올라오는 잔디를 손으로 북북 뜯어다가 하나씩 둘씩 마치 모내기를 하듯이 심어주면 되는 일이었다. 그 일을 호미질에 익숙한 어머니가 당신 일이라고 아들은 얼씬도 못하게 하고 혼자 도맡다시피 해서 심었는데 꼬빡 사흘이 걸렸다. 그게 겨우 삼 년 전 일이었다.
삼 년이 지난 지금 어머니는 잔디를 잔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이 며칠이나 걸려서 정성스레 심었던 잔디를 이제는 풀이라고, 뽑아야 할 잡초라고 생각하신다. 밖에 나가서 운동 좀 하자고, 꽃도 많이 피었는데 꽃길을 걷자고 조르고 졸라서 나오면 그냥 쪼그리고 앉아 잔디를 뽑아댄다. 운동은 무슨 운동이냐고, 마당에 풀이 이렇게도 많은데 풀을 뽑아야지 운동은 무슨 운동이고 꽃은 또 뭐냐고 우겨대며 잔디를 뽑아대는 어머니의 눈에는 꽃도 이미 꽃이 아니다.
그것은 풀이 아니라고, 잔디라고, 뽑아서는 안 된다고 말해봐야 소용이 없다. 처음에는 "으응 그래?" 하고 고개를 끄덕거리기도 하지만 삼 초도 안 돼서 잊어버리고 다시 뽑아대며 무슨놈의 풀이 이렇게도 많은지 모르겠다는 등 혼잣말이 줄을 잇는다. 하는 수 없이 운동 그만 하고 들어갑시다, 해서 안으로 들어가지만, 신기하게도 그것만은 또 잊지 않고 있다가 금방 풀 뽑으러 가야 해, 하고는 다시 밖으로 나와 쪼그리고 앉는다.
잔디는 뿌리가 길고 질겨서 손으로 쏙쏙 잘 뽑히는 식물이 아니다. 그런데도 어머니는 작은 돌멩이로 콕콕 쪼아서 뿌리를 절단한 다음 하나씩 뽑아낸다. 저렇게 뽑아서 얼마나 뽑아내랴, 해보지만 그것이 아니다. 흡사 개미가 먹이를 물어 나르듯이, 톡톡 쪼아서 하나씩 뽑아낸 잔디가 금방 무더기로 쌓여 있곤 한다. 석기시대의 생활상이 금방 이해가 되는 대목이기는 하지만, 석기시대나 마나 우선은 답답하다.
"그걸 왜 자꾸 그렇게 뽑으려고만 해요?"
"아이 풀인게. 밥값이라도 해야지."
밥값... 어머니는 왜 잔디를 뽑고 코마개를 했을까
밥값, 밥값? 갑자기 온 몸에 전기가 짜르르 흐른다. 그것이었던가. 진정 그것이었던가. 밥값.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순간의 어머니는 뭔가 의식이 돌아왔다는 증거다. 그런데 하필 그 의식이 밥값이란 말인가. 내 안에서 뭔가가 무너진다. 연세 일흔을 넘어설 즈음부터 어머니는 입버릇처럼 말씀하시곤 했었다. 자식들한테 폐 끼치고 살 바에는 약이라도 먹고 미리 죽어야지. 그때는 피식 웃고 말았었다. 어머니 자신도 민망한지 그 말을 하고는 얼른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려버리곤 했었다. 그런데 그때의 그 생각이 아직도 어머니의 희미한 의식을 주도하고 있는 모양이다.
생각해보니 코가 나온다고 구멍을 틀어막는 행위에도 뭔가 구체적인 동기가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그 동기란 어머니 자신을 이롭게 하자는 게 아니라 아들에 대한 배려 내지는 최소한의 <밥값>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게 뭘까. 콧구멍을 틀어막는 것이 어떻게 해서 밥값과 연결이 되는 것일까.
이런 문제는 고도의 수학적 추리를 요구하는 것이라서, 아무래도 내 머리로는 풀어낼 길이 없을 것 같다. 열심히 잔디를 뽑아내는 어머니 옆으로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눈을 끔벅끔벅 해가며 흘러가는 구름이나 멍하니 보고 있는데 어머니가 불쑥 묻는다.
"근디 아저씨는 어서 오셨소?"
"응? 허이 참 나, 아니 나 몰라요, 나?"
"금메, 어서 본 것 같기도 허고."
웃음이 나온다. 웃음은 금방 눈물을 부른다. 그러나 그것을 보여서는 안 된다. 이런 때는, 다른 때라면 몰라도 이런 때는 그저 웃어야 한다. 웃는 얼굴로 한 발 더 들어가 보기로 한다.
"아들 없어요?"
"아들 미국 갔어라."
"왜요? 언제?"
"돈도 다 떨어졌을 텐디, 에미년이 돈도 못 부치고."
잔디를 뽑는 어머니의 손길이 바빠진다. 아마도 그렇게, 부지런히 잔디를 뽑으면, 아들에게 부칠 돈이 생긴다고 믿는 모양이다. 항상 그렇게 돈을 생각하며 잔디를 뽑는 것은 아니겠지만, 아들이 옆에서 아들 어디 갔느냐고 물으면 불현듯 아들이 생각나면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의지가 순간적으로 발동하는 모양이다. 그 순간의 어머니는 <지금> 누군가에게 고용되어 열심히 잔디를 뽑아야 하는 어엿한 직장인이 되는 것이다.
자나 깨나 자식 걱정이라더니,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만은 다른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해도 변치 않고 남아있는, 그럴 수밖에 없는 별빛 같은 그런 것인가 보다. 한낮인데도, 내 눈에 별이 반짝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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