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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왼쪽 아래 외서면 메타세콰이어길, 위쪽 벌교읍 소화다리, 우측 아래 낙안면 낙안읍성내 전시가옥의 화장실 사진
사진 왼쪽 아래 외서면 메타세콰이어길, 위쪽 벌교읍 소화다리, 우측 아래 낙안면 낙안읍성내 전시가옥의 화장실 사진 ⓒ 서정일

필자가 길게는 5년, 짧게는 2년 동안 낙안군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옛 낙안군 지역을 돌아보면서 가장 가슴 아프게 생각한 것이 세 가지 있다. '외세의 침입? 국가가 방치? 인근 3개 시·군의 고착화?' 아니다. '이 지역에 있는 나무, 화장실, 그리고 다리다.'

 

혹자는 그동안 '낙안군 폐군은 일제가 어쨌다, 국가가 책임져야, 인근 3개 시·군은 각성해야, 지역민부터 반성해야 한다'라고 감당하기도 힘들게 무거운 짐을 버겁게 지고 다니면서 떠들더니 이제 종착역에 다다르니 고작 쪼잔하게 '나무, 화장실, 다리'가 가장 가슴 아프다니 뭔 소리냐? 하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필자에겐 그 세 가지가 가장 가슴 아팠다.

 

'나무'는 현재 외서면에 있는 메타세콰이어를, '화장실'은 낙안면 낙안읍성내의 초가집 화장실을 그리고 마지막 다리는 벌교읍의 '소화다리'를 말하는 것이다.

 

메타세콰이어는 순천시 외서면 약 600여 미터의 도로가에 심어져 있는 가로수로 지금으로부터 약 40여 년 전인 1970년 초, 담양, 보성 등과 함께 시범가로수로 조성했던 것인데 지금껏 이 지역 명물이었고 운치를 더해주던 나무다. 그런데 최근 새롭게 도로가 나면서 대여섯 그루 나무가 잘리고 훼손이 됐다.

 

낙안읍성 화장실은 사적지로 지정된 낙안읍성내 전시가옥의 초가집 화장실로 오랜 세월 재래식 화장실로 있었고 보존가옥으로 지정된 뒤로도 최소 26년 동안 그 모습을 유지하던 것을 최근 내부 구조를 바꿔 타일을 붙이고 좌변기 등을 설치해 겉은 초가집이지만 내부는 현대식으로 만들어버렸다.

 

 작년(2008년)까지만 해도 벌교읍에 있는 소화다리는 일제강점기와 민족의 이념대립속에서 피의 숙청과 같은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듯 애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 시멘트로 모두 덧발라 놓아 느낌이 사라졌다.(2008년 8월의 소화다리 모습)
작년(2008년)까지만 해도 벌교읍에 있는 소화다리는 일제강점기와 민족의 이념대립속에서 피의 숙청과 같은 아픈 역사를 담고 있는 듯 애잔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올해 시멘트로 모두 덧발라 놓아 느낌이 사라졌다.(2008년 8월의 소화다리 모습) ⓒ 서정일

소화다리는 벌교천을 건너기 위해 지난 1931년 일제가 건설해 놓은 콘크리트 시멘트로 만든 다리이며 소화 6년에 건립됐다고 해서 소화다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일제강점기 때는 일본인과 조선인의 주먹다짐의 장소로, 좌·우익 대립 때는 피의 숙청 장소로 가슴 아린 장소다. 최근 난간이 깨지고 떨어져 앙상하게 철근이 노출됐다고 시멘트로 덧발라 놓았다.

 

필자가 이 세 곳을 지적하면서 가장 가슴 아프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바로 그것들이 모두 '공공의 가치'라는 것 때문이다. 메타세콰이어길은 볼품없이 절단됐고 다시 자라는 데는 40여년의 세월이 걸린다. 초가집 재래식 화장실은 본래 의미를 상실해버렸다. 시멘트로 덧발라 새로 만든 소화다리는 이제는 여느 시골 시멘트 다리나 마찬가지로 전혀 감흥이 오지 않는다.

 

여기 낙안군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들어오는 입구에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가 있고 동네에 한 채 밖에 남지 않은 초가집이 있고 그곳으로 들어오는 곳에 의미 있는 다리 하나가 있다. 이 마을을 구경 오는 사람들은 이 세 가지 것을 보러 온다.

 

그런데 손님들이 오기 좋게 새 길을 놓겠다면서 메타세콰이어를 잘라버렸다. 손님들이 이용하기에 편리하도록 한다는 명목으로 초가집 화장실 내부를 현대식으로 바꿔놓았다. 세월의 흔적과 피의 역사가 묻어있는 듯 허름하고 애잔한 다리모양새를 보기에 안좋고 안전상 이유로 네모반듯하게 덧발라 버렸다.

 

이것은 손님들이 이곳에 무엇 때문에 오고 무엇이 가치인가 하는 기본적인 물음과는 동떨어진 그들만의 실적자랑이며 돈 잔치에 불과하다. 그렇다고 궁지에 몰릴 이유도 없다. 그저 '손님의 편리와 안전을 위함'이라는 적당한 핑계와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여기에서 그치면 왜 그토록 가슴 아파하겠는가? 이미 예정된 수순이겠지만 손님이 비켜가기 시작하면 메타세콰이어를 벌목하고 그곳에 화단을 조성할 것이다. 초가집 화장실은 헐어버릴 것이며 다리는 현대식 철골구조로 다시 짜 맞춰 세울 것이다. 손님이 오지 않기에 다시 불러들여야 한다는 것이 이유일 것인데 이로써 원래 가지고 있던 의미는 찾을 길이 없고 그저 그럴듯해 보이는 왜곡된 허상들만이 자리하게 될 일이다.

 

처음엔 각도가 조금 빗나갔지만 결국 엄청나게 벌어졌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울 때만 해도 그러려니 하다가 끝 단추까지 나가보니 옷매무새가 전혀 다르다. 헛되게 돈만 쓰고 영원히 돌이킬 수 없는 풍경만이 남게 됐다. 물론 이 세 곳이 모두 개인이 소유한 것이라면 각 개인마다 기준이 있기에 함부로 가치를 얘기할 성격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히 그것은 공공의 것들이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낙안군 폐군도 그랬다. 멀쩡하게 있던 고을이 일제에 의해 세 군데로 쪼개졌다. 일제가 패망하고 물러났으면 그것을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 것인가 하는 기본적이며 근본적인 관점에서 접근했어야 옳다.

 

당연히 억울하게 폐군되고 쪼개져 생활하고 있는 그들에게 묻고 그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어야 했다. 그런데 101년 동안 단 한 번도 그들을 고려한 일들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저 이유와 핑계로 일관하면서 그 고랑을 매웠다. 그 결과 지금은 지역민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고, 또 지역은 피폐한 채 남아 있다.

 

메타세콰이어, 재래식 화장실, 피의 소화다리. 하찮은 듯 보이지만 모두 속 깊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런데 그 가치를 잃게 되면 모든 것을 잃게 된다. 공공재의 변화에는 근본적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소수 지도층의 관점이나 효율성의 입장에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지역과 지역민에게 직접적으로 연관된 낙안군 폐군과 회복 같은 중차대한 일은 당연히 근본적인 의문과 물음에서 출발했어야 함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낙안군과 낙안군 폐군(廢郡) 
현재의 순천시 외서면을 비롯해 낙안면, 별량면 일부, 보성군 벌교읍 그리고 고흥군 동강면, 대서면 일부의 땅은 옛 낙안군이었다. 하지만 101년 전인 지난 1908년 10월 15일, 일제는 항일투쟁무력화, 동학혁명진원지분산, 침략거점도시화를 위해 낙안군 자체를 없애버리고 주민들을 인근 지역 세 곳으로 강제 편입시켰다.

덧붙이는 글 | 남도TV에도 실렸습니다


#낙안군#남도TV#소화다리#낙안읍성#메타세콰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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