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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제물포역 북광장 상가 밀집지역
 인천 제물포역 북광장 상가 밀집지역
ⓒ 강남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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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 6시 인천 제물포역 북광장 상가 밀집지역. 평소 같으면 대학생들로 활기를 띠고 있어야 할 시간대이건만 몇몇 지나가는 사람들을 제외하곤 상가를 이용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식당, 호프집, 당구장 등 상가들은 오늘도 어김없이 손님 맞을 네온을 밝히지만 주인들의 얼굴엔 상념이 깊다. 가을바람에 분위기만 더욱 스산하다.

상인들 "자고 나니 세상이 변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이른바 '황금상권'의 중심지였다. 인천대학교를 위시해 인천전문대, 지하철 1호선 제물포역과 가까워 대학생은 물론 일반인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특히 금요일 저녁 때는 너무 바쁜 나머지 상인들의 즐거운 비명(?)이 끊이질 않았던 곳이다.

하지만 영원할 줄 알았던 황금상권도 도시재생사업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인천대학교가 이전하면서 상권이 완전히 무너져 상인들은 이제 끼니걱정과 사채시장을 기웃거려야 할 처지가 됐다. 상인들은 "자고 나니 세상이 변했다"고 회상했다.

인천시는 지난 2005년부터 가정오거리, 도화, 가좌IC, 숭의운동장, 제물포·인천·동인천역세권 등을 도시재생사업지구로 선포하고 수용방식의 도시개발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중 도화지구는 인천대를 송도로 이전시키고 인천대 부지에 공동주택을 지어 분양하는 사업이다. 이곳은 제물포역세권 도시재생사업 지구이지만 위치상 인천대와 붙어 있어 인천대 영향권이다.

인천대 이전이 발표된 지난 2005년 이후 이곳 상권은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 급기야 지난 9월 인천대가 송도캠퍼스로 이전하면서 상권도 같이 붕괴됐다. 일부 상인들은 인천대 이전 발표가 나자 가게를 다른 곳으로 옮기려 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가게를 내놓아도 상권이 죽어가는 곳에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용산사태의 상가세입자들은 그래도 나은 편입니다."

이곳에서 5년 동안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는 김성길(가명)씨의 첫마디다. 사정이 어떻기에 6명의 목숨을 앗아간 용산4구역보다 더 열악하다는 것일까.

"용산4구역은 사업진행이 빨라 그나마 얼마간의 영업보상이라도 받았지만 이곳 상인들은 서서히 말라죽고 있습니다. 장사도 안 되고 가게도 나가지 않아서 권리금·시설비 보전은 고사하고 보증금 까먹은 지도 오랩니다. 보상이라도 빨리 나온다면 그나마 보탬이 될 텐데…."

"용산사태 상가세입자들은 그래도 나은 편"

김씨의 식당은 인천대가 있을 당시 하루 60만~70만 원의 매출을 올렸었다. 30여 평의 식당에 김씨 내외와 3명의 종업원 등 5명이 일하면서도 밀려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빠듯할 정도였다. 그러나 인천대 이전 발표가 나면서 매출이 급감하기 시작해 이전한 후론 하루 5만원도 구경하기 힘들게 됐다. 어떻게든 버텨보려 종업원도 다 내보내고 내외만 식당을 지키고 있지만 요즘 매출로는 공과금 내기도 어렵다. 김씨는 얼마 전 사채를 빌려 월 100만 원의 임대료와 생활비로 쓰고 있다.

인천대 이전 발표부터 이전까지 어느덧 몇 해가 지났다. 그러면서 김씨와 같이 사채를 빌려 생활하는 상인들도 점점 늘어났다.

호프집과 독서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엄봉철씨는 기자에게 마이너스 통장을 보여줬다. 엄씨는 상권이 살아있을 때 매일 두 업소를 합쳐 100만 원 이상의 매출을 올렸지만 최근 3개월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받지 못했다. 당연히 빚을 내 살 수밖에 없는 상황. 이곳 380여 업소 상인들은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빚쟁이'가 됐다.

인천시는 지난 2007년 3월 제물포역세권을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고시하면서 사업 목표연도를 2013년 12월로 정했다. 이후 2009~2010년 정도에 보상이 실시된다는 얘기가 흘러나왔다. 하여 대부분 상인들은 인천대가 이전하더라도 큰 타격은 입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기약 없는 보상... 사채까지 써야 할 판

상인들이 보상과 관련한 자신들의 예상이 빗나간 사실을 안 것은 지난 6월. 인천시가 6월 26일 촉진계획 공람공고를 실시하면서 느닷없이 사업 목표연도를 당초보다 7년이나 늦춰 2020년 12월로 잡은 것이다. "조금만 참으면 된다"고 서로를 다독였던 주민들은 이날 억장이 무너지는 아픔을 겪었다.

사업이 인천시의 계획대로 된다고 해도 상인들은 지금 같은 생활을 7년이나 더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결론이다. 하루도 견디기 어려운 이들의 "서서히 말라죽고 있다"는 말이 엄살이 아님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인근 도화지구 상인들의 처지는 더욱 딱하다. 도화지구는 제물포역세권보다 훨씬 빨리 사업이 추진됐지만 차일피일 보상이 늦춰지면서 피해도 눈덩이처럼 커졌다.

도화지구는 2006년 5월 도시개발구역지정, 2007년 9월 보상계획 공람공고가 났다. 상인들은 2007년 말 보상이 시작된다는 인천도시개발공사(사업시행자)의 말을 듣고 다른 가게 자리를 알아보는 한편 일부는 빚을 얻어 계약금까지 치렀다.

상인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 주변 상가 시세가 오르게 되면 상가 얻기가 힘들어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보상이 늦어지면서 이들은 계약금을 모두 날리는 처지가 됐고 빌린 계약금을 갚으려 또 빚을 냈다.

"급한 마음에 일수를 썼는데, 공치는 날이 많아 갚을 길이 막막하네요. 내년 큰 놈의 대학 등록금도 맞춰야 하는데…."

울분을 참지 못한 박경희(가명, 식당업)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의 울음은 30분 동안 계속됐다.

도화지구 상인들이 이처럼 고초를 당하는 데에는 사업시행자인 인천 도시개발공사의 잘못이 크다. 사업 초기에는 원주민들의 이주대책 주택을 공급할 수 없어 말썽이 나더니, 이제는 주민들에게 줄 보상금을 마련하지 못해 사업진행이 어려운 형편이다.

인천대가 이전하면 지역 상권 붕괴에 이은 영세상인 초토화는 불 보듯 뻔했지만 도개공은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않았다. 곧 보상을 한다고 해도 이곳 상인들의 재기 여부는 불투명하다. 상인들은 "용산사태 때 죽음을 각오하고 망루에 올랐던 사람들의 심정을 이제야 알게 됐다"며 "우리도 그들 같이 되는 게 두렵다"고 했다.

"우리도 용산 사태 때처럼 될까 두렵다"

"한 달 후에 보상이 실시된다는 말을 2년째 듣고 있습니다. 올해만 들어서도 벌써 6월, 8월, 9월… 지금은 10월 말께 보상한다고 하지만 이제는 믿지도 않습니다."

치킨 배달업을 한다는 최미경씨는 인천시와 도개공의 행정에 대한 불신이 이만저만 아니다. 그는 보상을 포기하고 진작 다른 곳으로 이사하지 못한 자신을 질책하고 있었다.

용산4구역이 민간 사업시행자(조합)가 시행하는 재개발(도시환경정비사업)이라면 도화지구는 공공이 시행하는 재개발(도시개발사업)이다. 또한 용산은 관리처분 방식으로, 도화는 수용방식으로 진행되는 점이 다르다.

인천시 손해근 도시재생국장은 지난 2월 동인천역세권 촉진계획 수립을 위한 주민설명회에서 영업세입자에 대한 대책을 묻는 한 주민의 질문에 "도시재생사업은 민간이 개발하는 용산4구역과 달리 공공이 개발해 용산사태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고 공언했다. 손 국장 말은 민간 사업시행자는 영업손실 보상을 적게 주려 해 용산사태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지만 공공에서는 법에 의한 권리를 보장해주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없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상인들에게 손 국장의 이같은 발언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법에 의한 권리도 제대로 된 행정을 펼칠 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진리를 몸소 체득한 탓이다.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하는 관계자들이 이들의 어려움 앞에서 다시 "민간과 공공이 다르다"고 설득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덧붙이는 글 | <도시개발신문> 10월 14일자에도 실렸습니다.



#인천 도시재생사업#수용방식 도시개발사업#인천대학교#상가세입자#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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