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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열흘째 단식 기도를 하고 있던 문규현 신부가 22일 새벽 실신해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해있다. 병원 측은 "아직까지 의식불명 상태이지만 큰 위기는 넘겼다고 본다"며 "내일 의식이 회복되는대로 심장내과에서 진료를 받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산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열흘째 단식 기도를 하고 있던 문규현 신부가 22일 새벽 실신해 여의도 성모병원에 입원해있다. 병원 측은 "아직까지 의식불명 상태이지만 큰 위기는 넘겼다고 본다"며 "내일 의식이 회복되는대로 심장내과에서 진료를 받게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이경태

"주님, 아직은 때가 아닙니다."

전종훈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신부는 온몸과 마음을 다해 화살기도를 올렸다. 22일 새벽 5시 10분 문규현 신부가 서울 신월동성당 사제관 화장실에서 컥 하는 소리를 내며 쓰러진 뒤 119 구급대에 실려 목동 이대병원 응급실을 거쳐 여의도 성모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질 때까지, 그리고 그 이튿날 오후 뇌파작용이 양호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까지 기도는 계속됐다.

"나 때문에 혹시…, 이런 생각이 드니까 도무지 못 견디겠더군요. 새만금 삼보일배, 생명평화를 위한 오체투지,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문 신부님 하면 뭐가 떠오르는지. 고통 받는 약자와 함께 늘 길 위에서 살던 분인데, 몸이 회복되기도 전에 또 단식을 하셨으니…."

전 신부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용산참사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 죽기를 각오한 단식을 결행한 것은 전 신부 혼자였다. 그러나 후배신부 홀로 곡기를 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고 생각한 선배신부는 지난 12일 시국미사 강론 도중 돌연 선언했다. "나도 함께 하겠다"고.

검게 타들어간 말라붙은 입술, 푹 패여 도드라진 광대뼈, 까칠한 피부, 흰 수염과 거친 손. 열흘간 곡기를 끊은 전종훈 신부 역시 몸 상태는 말이 아니었다. 몸도 몸이지만 그는 마음이 훨씬 더 힘들어 보였다.

지난 22일 오후 3시경 중환자실에서 문 신부 면회를 마치고 나오는 전 신부와 병원 1층 로비에서 마주쳤다. 한 손에 물병을 쥔 그는 다른 한 손으로 기자의 손을 잡은 뒤 가벼운 눈인사와 함께 긴 한숨을 토해냈다. 놀랐다고 했다. 이어진 간단한 외마디가 가슴을 적셨다.

검찰 수사기록 3000쪽 빠진 반쪽짜리 재판

"다 죽으라는 건가?"

오랜 단식으로 눈망울이 더욱 맑아진 전 신부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도리어 물었다. 대한민국 가톨릭 사제 200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시국미사'까지 올리고 있는데, 마이동풍으로 일관하는 이명박 정부를 도대체 어쩌면 좋으냐고 토로했다.

지난 12일 시국미사 때 인터넷매체를 포함해 단 하나의 언론사도 용산참사 문제에 눈길조차 주지 않더니, 문규현 신부가 쓰러져 병석에 누우니 방송국 카메라도 나타나고 신문기자들도 몰려왔다면서 아무래도 더 많은 신부들이 죽어야 용산문제가 해결될 모양이라고 역설했다.

전 신부는 벌써 5개월째 거리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러 사람들이 모이는 집회도 열었고, 1인시위도 했다. 스님들이 시국법회도 열었고, 매주 목요일엔 목사님들이 시국기도회도 연다. 거리에서 잠들기는 이미 밥 먹듯 했다.

그러나 정부는 변한 게 없다. 전 신부는 농성하는 신부들과 유족들이 지쳐 떨어지기만을 바라고 있는 꼴이라고 했다. 어느 한쪽이 지쳐 나가떨어질 때까지 한번 해보겠다는 게 이명박 정부의 태도인 것 같다며 헛웃음을 날렸다.

그 표징이 22일 열린 망루농성 철거민 재판의 검찰 구형이라고 했다. 철거민들은 결심공판에서 검찰로부터 5년에서 8년까지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검찰은 이충연씨를 비롯한 3명의 용산 4구역 망루 농성자들에게는 '특수공무방해치사상'죄를 적용해 8년형을 구형했다.

검찰이 수사기록 3000쪽을 내놓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반쪽짜리 재판이기 때문에 더욱 이 구형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게 전 신부의 생각이었다. 문 신부 또한 이번 검찰구형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고 전 신부는 말했다.

유가족들은 28일 열릴 1심 선고에 앞서 탄원서를 냈다. 이들은 "생존권을 주장하다가 용역들의 폭력에 쫓겨 올라갔던 철거민들이 도심 테러분자로 몰려 공권력에 의해 살해 당한 사건이 용산참사"라며 "9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는 제대로 된 사과 한마디 하지 않고 있다"고 재판부에 청원했다.

이어 "위정자들은 철거민들의 생존권 보장 요구에 대해서도 '불가'하다는 얘기만 거듭할 뿐"이라며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이 죽었고 중경상을 입은 이들도 수십 명인데,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망루 농성 철거민들에게만 지워져 있는 것이 과연 상식적으로 가능한 일이냐"고 이명박 정부를 책망했다.

또한 이들은 "무리한 강경진압의 책임자들은 정치적, 법적, 도의적 책임에서도 모두 벗어나 있다"며 "기소권을 독점한 검찰의 일방적인 편파수사는 강제부검에 이어서 유가족들에게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오로지 법과 양심에 따라 판단할 것이라 믿는다는 이들은 "희망을 잃은 많은 국민들은 이번 재판의 판단을 주목하고 있다"며 "실의에 젖어 있는 유가족과 구속자들, 철거민들, 그리고 더 많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시기를 간곡히 바란다"고 당부했다.

전 신부는 "제대로 된 정부라면 5개월째 이럴 수가 없다"면서 "다 죽으라는 것밖에는 안 된다"고 분노했다.

 전종훈 신부
전종훈 신부 ⓒ 용산 범대위

정운찬 총리도 유가족 만났는데... 대충 장례 치르라?

전 신부는 "정말로 이명박 정부가 또 다른 죽음이 있은 뒤에야 용산참사 문제를 해결하겠다면 사제단은 다 죽을 각오로 싸우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여러 라인을 동원해 돈으로 흥정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것도 도덕적 비난을 받기에 충분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정운찬 총리가 용산에 왔었어요. 도의적으로 총리까지 다녀갔으니 된 것 아니냐는 태도예요. 유가족을 만나 위로했으니 이 정도면 사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거죠. 그러나 그건 사과가 아니죠. 정부가 1심 판결을 계기로 대충 장례를 치를 조건을 만들고 끝내겠다, 이러면 그것처럼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없는 거예요."

열하루째 단식을 이어가는 전 신부에게 '용산참사 문제의 올바른 해결을 위해서라도 건강을 먼저 챙겨야 하니 이제 그만 단식을 푸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었다. 그는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시작한 단식인데, 문제 해결을 위해 진전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러나 유족들은 울며불며 전 신부의 단식을 말렸다. 이제 중단하라는 당부가 쇄도했다. 문규현 신부가 병상에 누운 것도 모자라 전 신부마저 건강을 잃게 되면 그것을 다 어떻게 책임지겠느냐며 애닳아 했다.

이들은 전 신부가 단식을 중단하지 않는다면 차라리 유가족 전원이 단식을 결행하는 편이 낫겠다고 맞불을 놓고 있다.

용산참사는 이미 6명의 귀중한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다. 그 뒤로 피 터지는 생존 전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 가운데 성직자가 쓰러졌다. 다른 성직자는 그 성직자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다. 일반인들은 두 성직자의 안타까운 단식을 애닳아 하면서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문규현#전종훈#용산참사#수사기록 3000쪽#이명박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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