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기담 중에 '우부메'라는 것이 있다. 임신을 한 여인이 아이를 낳지 못하고 죽으면 그대로 들판에 내다 버린다. 태내의 아이가 죽지 않고 들판에서 태어나면, 어머니의 혼백이 형태를 이루어서 아이를 안고 기르며 들판을 돌아다닌다.
그 아이의 울음을 가리켜서 우부메가 운다고 한다. 아이를 임신하고 죽은 여인의 집념 또는 한이 이렇게 형상화되는 것이다. 그 모습은 허리 아래가 피로 물들어 있다고 한다. 혹시라도 들판에서 마주치지 않을까 두려울 만큼 기괴한 모습이다.
이 우부메는 주로 여름에 나타난다고 한다. 먼 옛날에는 출산도 목숨을 건 일이었을테고 핏줄에 대한 집착도 강했을테니 이런 기담이 생겨난 것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교고쿠 나쓰히코의 1998년 작품 <우부메의 여름>에 등장하는 한 여인도 이렇게 아이에게 집착한다. 작품의 배경은 2차대전이 끝나고 몇 년 후. 소설가이면서 생계를 위해 여러 잡지에 잡문을 쓰고 있는 주인공 세키구치는 어느날 이상한 이야기를 전해 듣는다.
임신 20개월의 여인, 사라진 남편오래된 명문 산부인과와 연관된 이야기다. 그 병원 원장의 딸이 임신을 했는데 20개월이 지나도록 아이를 낳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이상한 소문이 점점 퍼지는데 명문 산부인과이니 다른 병원으로 딸을 데려갈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상한 이야기는 또 있다. 임신 3개월이 되었을 때, 그 딸이 남편하고 크게 다투었는데 화가난 남편은 방으로 들어가서 안쪽에서 문을 걸어 잠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도 남편이 나오지 않기에 이상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가 보았더니 남편이 사라지고 없다고 한다. 그야말로 밀실에서 사람이 행방불명된 미스터리다.
세키구치는 이 이야기를 오랜 친구인 교고쿠도에게 들려준다. 교고쿠도는 일상생활과 관계없는 지식을 다방면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현재 고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교고쿠도는 불교, 기독교, 이슬람교, 유교, 도교에서부터 음양도와 같은 각국의 종교와 습속, 구비전승에 대해서 해박한 인물이다. 기이한 일이 생겼을때 의논하기 좋은 인물일지 모르지만, 이번 사건과 같은 경우에는 학자보다 경찰을 찾아가는 것이 우선일지 모른다.
교고쿠도는 이야기를 듣고도 크게 놀라지 않는다. 지나치게 긴 임신은 일본 역사에도 여러차례 등장했던 모양이다. 헤이안 중기의 한 무장은 어머니 뱃속에서 33개월간 있었다고 하고, 헤이안 말기의 한 승려는 무려 39개월째에 태어났다고 한다. 이들의 공통점은 악인이라는 것. 귀신이나 악인들은 '이상한 출산'이라는 태생을 갖지 않으면 설득력이 부족한 모양이다.
실종된 남편에 대해서도 그럴듯한 해석을 내린다. 그 딸이 다른 남자와 바람을 피웠고 그래서 그 남자가 남편을 죽이고 실종으로 위장했다. 그래서 한이 맺힌 남편의 원념이 출산을 늦추고 있을 거라고 한다. 호기심이 발동한 세키구치는 알고지내는 사립탐정과 함께 그 산부인과를 찾아가서 조사를 시작한다. 하지만 조사가 진행되면서 산부인과를 둘러싼 또다른 괴이한 소문과 마주하게 된다.
병원의 부부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교고쿠 나쓰히코의 작품세계는 독특하다. 그는 작품 속에서 일본의 전설이나 설화를 미스터리와 뒤섞고 있다. 괴기취향을 가졌던 미국 작가 존 딕슨 카아와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기이하고 무서운 전설은 그 자체가 호기심의 대상일테니, 미스터리 소설의 소재로도 적합할 것이다.
작품에 등장하는 교고쿠도는 실제로 여러가지 구비 전승에 정통한 작가 자신의 모습일 것이다. 작품 속에서 교고쿠도는 뇌와 신경, 일본의 각종 전설부터 시작해서 양자역학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교고쿠도의 일상을 보면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갖게 된 것도 이해가 된다. 아침에 일어나면 서점에 가서 책을 읽고, 서점을 닫고 나면 방에서 책을 읽는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침상에서 책을 읽는다.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부러워할 만한 하루하루다.
교고쿠도는 말한다. 이 세상에 이상한 일 따위는 없다고. 존재해야 할 것만 존재하고, 일어나야 할 일만 일어나는 것이라고. 그렇다면 작품 속의 사건들도 모두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20개월 임신한 여자와 밀실에서 사라져버린 남자 모두. 다만 어리석은 인간들이 진실을 가리기 위해서 서툰 위장을 할 뿐이다. 이 세상에 이상한 일이란 없다.
덧붙이는 글 | <우부메의 여름> 교고쿠 나쓰히코 지음 / 김소연 옮김. 손안의책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