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자 장독 간에 봉선화 반만 벌어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눈앞에 삼삼이는 고향 집을 그리시고손톱에 꽃몰 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햐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지금은 꿈 속에 보듯 힘줄만이 서노나 봉선화 - 김상옥 한국시조문학의 대가 초정 김상옥 선생은 1920년 통영 항남동에서 태어났다. '봉선화''사향''백자부' 등 교과서에 실린 작품을 비롯해 600여 편의 시조를 남겨 이름을 떨쳤지만 그는 시, 서, 화, 전각에 두루 통달했던 만능예술인이었다. 글과 그림을 사랑하며 살다간 삶, 예술만을 추구하며 자유롭게 살았던 삶…한평생 예술과 함께 했던 그의 삶을 되돌아본다.
독학으로 공부한 청소년기김상옥 선생의 부친인 김덕홍은 선비였으나 벼슬도 없고 땅도 없어 갓을 만들어 생계를 꾸려나갔다고 한다. 그러나 선생이 여덟살 되던 해 부친도 별세하고 선생은 매우 어려운 청소년기를 보낸 것으로 전해진다. 학문을 배운 경험이라고는 어린 시절 다닌 서당이 전부로 선생은 자라는 내내 사환, 견습공, 문선공, 인쇄공, 도장장이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독학으로 문학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어렸을 때부터 글과 그림에 소질을 보였던 선생은 문단에도 상당히 이른 나이에 입문했다. 18세가 되던 해인 1938년 시 동인지에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39년 시조 '봉선화'가 '문장'지에 추천받아 등단했다. 얼마 지나지 않은 1941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낙엽'이 당선했다.
일제시대 후반기에는 사상범으로 몰려 윤이상 등과 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세 차례나 투옥된 적이 있다. 작곡가 윤이상과는 이후에도 도피생활을 함께 하는 등 그 인연은 평생토록 이어졌다. 지난 1995년 윤이상 선생이 영면했을 때 고향 통영에서 열린 추도식의 추도위원장이 바로 선생이었다.
시조시인으로, 화가로, 서예가로광복 이후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추천강사의 형태로 교단에 섰다. 이 무렵 선생의 예술에 대한 창작열은 실로 뜨거웠다. 일제하에서 억압받던 열정이 한꺼번에 표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시로 시 낭송회를 열고 그림을 그려 전시했던 그 시절, 1947년에 펴낸 첫 시조집 '초적'을 시작으로 '고원의 곡''이단의 시''의상''목석의 노래''꽃 속에 묻힌 집' 등이 이때 출간됐다. 윤이상, 유치환, 김춘수, 전혁림 등과 함께 한 '통영문화협회'도 1956년 창립해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950년대를 자신만의 시조 기법으로 풍미한 김상옥 선생은 1960년대부터 고미술품점을 경영하며 전통시조에 대해 현대적인 실험을 시도하기 시작한다. 언어의 절제미를 살리면서도 자유로운 사설시조를 다수 발표해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예에 있어서도 자신만의 서체를 가진 뛰어난 서예가였으며, 쉬지 않고 그림을 그려 팔순이 넘은 나이에 개인서화전을 연 적도 있다.
그리고 2004년, 선생이 아내를 먼저 보내고 식음을 전폐하다 엿새 뒤 타계했다는 사부곡은 이미 유명한 이야기이다. 선생이 타계한 후 고향 통영에서는 생가 주변에 초정 김상옥 거리를 조성했고 시비도 건립했다. 선생의 기일이었던 지난달 31일에는 남망산 초정 시비 앞에서 5주기 추모제가 열려 많은 사람들이 시비를 찾아 고인을 추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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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정 김상옥 거리 선생의 생가가 있었던 통영 항남동 64번지 일대에 마련된 초정 김상옥 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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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 서리 눈보라에 절개 외려 푸르르고바람이 절로 이는 소나무 굽은 가지이제 막 백학(白鶴) 한 쌍이 앉아 깃을 접는다. 드높은 부연(附椽) 끝에 풍경(風磬)소리 들리던 날몹사리 기다리던 그린 임이 오셨을 제꽃 아래 빚은 그 술을 여기 담아 오도다. 갸우숙 바위틈에 불로초 돋아나고채운(彩雲) 비껴 날고 시냇물도 흐르는데아직도 사슴 한 마리 숲을 뛰어 드노다.불 속에 구워내도 얼음같이 하얀 살결티 하나 내려와도 그대로 흠이 지다.흙 속에 잃은 그 날은 이리 순박(淳朴)하도다. 백자부 - 김상옥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한려투데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