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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주의 물결과 외형적 가치에 휩쓸려 이런 문제들은 점차 망각되어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의미한 정보의 홍수에 함몰되어 생각 없는 로봇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정치·경제·문화는 교묘한 방식으로 더욱더 폭력화되고 있다. 어쩌면 축생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함석헌 저작집에서 의미있는 글들을 가려 뽑은 〈사랑에는 방법이 없습니다〉에 나오는 글귀다. 함석헌기념사업회 함석헌씨알사상연구원장이기도 한 김영호는 이 책을 엮으면서 왜 함석헌을 다시 읽어야 하는지 그렇게 첫 포문을 열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혼돈과 공허를 뚫고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 중심에 함석헌 선생이 있다는 뜻이다.

 

사실 나는 함석헌 선생의 시대를 산 사람이 아니다. 함석헌 선생이 민중과 함께 어떻게 역사의 중심에 활동했는지는 잘 모른다. 다만 27살 늦깎이 대학생활의 도서관 한쪽 모퉁이에서 여러 책들을 통해 그의 삶과 글을 접했을 뿐이었다.〈뜻으로 본 한국역사〉를 통해서 그의 역사관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성서적 입장에서 본 세계역사〉와 〈수평선 너머〉를 통해서는 그의 신앙관 접하게 됐다.

 

그는 조선과 그 이전의 한반도 역사가 굴욕과 좌절의 연속인 고난의 역사였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민족사의 고난이 결코 무용한 방황이 아니라 필요한 과정이었음을 토로했다. 이른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가나안 땅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정처럼 말이다. 그래서 제국주의의 악을 정화시킬 창조적 수고자들은 고통을 의연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도 주문했다.

 

물론 그것은 외세나 일제만을 칭한 게 아니었다. 그 뒤로 우리나라 내부의 모순과 불합리를 뚫고 나갈 창조적 기상도 마찬가지였다. 미군의 앞잡이 노릇을 하던 국가권력과 신군부의 무력통치를 꿰뚫고 나갈 힘은 오직 자기희생을 받아들이는 자만이 능히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중심에 의식 있는 민중이 서 있다는 뜻이다.

 

"이날까지 인간을 속여 온 큰 허깨비가 있다면, 그것은 정치가 역사를 만들거니 하는 생각입니다. 이것은 완전히 망상입니다. 정치가 역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역사가 정치를 낳습니다. 아직도 정치가는, 더구나 우리같이 남에게 한 걸음을 뒤진 나라의 정치가는, 그 허깨비에 잡혀 있습니다마는 세계의 씨알에게는 벌써 해가 올라와 그 허깨비들이 달아난 지 오랩니다."(38쪽, 〈서풍의 소리〉제 7권 〈하나님의 발길에 채여서〉)

 

"긍정은 보수요, 부정은 진보다. 하나는 안(安)한 것이요, 하나는 발(發)하는 것이다. 옷을 될수록 자주 갈아입는 것이 건강하듯이 보수·진보가 자주 교대해야만 사회는 건전히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아무래도 개체는 개체이기 때문에, 현실은 현실이기 때문에 어느 개인도 어느 사회도 대개 보수에 기울어지기 쉽다."(61쪽, 〈사상과 실천〉제 1권 〈들사람 얼〉)

 

그는 그처럼 우리 역사 속에서 식민지적 민족사관을 경계했다. 오히려 창조적인 섭리사관으로 새로운 틀을 짰다. 그 틀은 성경과 신앙의 세계관 속에서 배태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가 활약하던 시대의 기독교 역사를 '중류계급의 종교'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류에는 중류의식이 있다. 언젠지 모르게 현상유지를 원하는 기풍이 교회 안을 채워버렸고 그러니 가나안의 소망이 '안 나가'의 현상유지로 타락해버렸다. 이상하게도 '가나안'이 거꾸러지면 안 나가가 되지 않나?"(80쪽, 〈한국의 기독교는 무엇을 하려는가〉)

 

얼핏 보면 말장난 같지만 그 속에는 예리한 칼날이 들어 있다. 가톨릭 선교 2백년, 개신교 선교 백년의 역사를 자랑한 기독교가 외래에 의해 유입될 때만 해도 밑층 종교였지만 이제는 중류에 올라섰다는 평가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당대의 기독교가 국가의 질서와 제도와 권력에 야합한 까닭이라 한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기독교가 중류 이상의 상류에 속하지 아니할까? 아니 상류에서 내려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독교가 상류에서 '안 내려가'를 외치는 동안, 그의 지적대로 지극히 사교적(邪敎的)인 종교로 전락될 것이요, 언제나 지배 세력과 맞붙어 먹는 집권자들의 앞잡이 노릇을 할 게 뻔하다.

 

그와 같은 사상의 빈곤, 성찰의 빈곤을 맞이한 시대가 오늘이다. 생명은 자라야 하건만 자꾸 육체의 허영에 붙잡혀 참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시대다. 미래 역사인 아이들에게 꿈이 없다. 있다면 일등 혹은 일류일 뿐이다. 그러니 누가 아래 역사를 짊어지려 하겠는가? 기독교의 사랑도 섬김에서 나오는 바, 오직 윗가지가 되어 주름만 잡으려 하니 누가 밑가지가 되어 섬기려 하겠는가?

 

이러한 혼돈과 공허의 때에 역사를 새롭게 그려갈 수 있는 길을, 그의 삶 속에서 우러나온 말과 글에서 찾아보면 어떻까 싶다. 낡아빠진 제도를 고치기를 바라지만 언제나 스스로 혁신하는 사람은 드물기에, 그의 성찰을 통해 우리 모두가 함께 혁신을 꿈꾸어 보면 또 어떨까 싶다.

덧붙이는 글 | 기독정론 뉴스앤조이에도 송고했습니다.


사랑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 가려 뽑은 함석헌 선생님 말씀

함석헌 지음, 김영호 엮음, 한길사(2009)


#함석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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