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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ㄱ. 새로운 책 하나를 내놓은 느낌

 

 지난 11월 19일, 세상에 새로운 책 하나를 조용히 내놓았습니다. 새롭게 내놓는 책이 어느 만큼 사랑을 받거나 눈길을 모을 수 있는지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저, 이 책에 담은 이야기 가운데 한 줄이라도 제대로 읽히면서 제 이웃과 동무한테 '책으로 가는 길'은 수없이 많음을 들려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숱하게 많은 '책으로 가는 길'만큼 우리 '삶을 가꾸는 길' 또한 수없이 많고, 다 다른 사람들이 다 다르게 꾸리는 삶마디를 사이좋게 어깨동무하면서 나아간다면 우리 터전을 아름답게 일구는 길 또한 차근차근 찾을 수 있다고 느낍니다.

 

 깊어가는 밤에, 제 책 앞머리와 뒷머리에 적바림한 인사말을 하나하나 되읽어 봅니다. 출판사에서는 '책에 홀린 길'이라는 뜻에서 《책 홀림길에서》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는데, 언뜻 보기에 제 삶은 책에 홀린 길이라 할 터이나, 정작 제 삶은 그 어느 것에도 홀리지 않은 길입니다. 저로서는 책을 삶으로 받아들인 길이며, 책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길입니다. 흔해빠진 말마디라 할 텐데, 제 길은 '책사랑길'이요 '책삶길'입니다. 이리하여 제가 쓰는 글은 '책을 읽은 다음에 느낌을 담아내는' '책느낌글'이 하나 있고, '책이 있는 삶'을 톺아보는 글이 하나 있습니다.

 

 책이 있는 삶이란 무엇이고, 책이 없는 사람은 또 무엇인가를 헤아려 봅니다. 책이 있다고 더 아름다웁지 않으며, 책이 없다고 안 아름다웁지 않습니다. 그러나, 책이 있으면서 아름다운 새 길을 남달리 찾을 수 있고, 책이 없는 가운데 외로움과 고단함을 딛고 서며 아름다운 새 길을 꿋꿋하게 찾을 수 있습니다. 어느 길에 서든 우리가 찾기 나름이요 애쓰기 나름이며 사랑하기 나름이라고 느낍니다.

 

 그동안 제 손을 거친 <모든 책은 헌책이다> <헌책방에서 보낸 1년> <자전거와 함께 살기> <우리 말과 헌책방> <사진은 삶이다>에 이어 <책 홀림길에서>를 살살 어루만집니다. 몸바쳐 준 고마운 나무 숨결을 담은 책에 제 이름 석 자를 다시금 새겨 놓은 까닭에, 며칠 동안 밤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이 책이 대단하든 대단하지 않든, 이 책이 알차든 알차지 않든, 이 책을 좋게 여기든 안 좋게 여기든, 둘레에서 이 책을 하찮게 보든 대수롭게 보든, 제 넋과 얼을 고루 담은 책이기에 제 다섯손가락이 모두 아름답듯 이 책 또한 아름답다고 느낍니다.

 

 (새로운 책에 담은 제 생각을 보여드리고자, 책에 넣은 머리말과 꼬리말을 나란히 옮겨적어 봅니다. 이와 같은 이야기를 제 둘레 이웃과 동무하고 나누고 싶습니다.)

 

 

 ㄴ. 새로운 책은 : 두 다리와 자전거로 헌책방마실 즐기며 책으로 키운 삶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기란 만만하지 않습니다. 아이 치닥거리 하느라 힘겹고 고단하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밥 주고 옷 입히고 잠을 재우고 하는 데에 온 하루를 바치고 보면, '내가 이제까지 꾸려 온 삶은 어디로 갔지?' 하면서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아이를 먹이고 입히고 재우는 데에 들어가는 돈까지 벌자면 빠듯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겪어 보면 알고 치러 보면 안다고 하는데, 이 나라에서 아이를 키우며 문화예술이든 정치경제이든 교육복지이든 과학기술이든 하는 일을 해 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지 않느냐 생각합니다. 저는 글쓰고 사진찍고 도서관 꾸리고 자전거 타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집 안팎 살림을 도맡으며 하루 내내 아이하고 씨름을 하면서 글을 쓰건 사진을 찍건 도서관을 꾸리건 하는 이웃은 아직 못 보았습니다. 여자 가운데에는 드문드문 있으나 여자 가운데에서도 몹시 드물고, 남자 가운데에서는 나라밖에도 거의 없지 않은가 싶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글쟁이며 사진쟁이며 이분들 이름을 빈종이에 하나하나 적바림을 하다가 흠칫흠칫 놀랍니다. 왜냐하면 거의 모든 글쟁이와 사진쟁이가 '남자'이기 때문입니다. 혼인을 안 하거나 혼인을 했어도 아이를 안 낳으며 글쟁이나 사진쟁이로 살아가는 '여자'가 있고, 아이를 낳은 다음에 아이 돌보기는 누군가 다른 이가 맡아 주는 '남자와 여자'는 있으나, 스스로 아이를 낳고 돌보며 집 안팎 살림 도맡는 '남자이든 여자이든'은 다섯손가락으로 꼽기에도 힘듭니다.

 

 한국만화 《들꽃 이야기》와 《엄마의 밥상》은 그리 안 읽힌 작품이고 썩 안 알려진 작품입니다. 일본만화 《리틀 포레스트》는 그럭저럭 읽히고 어느 만큼 알려지기도 한 작품입니다. 《들꽃 이야기》와 《엄마의 밥상》을 그린 박연 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아이를 돌보고 키우며 만화를 그리는 아줌마입니다. 《리틀 포레스트》를 그린 이가라시 다이스케 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지만 혼자 살며 만화를 그리는 아가씨입니다. 두 분 작품은 한결같이 훌륭하다고 느끼며, 더없이 살갑다고 느낍니다. 짙은 땀내음과 흙내음에다가 손품과 다리품과 몸품을 느낍니다. 몸과 마음이 많이 다쳐서 고달파하는 옆지기와 함께 살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바쁜 틈바구니를 가까스로 아주 조금씩 내어 이 책 저 책 뒤적이면서 '내가 가슴 짠하게 받아들이는 이 책들처럼, 나 스스로 내 이웃한테 내 삶 이야기를 가슴 짠하게 나눌 수 있을까?' 하고 헤아려 보곤 합니다. 아직 나라안에는, 또 나라밖까지도, '살림하고 애 키우고 글과 사진 하면서 사는 남자'는 하나도 없다 할 만하기에, 이런 내 삶을 다소곳한 매무새로 엮어낼 수 있으면, 저로서도 제 발자취를 살짝 남기고, 우리 아이한테도 제 아빠가 어떻게 살았는가를 들려줄 수 있으며, 새롭게 젊음을 뽐내며 우리 삶터를 일굴 푸른 벗님한테도 도움이 될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몸앓이와 마음앓이로 날마다 괴로운 사람을 옆지기로 두고, 홀로 집 안팎 살림을 도맡으며 아이를 돌보는 나날은, 눈물바람으로 지새우는 나날이면서 웃음바람으로 씻어내는 괴로움이자 고마움이 아니겠느고 느낍니다. 글쓰고 사진찍고 도서관 꾸리는 제 살림은 한국땅에서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극빈층 밥벌이'에서 헤어나지 못하지만, 우리 아버지가 '교장으로 정년퇴직하며 연금 많이 받는 사람'이기에 '사회보장' 손길을 받을 수 없는데, 가만히 생각하면 이렇게 세 식구가 밑바닥 가난한 자리에서 바둥거리는 동안 새롭게 보고 새삼스레 깨닫는 이야기가 가득합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고달프고, 뼈빠지게 가난하기 때문에 눈물나며, 죽겠다 싶도록 가난하기 때문에 쉬 짜증을 부리기도 합니다. 그런데, 고달프기 때문에 쉬는 맛을 배우고, 눈물나기 때문에 웃음에 담는 사랑을 익히며, 짜증을 부리는 가운데 넉넉하게 나누는 손길이 무엇인가를 깨닫습니다.

 

 1975년부터 2009년까지 두 다리와 자전거로 헌책방마실을 즐기며 책으로 키운 어줍잖은 삶자락을 한 올 두 올 풀어내 보려고 합니다. 귀엽게 봐주시면 그지없이 반갑겠고, 너그러이 굽어살피시면 참으로 고맙겠습니다.

 

 

 ㄷ. 새로운 책 하나를 사랑하는 마음 : 책은 종이 안팎에 두루 있다

 

 엊저녁, 박희정 님 만화 《만화가네 강아지》(서울문화사,1996)를 보면서 일산에서 인천으로 왔습니다. 한가위를 맞이해서 옆지기 부모님 사는 집에 다녀왔습니다. 저는 할일이 많아 먼저 혼자 오고, 옆지기는 하루 더 묵은 뒤 오늘 돌아오기로 했습니다. 일산으로 가는 길에 책을 두 권만 들고 갔는데, 두 권은 가는 길에 다 읽고 말아 오는 길에 읽을 책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할까 하다가, 옆지기 부모님 집에 아직 남아 있는 옆지기 책 가운데 하나를 골라서 읽기로 했고, 마침 박희정 님 만화가 눈에 뜨였습니다. 1970년에 태어나고 1993년부터 프로 만화쟁이로 일했다는 박희정 님 짧은만화를 모아 1996년에 낱권책으로 나왔으니, '고작 스물일곱' 나이에 내놓은 만화책입니다. 만화쟁이 박희정 님은 어느덧 마흔 줄을 넘었고, 저 또한 서른다섯 나이입니다. 2009년에 박희정 님이 그리는 만화는 1996년에 낱권책으로 나온 만화하고 얼마나 달라졌고, 앞으로 2019년에도 만화를 꾸준히 그린다면 이 만화를 어떻게 돌아보실는지 궁금합니다.

 

 지난 9월 26∼29일에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을 돌아다녔습니다. 해마다 9월 마지막주가 되면 부산 보수동에서는 '헌책방 일꾼 스스로 벌이는 책잔치'가 열립니다. 헌책방 수십 군데가 모여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책잔치인데, 출판협회나 출판사가 적잖이 큰돈을 들이고 새책을 에누리해서 파는 책잔치하고 사뭇 다릅니다. 아니, 둘은 서로 견줄 수 없습니다. 책잔치를 하며 책값을 조금 눅게 하며 사람을 끌 수 있겠습니다만, 출판협회와 출판사 스스로 '새책 값을 에누리해서 팔'면 우리네 책마을은 흔들립니다. 동네새책방이 설 자리가 없어지니까요. 출판사도 돈을 벌어 새로운 책을 내야 한다지만, 책잔치 며칠을 뺀 한 해 내내 '동네새책방이 동네책손'을 맞이하며 책삶과 책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끔 이끄는 자리에서 동떨어져 버리면 어떡하지요? 책은 책대로 제값을 받도록 하면서 '책을 사랑하도록 이끄는 다른 길'을 보여주어야 옳다고 느낍니다. 그러면서 '이름도 힘도 작고 돈도 적은' 출판사들이 두루 책잔치 마당에서 어우러질 수 있는 틀을 마련해야 알맞다고 느낍니다. 이렇게 나아가지 못하는 책잔치라면 '있는 놈들 돈잔치'에 지나지 않는 겉치레에 머물고 맙니다.

 

 부산 보수동 헌책방골목에서 책을 살 때에도 헌책방 일꾼들이 몇 마디 안부인사와 함께 "최종규 씨는 따로 직장이 마땅히 있지도 않은데 책을 사는 모습이 참 용해요." 하는 말씀을 건넵니다. 지난 8월부터 올 12월까지는 한글학회에 나와 일을 하기 때문에 이즈음은 '마땅한 일터'가 있는 셈인데, 이런 일터가 있든 없든 저는 '마땅히 장만해서 갖출 책'은 '있는 돈 없는 돈'을 들여서 장만하곤 합니다. 이렇게 있는 돈 없는 돈 긁어서 책을 사면 여러 날뿐 아니라 한두 달 주머니가 헐거워지는 통에 먹고살기 빠듯하곤 한데, 먹고살기 빠듯할 때에도 이러한 빠듯함이 즐겁다고 느끼면서 책을 붙잡습니다. 밥그릇이야 어떻게든 나눌 수 있으나, 좋은 책 하나는 헌책방을 거쳐 제 임자를 만나지 못하면 두 번 다시 만날 길이 없기에, 책값에 들어가는 돈이 아깝다고 느낀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고야쓰 미치코라는 일본사람이 쓴 《독일의 국민학교》(범조사,1984)라는 책을 읽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알아보니 1996년과 2005년에 '밝은누리'라는 출판사에서 다시 나왔습니다. 이만한 책은 틀림없이 누군가 다시 펴냈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마침 제대로 알아보는 눈길이 있었습니다. 다만, 다시 나오기는 해도 널리 읽히지는 못하는구나 싶습니다. 아무래도 '교과서가 읽히는 만큼' 이 책이 읽히기를 바라기는 힘들 테지만, 교사로 일하거나 우리 삶터에 눈길을 두는 분들이라면 《독일의 국민학교》까지 읽지는 못해도 슈타이너나 발도로프 교육이 무엇인지는 살포시 건드리거나 헤아릴 수 있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한테 더 많은 돈이 있지 않아도 되는 줄을 아는 분이 많지만, 정작 이렇게 아는 대로 살아가는 분은 퍽 드뭅니다. 텔레비전 연속극에서조차 더 많은 돈보다 더 너르고 따뜻한 사랑이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는 힘임을 밝히고 있는데, 이런 연속극을 보면서도 우리는 우리를 살리고 살찌우는 길로는 좀처럼 접어들지 않습니다. 출퇴근길에 서울로 들어서는 전철을 타 본 분은 누구나 깨달으시겠지만, 우리가 이처럼 악다구니가 되어 서로를 밟고 밀고 까고 차고 하면서 살아야 할 까닭이 없습니다. 교통방송이란 말이 교통방송이지 속내를 살피면 '서울교통 방송'입니다. 신문이나 방송 이야기도 언제나 '서울 신문'이요 '서울 방송'입니다. 숱하게 쏟아지는 책 또한 '서울 책'일 뿐, '우리 책'이지 않습니다.

 

 한가위를 맞이해 중국에서 '전국노래자랑'이 열렸고, 이 자리에는 노래를 무척 잘 부르는 조선족과 한족이 저마다 솜씨를 뽐냈습니다. 우리 집에는 텔레비전이 없으나 옆지기 부모님 댁에는 텔레비전이 있기에 식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구경했습니다. 노래자랑이 모두 끝난 다음 옆지기가 한 마디 했습니다. "저기 나오는 사람들은 중국에서도 웬만큼 잘사는 사람들이겠지요."

 

 동인천역에서 시청역까지 전철을 타고 오는 아침길, 드디어 땅밑에서 땅밖으로 나와서 걷는데, 양복쟁이들이 하나둘 담배 한 개비 꺼내어 꼬나뭅니다. 전철에서 참았(?)으니 비로소 담배를 태우는구나 싶습니다. 그런데 아침길이나 저녁길에는 꽤나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데, 이 사람들 가운데에는 담배를 안 태우는 사람이 많습니다. 담배를 태우는 사람한테 담배 태우는 권리만큼, 담배를 안 태우는 사람한테 담배 내음 안 맡을 권리는 어느 만큼 지켜질 수 있을까요. 그러니까, 이런 권리만큼 '낮은 자리 가난하고 수수한 사람들 집터'가 재개발에 묶이지 않고 언제까지나 '적은 살림으로도 이웃하고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는 터전'을 누릴 권리는 어느 만큼 지켜질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저는 책에서 길을 찾고 책으로 길을 여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제 삶이 책에서 길을 찾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늘 걷는 제 길이 책으로 여는 삶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책을 읽고 책을 붙잡아도 책을 다루고 만지는 사람들을 생각할 뿐입니다. 책에 담은 사람들 땀방울과 눈물방울을 돌아볼 뿐입니다. 언제나 사람들한테 둘러싸여 있고, 어느 곳에서나 사람들과 함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사람한테서 길을 찾고, 사람과 함께 길을 여는 삶입니다. 그리고, 이 '사람들'이란 시멘트땅에서 이웃과 동무를 밟고 올라서는 사람이 아니라 푸나무 기운을 듬뿍 받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덧붙여, 시멘트땅에서 살아가더라도 푸나무 기운을 잊지 않거나 잃지 않으려고 힘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제가 타는 자전거가 아스팔트를 달린다고 할 때에도 아스팔트길이 아닌 '아스팔트한테 눌린 흙길'을 느끼며 달리는 길이었습니다.

 

 제가 살아오며 만나고 부대낀 사람들 이야기를 책 아흔한 권을 읽으며 받은 느낌으로 녹아들이도록 적바림해 보았습니다. 제가 읽은 책은 아흔한 권이 아니라 구만천 권이라 할 수 있지만, 구만천 권이거나 아흔한 권이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고 느낍니다. 종이장에 스며든 책이 있는 가운데 종이장 바깥에서 살아숨쉬는 책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저는 종이장에 스며든 책을 다른 이보다 조금 더 들춰보았을 뿐이고, 다른 이들은 굳이 종이장에 스며든 책까지 집어들지 않으며 우리 둘레 사람들과 몸으로 어우러지면서 사람 삶을 받아들이거나 들여다본다고 느끼기 때문이고요.

 

 앞으로도 책읽기는 이어갈 생각입니다. 책읽기와 함께 사람읽기를 이어가고, 이와 맞물려 사진읽기를 이어갑니다. 이러는 동안 저절로 삶읽기를 할 테고, 말읽기와 생각읽기를 함께 할 테지요. 제가 사랑하는 만큼 읽기를 할 테고, 제가 믿는 만큼 쓰기를 합니다. 제가 좋아하는 대로 읽기를 하면서, 제가 아끼는 대로 쓰기를 이어갑니다. 글쓰기로 제 서른다섯 해 삶을 적바림하는 이야기는 여기에서 마무리짓습니다.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 이 책은 우리를 아주 특별한 골목길로 인도한다. 지금까지 읽은 아흔한 권의 책으로 하나의 동네를 만들어 놓고, 그 한 권, 한 권의 이야기로 아래 골목 위 골목을 오밀조밀 꾸몄다.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풀어 가는 솜씨가 매우 새롭다. 그는 말한다, 책읽기는 곧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그가 소개하는 책들을 통해 그동안 잃어버렸던 마을의 이웃사촌들을 만나게 되는 셈이다. 우리는 그의 독서량에 놀라고, 작은 것에 쏟아붓는 애정에 놀란다. 잃어버린 것을 복원해 내는 끈기에도 놀란다. 아스팔트길을 달리면서도 그 아래에 있는 흙을 생각한다는 그는 '지독한' 사람이다. 너무 지독해서 너무 멋진 사람, 그가 쓴 책이니 어찌 특별한 향기가 나지 않을 수 있으리오 .. (추천글 : 오연호 님)

덧붙이는 글 |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태그:#책읽기, #책이야기, #책삶, #책, #최종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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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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