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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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한나라당이 '국회선진화' 법안이라며 국회에 제출한 2개의 제정법안과 6개의 개정법안의 주요 내용을 한마디로 종합하면, 소수당이 어떤 형태로든지 법안을 저지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다수당의 의지대로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국회선진화특별위원회(위원장 주성영)가 논의해 국회에 제출한 법안은 '국회의 질서유지 등에 관한 법률'과 '국회 회의 방해 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대한 제정안과 국회법, 정당법,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안' '국정감사 및 조사에 관한 법률'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등 5개 법률에 대한 일부 개정안이다.
국회 내 폭력은 형법보다 가중처벌, 망치 들면 형량 1/2 가중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새로 제정하겠다고 나선 '국회 회의 방해 범죄의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이다. 내용은 국회내 각종 폭력 행위를 형법보다 훨씬 더 가중해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처벌 대상으로 삼고 있는 행위는 '국회에서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한 폭행, 공무집행 방해, 공용물 파괴, 체포·감금, 협박, 주거침입 및 퇴거불응, 재물 손괴 등이다.
특히 형법상 폭행으로 중상해(생명에 대한 위험)를 입힌 경우는 벌금형 없이 2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을 못박았다.
폭행, 공무집행방해, 공용물 파괴, 체포·감금, 중체포·감금(가혹행위 동반)에 행위는 1년 이상 7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7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이런 행위들로 인해 상해를 입힌 경우는 2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상해가 발생하지 않은 폭행, 협박, 주거침입, 퇴거불응, 재물손괴 행위에 대해서는 1년 이상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상 5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내리도록 했다.
또 형법상 폭행 및 특수폭행, 협박에 대해 적용되는 반의사불벌 조항의 적용을 받지 않도록 해,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없이도 기소가 가능하도록 했다.
집단폭행이나 망치 등의 물건이 동원되는 경우는 가중처벌토록 했다. 위에서 언급한 폭력행위에 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이 동원되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는 각 행위에 대한 형량의 1/2이 가중되도록 했고 상습범도 같은 방식으로 가중 처벌토록 했다.
1년 3개월 내 최종심 선고, 유죄 받으면 사실상 정계은퇴
이 법안은 국회폭력에 관여한 사람은 다시는 정계에 진출할 수 없도록 하겠다는 의지도 보여주고 있다. 수사 및 재판의 기한을 법안에 명시해 적어도 폭력 행위 발생 1년 3개월 내에는 최종심 결과가 나오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됐다.
이 법은 고소 또는 고발이 있은 날로부터 3개월 이내에 기소여부를 결정해야하고, 공소가 제기되면 6개월 이내에 1심 선고, 2심과 3심은 전심의 선고가 있은 날로부터 각각 3개월 이내에 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기소 3개월-1심 6개월-2심 3개월 -최종심 3개월'이라는 기한을 못박은 것.
형량도 높지만, 처벌을 받은 뒤에도 정계에 복귀할 수 없도록 막아놓은 조항도 있다. 이 법에 의해 실형을 받은 사람은 복역이 끝난 날로부터 10년간, 집행유예를 받은 이는 형이 확정된 날로부터 10년 이내에는 공직선거에 나설 수 없다.
국회의장 권한 강화, 여야 합의 생략, 법사위 무력화
나머지 법안들의 내용을 종합하면 국회의장의 권한이 대폭 강화됐다. 현재 2년인 의장의 임기가 4년으로 늘어나고, 의장은 국회 청사 내에 경찰을 투입할 수도 있게 했다. 표결이 종료될 때까지 의원들이 자리를 이동할 수 없게 해놔, 국회의장석 점거는 꿈도 못 꾸게 됐다.
현재 여야 교섭단체 대표가 협의를 거쳐 결정하도록 돼 있는 의사일정은 의장이 국회운영위원회와 협의하도록 했다. 의장은 협의기한을 정하고, 기한 내 합의되지 않으면 의장이 그 내용을 결정할 수 있도록 했다. 즉, 국회운영위원회 내에서 여야 원내대표간 협의가 원활하지 않으면 의장이 의사일정을 결정하도록 한 것이다.
개원 뒤 여야 합의를 통한 원 구성이 지연되면, 의장이 의원들에 대한 세비지급을 중단시키고 각 상임위 위원들을 선임할 수도 있게 했다.
다만, 다수당 '전가의 보도'로 통하는 국회의장의 법안 직권상정 권한은 예산안에 한정했다. 그런데 국회의장의 직권상정 권한은 축소된 것이 아니라 그 필요성이 없어졌다고 해야 정확할 듯하다. '자동상정'이란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법안을 발의하면, 일부개정 법률안은 15일, 제정 법률안은 20일 뒤에 상임위에 자동으로 상정하게 했다. 상정되면 240일 이내에 상임위에서 표결에 부쳐야 한다.
법제사법위원회는 이름을 사법위원회로 바꿔 법률안 체계·자구심사 기능을 폐지했다. 소수당의 법안통과 저지선으로 활용돼 온 절차를 아예 없애버린 것.
이외에도 짝수 월에 열도록 돼 있는 임시회를 2~7월 연속해서 열도록했고, 9월 10일부터 20일간 열리도록 돼 있는 국정감사는 임시회 기간 중 연간 25일 범위 내에서 횟수에 제한 없이 감사를 열도록 했다.
종합하면, 국회의장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 여야 협의가 여의치 않은 부분은 의장이 결정하도록 하고, 법안 처리에 필요한 절차는 대폭 간소화했다.
한나라당 "연내 처리' - 민주당 "2월 논의"
한나라당은 되도록 빨리 이 법안들을 처리하자는 입장이다.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서 안상수 원내대표는 "반드시 야당과 합의해 처리하겠다"면서도 "연말 처리 목표로 지금 논의에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반해 이강래 민주당 원내대표는 일단 2월로 넘겨 논의하자는 이견을 보였다.
다수당이 국회를 일사천리로 운영할 수 있게 만드는 이 법안들을 통과시키면 당장 과반 의석을 점하고 있는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런데 18대 국회 뒤에도 한나라당에 유리하게 작용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총선에서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을 소수당으로 전락시키면, 지난 17대 국회에서 벌어졌던 '4대 개혁법안' 저지 투쟁과 같은 일을 다시는 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총선에서 패배하는 순간부터 이 법은 가장 강력한 부메랑이 돼 한나라당을 무력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가능한 것이다.
이 법이 여야에 유리할 것이냐 불리할 것이냐를 떠나 이 법이 안고 있는 맹점은 확연하다. 바로 '다수당의 날치기'에 대해서는 아무런 방지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 한·미FTA 비준동의안의 외통위 상정과정에서 문학진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노당 의원이 기물파손 행위를 하게 만들었던 원인을 제공한 것은 한나라당의 일방적인 단독회의였다.지난 달 23일 법원도 이 사안에 대해 박진 위원장의 질서유지권 발동에 대해 적법성을 결여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국회 폭력을 엄하게 처벌한다면, 회의를 단독 소집해 회의장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는 행위 같은 날치기 행위는 더욱 엄하게 처벌하도록 하는 조항이 포함돼야 한다.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최근 한나라당 내 몇몇 친이계 의원들에 대한 골프장 허가 대가로 금품을 받은 의혹이 불거져 검찰이 소환을 할 것이라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진정 한나라당이 국회선진화를 원한다면 '폭력 추방' 운운하기 이전에 국회의원의 부패와 비리에 대한 수사가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을 보장하고, 밝혀진 혐의에 대해선 가중 처벌하고 사실상 정계은퇴를 시킬 수 있는 법안을 내놓아야 그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을 것이다. 그게 국민들이 원하는 '국회 선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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