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MB맨' 정두언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전환을 제기하고 나섰습니다. 사교육비 절감 차원이라지만, 많은 사람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습니다. 진보진영이 아닌 여권 실세가 들고 나온 카드이기 때문입니다. 정두언과 전교조가 같은 주장을 하고 있는 풍경도 재밌습니다. 한 달 넘게 외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오는 10일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이 나올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외고·일반계 학생·학부모는 물론 교육전문가, 학원 강사까지 다양한 이해 집단을 아우르는 취재를 통해 '외고 논쟁'의 본질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자료사진
 자료사진
ⓒ 전교조

관련사진보기


"엄마, 선생님께서 ○○고(자사고)에 시험 보래요."

지난 10월 정미라(45·도봉구 쌍문동)씨는 중학교 3학년생인 작은 아들 용훈(16)이의 말에 깜짝 놀랐다. 평소 외고를 비롯한 특목고, 자사고 등에 대해 비판적인 생각을 해왔던 엄마를 잘 알기에 용훈이도 나름 조심스럽게 얘기한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정씨는 더 고민이 됐다.

'아이는 원하고, 나는 뭐가 문제인지 알고, 그럼, 아이를 어떻게 설득해야 하나?' 결국 정씨는 "안 돼, 엄마를 뭐로 보는 거야"라며 화를 내고 말았다. 기대가 컸던 용훈이도 "엄마 같은 사람하고는 말 안 해"라며 자기 방으로 들어가더니 문을 '쾅' 닫아 버렸다. 이후 집안 분위기는 험악해졌다.

"아이도 희생당하고, 부모도 희생당하고..."

그 다음으로 부딪힌 벽이 남편이었다. "학교 선생님이 된다는데 왜 반대를 하느냐"며 용훈이 편을 든 것. 용훈이가 말을 꺼낸 건 원서 접수 마감 3일을 남겨두고서였다. 정씨는 다시 이틀을 고민에 빠졌다. 인터넷으로 용훈이가 말한 학교의 입학 전형도 살펴봤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그동안 특목고 등을 준비한 적이 없는 용훈이로서는 합격이 힘들 것 같았다. '그래, 경험 삼아 시험을 보게 하자.' 정씨는 아이에게 원서를 넣도록 했다. 정씨의 예상대로 아이는 그 학교에 합격하지 못했다.

정씨는 "그 일 때문에 작은 아이와 외고 등 특목고나 자사고에 대한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다"며 "만약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아이와 그런 얘기를 한다고 해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용훈이도 입학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다른 아이들이 그동안 얼마나 많은 준비를 해왔는지 알게 됐다. 정씨의 말이다.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준비를 많이 한 아이가 떨어졌을 때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 부모들은 제도 안에서 어떻게든 아이를 공부 잘 시켜서 대학 보내고 싶은 마음에 외고나 자사고를 보내려고 노력을 한다. 그러나 사실 제도 안에서 놀아나는 것 아닌가. 아이도 희생당하고 부모도 희생당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

물론 용훈이는 아직도 엄마를 원망한다. 큰 기대를 했던 만큼 실망감도 컸기 때문이다. 엄마가 다른 아이들처럼 자기도 '몰입교육'을 시켜주지 않아서 떨어졌다고 생각한다. 정씨는 "다른 엄마들은 빚내서 해주는데, 우리 엄마는 왜 그러느냐"는 아이의 말에 상처도 받고, 고민도 더 깊어졌다. 그렇다고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돈도 없었지만, 아이가 고민 없이 외고 등을 가서, 성적으로 평가받고, 끊임없이 비교당하면 인생의 황금기에서 청춘이라는 것을 누려볼 수 있을까? 제가 학교 다닐 때와 상황이 하나도 안 바뀌고 더 악화되고 있다. 중요한 시기인데, 잃어버린 시간을 보내는 게 정말 안타깝더라. 돈 많은 부모들도 그런 것을 고민해야 하지 않겠나. 아이의 인생을 길게 봐야 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올인해서 청춘을 소비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아이가 즐겁게 그 시기를 잘 보내길 바란다. 저도 속으로는 아이가 공부 잘하길 바라고, 좀 두드러지길 바라기는 하지만, 아이가 인생을 즐기고 좀 편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즐겁게 공부해서 성과가 나오면 훨씬 더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다. 제 부모들은 저에게 책을 많이 보여주거나 하지 않았지만, 저는 아이에게 그런 조건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다. 아이가 정상적으로 공부하면서 친구와 교류하고 산다면 훨씬 더 양질의 삶을 살지 않겠나."

돈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엄마 마음도 아프고

사실 정씨는 이미 한 차례 아이의 고교 입시 문제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큰 아이인 용제(17)는 과학고를 가고 싶어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과학고로 진로를 잡았고, 그래서 영재교육원도 다녔다. 부모의 압박이 아니라, 본인이 스스로 흥미를 갖고 열심히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아이가 변해 있었다.

"세상에서 자기가 최고인 줄 알고, 기고만장, 안하무인이 돼 가더라. 인간성이 황폐해진 것이다. 게다가 학원 끝나면 밤 11시가 기본이고, 과제 수행을 못하면 새벽 1시에도 끝난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저렇게 살아서 저 아이가 과연 행복할 수 있을까'라는 고민이 생겼다. '눈에 뭐가 쓰이지 않은 이상 못할 일이구나' 생각했다. 돈도 버리고, 아이도 버리고, 엄마 마음도 아프고, 또 그렇게 준비했는데 떨어지면 그 아이나 부모 심정은 어떨까? 이건 정말 미친 교육이다.

그래서 영재원을 그만 두게 했다. 과학고 시험 볼 때도 아예 준비를 안 시켜서 떨어뜨렸다. 그 뒤에 큰 아이의 성적이 곤두박질 쳤다. 지금은 바닥에서 다시 올라가는 중이다. 용제도 과학고를 떨어진 뒤, 처음에는 나를 원망했다. 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생각해도 그건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용제의 성품이 바뀐 것도 문제지만, 경제적인 문제도 정씨에게는 적지 않은 부담이었다. 정씨에 따르면, 용제의 경우 영어회화 학원비만 월 40~50만원이었다. 문법학원까지 추가하면 30만원이 더 든다. 거기에 과학 학원은 따로 다녀야 하는데, 보통 100만원 정도다. 과학고를 가려고 준비하는 아이들은 매달 180만~200만원 정도의 사교육비가 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교재비나 아이 간식비, 보약비 등을 제외한 금액이다. 한 마디로 "돈 없으면 공부를 시킬 수 없는" 셈이다.

돈 있어도 대한민국서 '미친 교육'은 안 시킨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정미라(45)씨는 "제도 안에서 아이도 희생당하고 부모도 희생당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외고 폐지를 주장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정미라(45)씨는 "제도 안에서 아이도 희생당하고 부모도 희생당하는 것이 가슴 아프다"며 외고 폐지를 주장했다.
ⓒ 최경준

관련사진보기

만약 정씨가 경제력이 뒷받침 됐다면 아이들을 외고 등 특목고나 자사고에 보냈을까?
"예전에 학부모들끼리 그런 질문을 던져봤다. 우리가 돈이 있다면 과연 보낼 수 있었을까? 근데 돈이 있었으면 나는 우리나라에서 교육 안 시켰다. 그 돈 주고 왜 이런 미친 교육을 시키겠나. 외국에서 자유롭게 서양 문물 보면서 공부 시키지. 그런 심정이다."

정씨에게는 한 가지 바람이 있다.

"우리 아이들처럼 어려서부터 고액 사교육을 받지는 않았지만, 정말 소질이나 관심이 있는 아이들이 특목고에 합격해서 좋은 본보기가 됐으면 좋겠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아주 어렸을 때부터 미리 준비하고, 특목고를 위한 공부에 올인하는 아이들만 갈 수 있다. 공부를 재미있게 하고, 재능이 있는 아이가 분명히 존재하는데, 외고나 과학고가 목적이 바뀌어서 대학을 가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 실제 그런 아이들은 못가는 것이다."

정씨는 "외고나 과고가 원래 목적대로 교육을 한다면 있어야 하겠지만, 현재 상황이 바뀌지 않는다면 차라리 없어져야 한다"며 "그것 때문에 학원비가 더 올라가고, 위기의식이 더 높아진다면 폐지하는 게 맞다"고 거듭 강조했다.

정미라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5일 대학로 흥사단에서 열린 '교육희망네트워크' 출범식장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외고 폐지 논란에 대한 정씨와의 일문일답 요지이다.

"이젠 돈 없으면 교육 못 시켜... 패배감에 싸여 있다"

- 외고 폐지 전망에 대한 생각은?
"처음 한나라당 의원이 외고 폐지에 찬성한다고 했을 때, '쟤들이 왜 저러지'하며 반가웠다가, 갑자기 '어, 이건 아닌데'하면서 뭔가 방향을 잘못 가져갈까봐 걱정이 되더라. 그 뒤에 자사고 얘기 나오면서, '아, 이런 식으로 또 국민을 우롱하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외고가 없어지는 대신 자사고로 가는 것은 더 반대다. 마치 선처하듯이, 좋은 방향으로 선회하듯이 하면서 다시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 여전히 비용이 많이 드는 교육이 자꾸 만들어지는 것은 잘못됐다. 결국 외고 등이 자사고로 전부 바뀔 것이라고 전망하는 학부모들은 패배감에 싸여있다. '이젠 돈 없으면 교육 못 시켜', '돈 없는 부모는 부모도 아니냐'. 그게 주변 엄마들이 하는 말이다."

- 외고 폐지를 반대하는 학부모들은 '잘하는 아이들끼리 모아서 공부하면 좋은 것 아니냐'고 주장한다.
"이기적인 아이들만 모아놓고 이기적으로 교육시키면 그 아이들이 장차 커서 뭘 하겠나. 판·검사 등을 한다고 해도 다시 사회를 악순환 시키는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하지만 나머지 아이들, 행복하게 자란 아이들이 과연 그 아이들과 경쟁해서 뒤처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 외고 폐지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왜 똑같은 수준으로 공부시키려고 하느냐. 결국 하향평준화가 되는 것 아니냐'는 입장인데.
"평준화에 대한 개념이 잘못 박혀서 그런 것이다. 잘하는 놈, 못하는 놈, 같이 섞여있어야 사람을 알고, 그 아이들 간에 감정 교류가 생겨서 진정한 리더가 되지 않겠나. 어려운 사람 하나 모르는데 어떻게 리더가 되겠나.

국민들은 평준화가 마치 성적을 똑같이 밑으로 끌어내리는 것으로 오해하는 것 같다. 그런 느낌을 주지 않는 단어로 바꾸면 좋을 것 같다. 평준화의 진정한 의미는 '평등하게 교육받기', '전국 동일한 교육환경에서 교육받기'라고 할 수 있다." 

- '외고만큼 열심히 공부시키는 학교도 없다'는 말도 있다. 
"외고 다니는 엄마들도 아는데, 그 아이들은 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시키는 게 아니라, 전부 사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다."

- 솔직히 자신의 아이가 외고 갈 능력(성적)이 안 되니까, 외고 폐지를 찬성하는 것 아닌가.
"아이들의 인생을 봐야 한다. 부모들이 잊지 말아야 한다, 자기가 뭘 위해서 그렇게 아이를 공부시키는지. 결국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 그러는 것 아닌가. 눈앞에 보이는 성과가 과연 아이들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부모들도 지켜보면서 힘들어 한다. 공부 잘하는 아이 하나가 집에 있으면 그 아이 때문에 집안에서는 아무도 말을 못한다."

- 외고는 자식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능력(경제력)이라는 말인가?
"그렇다. 그리고 지역별 할당제, 또는 저소득층 아이들을 뽑는다고 하는데, 그 애들이 그 안에 들어가서 얼마나 힘들까. 잔인한 일이다. 지원 미달 사태가 나오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그 아이들이 거기를 왜 가겠나, 미치지 않고서야. 너무나 안일한 탁상행정이다."

- 외고 폐지 반대 집회에 나서려고 했던 학부모들을 보는 심정은?
"이해한다. 좋은 대학 보내고 싶을 테니……. 사실 외고 엄마들은 '아이들이 정말 노력해서 좋은 결과를 봤는데, 왜 제도 때문에 희생당해야 하느냐'며 너무나 억울할 것 같다. 제가 그 학부모라면 교과부 장관을 고소할 것 같다. 그런 일을 벌인 사람들을 고소·고발을 해야지, 왜 학부모끼리 싸우게 하는가."


#외고 폐지#특목고#자사고#평준화#학부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실 너머의 진실을 보겠습니다. <오마이뉴스> 선임기자(지방자치팀)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