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이팬에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더니 불이 안 온다. 네가 한 번 봐라."
우리 집에 특별 메뉴인 옥수수전을 부치던 어머니가 하시는 말이다. 정확한 제품명은 '전기 바베큐더블팬'이다. 9년 전에 아내가 샀다. 제품 수명이 다 되어 고장 날 때도 되었지만 그냥 버릴 수 없는 팬이다.
제품 뒤쪽을 보니 서비스센터 전화번호가 있었다. 그런데 그 번호로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인터넷에서 회사 이름을 검색해도 없다. 제품명으로 쇼핑몰에서 검색을 해봤다. 다행히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있었다. 그 곳에 문의를 했더니 제조회사는 문을 닫고 W회사에서 제품수리만 서비스 한다며,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D회사 바베큐더블팬인데 수리가 가능할까요?"
"생산된 지가 오래되어 부품이 있을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렵게 알아낸 전화번호인데 전화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대답은 간단했다. 게다가 서비스센터가 뒷골목에 있어 찾아가는데도 힘들었다.
"한번 제품을 열어보렵니다. 그런데 거의 고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전화로 설명을 들어 크게 기대는 안했지만 막상 그 소리를 직접 들으니 더 실망스러웠다.
"만약에 수리할 수 없으면 그냥 버려 주세요."
노란보자기에 싸서 가져간 팬을 두고 오는데 발걸음이 무거웠다. 못 고친다는 연락이 오면 내가 가지고 와서 작별인사(?)라도 하고 버릴 것을, 하는 생각도 들었다.
우리가 살면서 많은 물건들을 사서 쓰다가 버린 것이 많은데, 내가 이렇게 팬에 집착하고 애지중지한 것은 이유가 있어서다. 그 팬은 우리 가족이 한자리에 모일 때 늘 가족 한가운데 있었다. 명절이면 전을 부치는데 긴요하게 사용되었지만 평상시에는 삼겹살을 구워먹었다.
동그랗게 않아 팬에서 구운 삼겹살을 상추 깻잎 된장 마늘 위에 턱 올려 싸서 한 입 가득 넣고 맛있게 먹었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집에서는 거의 술을 마시지 않지만 이때는 아내하고 한 잔하기도 했다.
내가 고기를 굽거나 아내가 구울 때, 딸과 아들 녀석이 한 움큼 삼겹살을 싸서 사랑까지 담아 입에 넣어주던, 행복했던 시간을 함께한 팬이다. 또 아내가 거금(?)을 들여 살림 하나를 장만했다며 좋아하는 모습이 눈에 선하기도 해서다.
"간단한 고장이어서 고쳤습니다. 수리비용은 5000원입니다"
집에 도착한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아 서비스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다. 정말 반가운 전화였다. 그 다음 날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그 팬을 찾아왔다. 세밑이 가까워지면 버릴 것이 많다. 지우고 싶고 생각하기 싫은 기억들도 있다. 그런데 하찮은 물건, 특히 오래되어 고장 나면 그냥 버릴만한 물건도 소중한 추억이 묻어 있으면 귀중한 보물이 된가 보다. 인간도 그럴까.
옛날처럼 동그랗게 둘러앉아도 한 자리는 비어있겠지만, 아들 녀석 말년 휴가오고 딸 방학해서 집에 오면 행복했던 그날들을 생각하며 바베큐더블팬에 삼겹살을 구워 먹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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