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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를 담고 친교의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이라 모두 월요일 출근을 걱정해서 술은 자제했다. 부천과 구로공단에서 주로 일하고 있다
▲ 김치를 담고 친교의 시간을 보내다 일요일이라 모두 월요일 출근을 걱정해서 술은 자제했다. 부천과 구로공단에서 주로 일하고 있다
ⓒ 최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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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외국인 비율이 11%나 된다고 한다. 영등포구가 15%로 최고고 금천구가 두 번째라고 한다. 어릴 때 우리는 배달의 민족이니, 단일민족임을 배웠는데 이제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되었다. 어릴 때의 배타적 교육이 워낙 뿌리깊다 보니, 이주 노동자들을 마주할때는 당황스러울때가 많다. 일단 그들 앞에 서면 말이 떨어지지 않으니까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다.

11월 마지막 주 일요일(29일), 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다문화 가정과 이주 노동자와 함께하는 김치이벤트를 열었다. 금천희망나눔센터(준)와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 새터교회, 민주노동당 금천위원회, 민주노총남부지구협의회가 함께 준비했다.

작년에는 민주노동당금천지역위가 주말농장에서 손수 재배한 배추를 제공해서 60포기를 직접 다듬고 절이고 속을 버무려 담가 일이 많아 어려웠는데, 올해에는 배추를 직접 절이지는 않고 예전 갑을 노조 조합원의 동생이 해남에서 바닷물로 절인 배추를 판매한다고 해, 그 배추를 이용했다. 처음에는 100포기를 주문했는데, 주변에서 좋은일 한다며, 추가로 20여포기를 더 마련해 주었다.

이주노동자들은 주로 필리핀에서 온 친구들이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8년이 넘은 사람도 있다. 구로디지털단지소재의 전자회사에서 퇴직금 체불과 산재 상담으로 인연을 맺은 노동자들인데 그 중 한분의 가족이 함께 참여했다. 부부와 누나, 그리고 중풍에 걸려 치료를 받으러온 아버지, 까락 주니어, 아세르 어캄포, 테스, 라오, 준, 엘리제등 20명이 참여했다.

필리핀 음식 가나따안 코코넛과 고구마로 만든 필리핀 전통음식 가나따안. 우유에 조롱박 모양의 작은 떡을 버무린 모양. 맛은 차고 달콤하다
▲ 필리핀 음식 가나따안 코코넛과 고구마로 만든 필리핀 전통음식 가나따안. 우유에 조롱박 모양의 작은 떡을 버무린 모양. 맛은 차고 달콤하다
ⓒ 최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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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오 가족은 코코넛과 고구마로 만든 필리핀 전통음식 '기나따안'을 만들어 왔다. 우리식으로 이야기 하면, 조롱 모양의 떡을 우유에 타놓은 모습이고, 맛은 달콤했다.

배추를 직접 절이지 않으니 일이 한결 수월했다. 토요일에 절임배추를 3층으로 옮기고, 아침에 모여서 찹쌀로 풀을 쑤고 무와 파, 갓을 다듬어 김치 속을 준비했다. 이날의 요리사는 한국음향의 전정미 조합원이다.

요즘 한국음향이 폐업을 해, 마음이 편치 않을 텐데, 일요일임에도 기꺼이 오셔서 진행해 주셨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김장에서 제일 어려운 게 배추 속을 버무리는 거라고 한다. 처음에는 고춧가루와 액젓 양념을 버무리고 나중에 무와 풀을 넣고 거의 온몸으로 버무리는 게 제일 고되다고 한다. 작은 체구의 전정미님이 하루 종일 고생했다.

이날 이벤트에서 영어를 좀 한다고 하는 딸 윤영이가 시급 만원에 통역을 해주었다. 아뿔싸, 통역을 하는데 처음부터 막히는 게 아닌가? 일상적인 대화야 하겠지만, 멸치액젓, 매실, 발효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지 허둥댄다. 인터넷 시대라, 바로 인터넷에서 찾아서 어렵게 어렵게 이야기를 나눴다.

딸은 김치를 담기 전에는 '필리핀사람들 영어는 발음이 달라 안 한다'고 빼더니, 김장을 함께 담고는, "이주노동자들이 생각보다 훨씬 밝았고, 한국인들과 잘 어울려 얘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단다. 평소 한국사람들이 외국인을 무시하고 욕해서 한국인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을 거 같아 걱정했는데, "김장을 담글 때도 한국 문화의 한 부분인 음식에 대해 궁금해 하고 이것저것 물어 보고, 한국 문화가 좋다는 모습에 놀랐다"고 했다.

정찬무와 아세르 아세르는 필리핀에서 경찰관을 하다가 한국으로 왔다
▲ 정찬무와 아세르 아세르는 필리핀에서 경찰관을 하다가 한국으로 왔다
ⓒ 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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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두 번째로 온, 까락주니어와 라오는 이제 익숙하게 절임배추에 속을 넣는다. 필리핀에서 경찰을 하다가 아세르 어캄포도 익숙하다. 예전에 함께 일했던 정찬무씨를 '마이프랜드, 마이 프랜드'라고 불르기 좋아하는 까락은 이제 30대 중반이다. 인터넷 채팅에서 만난 필리핀 여성과 결혼 했는데, 그 친구는 지금 두바이에서 일한다고 한다. 두바이 경제가 무너졌다는 말을 해 주었는데, 잘 모르는 눈치다. 이주 노동자들은 가끔씩 아리랑 티브이에서하는 영어 방송을 통해 뉴스를 접한다고 한다.

이주 노동자들은 자신이 직접 속을 넣은 배추김치를 나누어 주었다. 그래도 김치가 많이 남아서, 지역의 홀아비들과 집에서 홀대를 받는 가장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다 보니 실무적으로 고생을 한 김선정님은 정작 가져가지 못해서 나누어준 사람(?)은 한소리를 들어야 했다.

김장을 정리하고 서로 인사를 나누는 뒤풀이 시간을 가졌다. 18년을 살다가 네팔로 쫒겨난 미누씨를 다룬 EBS 지식채널e 영상과 서로 친교할 수 있는 게임을 준비했는데, 장소문제로 진행하지는 못했다.

금천희망나눔센터를 대표해서 발언할 기회가 있었다. 동시 통역을 하면서 이야기 하는 게 쉽지 않다. 발언이 끝나고 영어로 통역할 때 다음 발언을 준비하면 오히려 잘 할 수 있을 거 같은데, 한템포를 쉬다 보니 말꼬리를 놓친다. 그때 '한국인이 외국인들을 무시하는 거처럼 보이는데, 원래 무뚝뚝한 사람이고 서로 인사를 할줄 모른다...여러분들에게 화가난 것이 아니다... 여러분은 두세가지 언어를 이야기 하지만 한국인들은 영어를 잘 하지 못하다 보니 당신들 앞에 서면 말문이 막힌다...이주 노동자가 지역에 11%나 된다...힘든 일 있을 때, 술한잔 하고플 때 사무실에 놀러오라 여기는 늘 열려 있다'고 말했는데 아직까지 한사람도 다시 찾아 오지는 않았다.

속을 넣는 여성들 전정미 요리사와 최윤영님의 통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속을 넣는 여성들 전정미 요리사와 최윤영님의 통영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 최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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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구로공단 시절에는 많은 노동자들이 벌집처럼 생긴 벌방에서 살았다. 지역의 공장들이 지방으로 이전 하면서, 벌방에는 주로 가출한 청소년들이 살더니, 요즘은 거의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우리 동네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고된 일을 해주는 분들이 살았다. 그리고 그 가장 낮은 곳에서 고된 노동을 하는 우리 사회의 진정한 민중의 몫을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이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그분들의 노고를 기억하지 못하고 오직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군소리 없이 하는 일을 시키다가 버려 버리는 1회용 기계로만 여기거나 그것도 모자라 쓸데없는 편견으로 사회적 학대를 하고 있다.   

올해 출입국관리국은 이주노동자 보컬밴드 '스톱 크랙다운'의 미누씨를 추방했다. 그 분은 17년 넘게 한국에 살았다. 저임금의 노동을 하면서 KBS 외국인 노래대회에서 상을 타고 한국 문화의 다양한 향상을 위해 노력했으며,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의 소통을 위해서 힘겨운 노력을 보였는데, 상은 주지 못하고 추방이라는 벌을 주었다.

벌에는 시효라는 게 있다. 잘알다 시피 임금 채권의 시효는 3년이고,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15년이다. 그런데 불법 체류에는 시효가 없는가?  먹고 살기 위해 이 땅으로 와서 우리가 싫어하는 3D, 힘들고 더럽고 저임금인 현장에서 힘겹게 16년 17년을 살아왔는데, 그자 간단히 엄격한 법집행을 위해서 간단히 보낼수 있는가. 그게 법의 정신이고 대한민국에서 추구하는 모습 인가!

남성들과 아이들 김치속 넣는것도 보기만큼 쉽지 않다.
▲ 남성들과 아이들 김치속 넣는것도 보기만큼 쉽지 않다.
ⓒ 최석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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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삶이보이는창 계간지 투고 12월호 투고



#이주노동자#김장#다문화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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