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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경

 

.. 선경에 취해 해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은 7∼8월 피서철에만 30만 명에 이른다 ..  《김경애-이곳만은 지키자, 그 후 12년》(수류산방,2007) 195쪽

 

 '취(醉)해'는 '빠져'나 '빠져들어'나 '홀려'나 '넋을 빼앗겨'로 다듬습니다. "찾는 관광객(觀光客)"은 그대로 두어도 되지만 "찾는 사람들"로 손볼 수 있고, '피서(避暑)철' 또한 그대로 두어도 되나 '여름철'로 손질할 수 있습니다.

 

 ┌ 선경(仙境)

 │  (1) 신선이 산다는 곳

 │  (2) 경치가 신비스럽고 그윽한 곳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   - 허, 이런 비밀한 선경이 있는 줄은 몰랐구먼 /

 │     용궁의 선경을 강 위에 이루었다

 ├ 선경(善驚) [한의학] = 희경(喜驚)

 │

 ├ 선경에 취해

 │→ 아름다운 모습에 빠져

 │→ 멋진 모습에 홀려

 │→ 놀랍고 그윽한 모습이 좋아

 └ …

 

 'SK'라는 회사는 예전에 '선경'이었습니다. 나라안에서 내로라하는 숱한 회사들은 오늘날 거의 모두 '알파벳으로 줄인 이름'으로 바꾸었고, 앞으로도 이 흐름은 줄어들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런데 이 흐름은 정부부서와 공공기업도 매한가지입니다. 정부에서 따로 국어기본법이라는 법률을 마련해서 우리 말과 글을 옳고 바르게 쓰도록 이야기하고 있지만, 정부부서나 공공기업 가운데 이러한 법률을 알뜰히 헤아리거나 살피는 곳은 드뭅니다. 알뜰히 헤아리거나 살피는 곳이 드물다 보니, 이 같은 법이 있는 줄 아예 모르기도 할 뿐더러, 무엇을 어떻게 왜 얼마나 지키고 가다듬어야 하는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코바코' 같은 곳은 일찍부터 알파벳으로 줄인 이름을 써 왔고 'KOSCOM'은 아예 알파벳으로만 쓰며, 주택공사와 토지공사가 하나로 뭉친 'LH'는 처음부터 아예 알파벳 줄인 이름입니다. 그런데 이 같은 정부부서나 공공기업은 손가락질을 받으면서도 제 이름을 옳고 바른 쪽으로 고치거나 바로잡지 않습니다. 이름부터 이런 틀이다 보니 정책이든 사업이든 다른 여러 갈래에 쓰는 말글이든 엉터리이기 일쑤입니다.

 

 하나에서 그치지 않는 말잘못이고, 하나에서 비롯하는 글잘못입니다. 하나에서 뒤틀리니 잇달아 뒤틀리고, 하나에서 어긋나면서 다른 온갖 곳이 어긋나고 맙니다.

 

 ┌ 이런 비밀한 선경이

 │→ 이런 숨겨진 멋진 곳이

 │→ 이런 숨은 아름다운 곳이

 ├ 용궁의 선경을

 │→ 용궁나라 멋진 모습을

 │→ 멋스러운 용궁 모습을

 └ …

 

 보기글을 살피면 "선경에 취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글쓴이는 '선경'이 무엇인지 알고 '취해'가 무엇인지 알겠지요. 이 글을 읽는 분들 가운데 적잖은 분들도 두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 테고요. 그러면,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이 두 낱말을 알고 있을까요? 두 낱말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 푼수는 어떻게 될까요? 두 낱말을 이 나라 모든 사람들이 두루 쓰거나 말하고 있을까요? 두 낱말은 알맞고 바르며 쓸모있는 우리 말이라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글을 쓰거나 말을 할 때에 어떠한 낱말을 고르고 추리고 가다듬어야 할까요?

 

 학교 교육과정에서 우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는 있습니다. 초중고등학교를 마치고 들어가는 대학교에서도 우리 말글을 다루는 교양 과목이 있습니다. 그러나 초중고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우리 말과 글은 이 나라 아이들한테 '내 생각과 넋과 삶을 알차게 담아내는 길'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가르치지 못하고, 말하기가 무엇인가를 일러 주지 않습니다. 또한, 글읽기와 말듣기를 차근차근 다루지 못합니다.

 

 교육과정이 너무 빠듯한 데다가 대학입시에 목매달고 있는 탓이겠지요. 과목을 자잘하게 많이 나누며 학과 시험마저 너무 많으며, 교과서를 달달 외우도록 틀이 잡혀 있어 그렇기도 할 테고요. 아이들한테는 느긋하게 책을 읽을 겨를이 없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어른들 또한 차분하게 책을 즐길 틈이 없습니다. 아이들한테는 신나게 이웃과 동무를 사귀고 어울릴 짬이 없으며, 아이들을 이끈다는 어른들마저 기쁘고 반갑게 이웃과 함께하며 어우러질 새가 없습니다. 책으로만 익히는 말글이 아니지만, 맑고 바른 책을 만날 길이 막혀 있습니다.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몸과 마음에 스며드는 말글이지만, 따뜻하고 넉넉하며 꾸밈없이 어깨동무하기란 더없이 힘든 오늘날입니다.

 

 대학교를 마치고 대학원을 다니며 나라밖에서 더 배우고 돌아온다 한들, 이 나라에서는 참되고 바르며 알차게 말하거나 글쓸 수 있도록 익히기 어렵습니다. 아니, 제대로 익힐 얼거리가 없으며, 스스로 애쓰지 않는다면 익히지 못할밖에 없고, 스스로 애쓴다 한들 제길을 찾기 몹시 어렵습니다. 여느 회사나 공공기관에서 일자리를 얻는다 하여도 일터에서 바르고 알맞게 말하거나 글쓰도록 새롭게 가르치지 않으니, 이름난 큰 회사에서 일하거나 중앙정부에서 일한다 하여도 나아질 겨를이 없습니다. 학교 다니며 받은 성적표에 높은 점수가 잔뜩 찍혀 있어도 참말과 참글을 알지 못합니다. 학위가 여럿 있다고 하더라도, 말글을 알맞고 싱그럽게 가눌 줄 아는 솜씨와 매무새는 조금도 없습니다.

 

 ┌ 아름다운 모습에 젖어들고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 멋진 모습에 사로잡히며 이곳을 찾아오는 사람들은

 ├ 놀랍고 그윽한 모습이 좋아 이곳으로 오는 사람들은

 └ …

 

 아름다움이란 국립공원에만 있지 않습니다. 멋지고 놀라운 모습이란 깊은 산골과 논밭에만 있지 않습니다. 올바른 지식은 가방끈에 있지 않습니다. 훌륭하거나 아름다운 슬기는 배움터 울타리 안쪽에 있지 않습니다. 말이란 국어사전에 있지 않습니다. 글이란 지식인 머리에 담겨 있지 않습니다.

 

 아름다움이 어디에 어떻게 있는가를 옳게 찾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지식이 어느 자리에 어떻게 서 있는가를 바르게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말글이 어디 메에 어떤 모습으로 흐르고 있는가를 참다이 바라보고 껴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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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말#한자#우리말#한글#국어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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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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