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 원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심어 주기 위해 충남 연기주민을 상대로 해외연수를 추진하고 있는 국무총리실이 이번에는 세종시 방송토론회까지 개입하려고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때문에 정부의 세종시 여론 왜곡이 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대전MBC와 대전 KBS, 대전방송(TJB) 등 대전충남 지역방송 3사는 11일 저녁 6시부터 대전MBC 공개홀에서 진행된 정운찬 국무총리가 출연하는 '세종시 발전방안 대토론회'를 녹화해 밤 11시 15분 공동기획으로 90분간 방송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은 사전에 이날 토론회의 시나리오를 직접 작성해 방송국에 전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방송사 측이 사전 섭외한 사회자를 석연치 않은 이유를 들어 거부하기까지 했다.
'오프닝 멘트'에서 '클로징 멘트'까지 제시
우선 총리실이 작성한 방송시나리오에는 오프닝 멘트에서부터 사회자 인사말, 각 토론 주제 및 질문문항, 사회자 클로징 멘트 등 방송진행 대본이 그대로 읽기만 하면 되도록 짜여 있다. 일례로 사회자 인사말 멘트에는 "오늘 대토론회에서는 정부가 내놓은 발전방안의 주요 내용을 진단하고 국가미래에도 바람직하고 충청권에도 도움이 되는 방안이 진정 무엇인지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라고 적어 놓았다.
토론 질문과 관련해서도 "OOO께서는 세종시 문제로 단식과 삭발까지 하셨는데 발전방안을 보시고도 여전히 원안 고수 입장이신가요?"라는 질문을 하게 하고 이에 대한 답변을 듣고 총리가 얘기하는 수순을 담고 있다. 또 자유토론과 관련해서도 별도의 질문문항을 여러 개 예시해 놓고 '다음 질문 중 몇 개 유도'로 명시해 놓았다.
사회자 클로징 멘트에는 "공은 우리 충청인들에게 넘어 왔습니다. 이제 우리 충청인들이 선택할 때입니다. 요란한 정치적, 이념적 구호보다는 과연 우리나라와 충청인의 미래에 바람직한 것이 무엇인지 차분히 생각해 보아야 할 때입니다"라는 예시문을 적시했다. 국무총리가 이번 방송토론회에 참여한 의도와 원안추진 요구를 정치적 구호로 판단하고 있음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총리실 제시한 클로징 멘트, "요란한 정치적 구호보다는..."
대전 MBC 관계자는 "총리실이 방송 시나리오를 오프닝 멘트에서부터 클로징 멘트까지 완성된 대본을 보내왔다"며 "하지만 조금도 반영한 적 없고 반영할 생각도 없었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진행된 녹화방송은 총리실이 제시한 시나리오와 다르게 진행됐다. 또 토론자 4명 중 3명이 행정도시 수정안에 반대하는 인사들로 짜여졌다.
이에 대해 국무총리실 산하 세종시기획단 홍보지원팀 관계자는 "토론회가 기획된 때가 세종시 수정안을 발표하기 전이어서 방송사 측으로부터 수정안의 흐름이라도 알려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료를 제시한 것"이라며 "실제로는 우리가 제공한 질문 내용대로 하지 않고 모두 변경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직접 문안을 확인해보지 않았지만 큰 골격만 제시했을 뿐 질문 내용이나 방송 시나리오까지 세세하게 작성해 준 것은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실은 또 '의도된' 토론회 진행을 위해 사회자 교체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대전MBC는 당초 A 교수 등 복수의 2명을 사회자로 섭외했다. 하지만 국무총리실이 A 교수가 참여 정부 및 현 정부와 관여된 일을 한 전력을 들어 거부 의사를 밝혀 마지막에는 제3의 인물로 교체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A교수는 "불필요한 논쟁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꺼렸다.
이와는 별도로 지역 방송 3사가 일제히 정 총리 토론회를 방영한 데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 대전시당은 이날 논평을 통해 "지역 지상파 3사가 같은 시간에 (같은 내용을) 동시에 방송하는 것은 전파낭비를 넘어 전파독점이자 독재방송"이라고 지적했다.
총리실 거부로 막판 사회자도 교체돼이에 대해 대전 MBC 관계자는 "대전 MBC가 독자적으로 사전 기획해 추진해 오다 다른 두 방송사의 요청으로 공동기획으로 변경했다"며 "하지만 대전 MBC의 경우 총리실의 요구에 단 한 가지도 끌려가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대전충남민언련 이기동 팀장은 "국무총리실이 방송 대본까지 만들어 방송국에 제시한 것은 정부가 언론과 충청민을 대하는 치졸한 인식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이라며 "여론왜곡 시도를 중단하고 정정당당하게 충청민과 토론할 자신이 없다면 세종시 수정계획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사회는 한남대 정순오 교수가 맡았고, 진영은 연기군의회의장과 김선배 숭실대 교수, 단국대 조명래 교수, 엄태섭 서원대 교수 등이 패널로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