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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백산 정상 비로봉
소백산 정상 비로봉 ⓒ 이상기

 

요즘 몇일간 정말 추웠다. 온수 파이프가 얼어 물을 데워 세수를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어디 그 뿐인가? 경유를 사용하는 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정말 고생을 했다. 긴급 출동을 불러도 해결이 되지 않아 날이 따뜻해지기를 기다리는 수 밖에 없기도 했다. 그런데 다행히 기온이 조금은 올라가 조금은 편한 마음으로 소백산 산행을 할 수 있었다.

 

나는 산행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산행을 하면 늘 산행담소 산악회와 함께 한다. 이번 소백산 산행도 벌써 1월 초부터 공지가 올라와,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런데 마침 그날 군대 간 아들 녀석 면회가 잡혀 있어 선뜻 꼬리를 잡지 못했다. 틀렸구나 하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산행 날짜 임박해서 아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이번 주 외박이 어렵다고. 그래서 바로 소백산 산행을 신청했다.

 

 눈덮인 백두대간 능선길
눈덮인 백두대간 능선길 ⓒ 이상기

 

겨울 산행, 어딘들 안 좋을까마는 백(白)자 들어가는 산들이 더 좋은 것 같다. 그 중에서도 백미가 태백과 소백이다. 그런데 실제 산행을 해 보면 태백보다는 소백의 품이 넓고 크다는 생각이 든다. 도상거리도 소백의 마루금이 훨씬 긴 편이다. 그래서일까? 태백산은 도립공원이고 소백산은 국립공원이다.

 

우리 팀은 아침 7시에 관광버스로 단양을 향해 출발한다. 중앙고속도로를 거쳐 천동리 다리안 관광지 주차장에 도착하니 8시30분이다. 몇일 전 내린 폭설로 충북의 북부 지역은 온통 눈 세상이다. 이곳 다리안 관광지도 역시 온통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다. 그렇지만 바람 한 점 없고 날씨도 비교적 맑아 산행하기에는 좋은 편이다. 다들 준비운동을 하고 비로봉을 향해 발걸음을 내디딘다.  

 

천동쉼터에서 만난 다양한 풍경들

 

 다리안 다리를 지나는 회원들
다리안 다리를 지나는 회원들 ⓒ 이상기

 

산행 들머리에 교내교(橋內橋)가 있다. 우리말로 하면 다리안 다리이다. 한자로 읽으나 한글로 읽으나 동어반복 현상이 나타난다. 이곳에는 요즈음 한참 잘 나가는 산악인 허영호 기념비가 있다. 이곳에서 우리는 기념촬영을 하고 다리를 건넌다. 교내교에서 비로봉까지는 약 6㎞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것으로 되어 있다.

 

길은 승용차가 다닐 정도로 아주 잘 나 있다. 우리 옆으로 짚차가 한 대 지나간다. 아니 무슨 차가 겨울에 이 길을 가나 의아해했다. 한 10분쯤 후 우리는 그 차의 행선지를 알 수 있었다. 소백산 국립공원 북부사무소를 향하는 것이었다. 북부사무소에는 '자연, 우리의 미래'라는 큰 현판이 붙어 있다. 그런데 영어 표현 'Nature, our future'가 훨씬 더 인상적으로 들린다. 운(韻)이 맞기 때문이다.

 

 소백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
소백산국립공원 북부사무소 ⓒ 이상기

 

이곳에서부터 길은 계곡을 따라 나 있다. 이 골짜기가 천동계곡으로, 비로봉 아래에서 발원한 물이 천동계곡을 지나 금곡천을 이룬 다음 고수교 근방에서 남한강과 합류한다. 소백산을 끼고 서쪽 단양으로 나 있는 계곡 중에는 이곳 천동계곡과 남천계곡이 가장 유명하다. 이와 대비되는 소백산 동편 영주쪽 계곡으로는 죽계구곡과 석천폭포골이 유명하다.

 

천동계곡을 한 30분쯤 오르니 상고대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고대란 찬 서리가 나무에 얼어붙어 생기는 흰 결정체로, 추운 겨울에만 볼 수 있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다. 이곳의 해발이 800m쯤 되는 것 같다. 이곳에는 또 등산객이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쉼터가 마련되어 있다. 커피와 음료수도 팔고 기념품도 팔고 어묵도 팔고 막걸리도 판다. 겨울이라 그런지 아이젠도 준비되어 있다.

 

 상고대의 시작
상고대의 시작 ⓒ 이상기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일부 사람들은 어묵과 막걸리를 사서 한잔씩 마시기도 한다. 시원한 막걸리와 뜨끈한 어묵, 잘 어울리는 조합이다. 또 다른 사람들은 멋있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느라 바쁘다. 사진은 아래쪽보다 위쪽으로의 그림이 더 좋은 것 같다. 상고대 때문이다.    

 

소백산신의 온화한 미소 속에 만난 주목 군락

 

천동쉼터부터는 오르막의 경사가 조금씩 급해진다. 이 길은 연화봉에서 비로봉을 거쳐 국망봉에 이르는 백두대간 능선길과 연결된다. 소백산 정상인 비로봉의 높이가 1,439m니까, 앞으로 200m 단위로 세 고비를 넘겨야 한다. 그런데 소백산신이 산봉우리 위에서 온화한 미소를 보내는지 바람이 거의 없다. 소백산 칼바람을 면할 수 있어 천만다행이다.

 

 눈과 상고대에 뒤덮인 나무들
눈과 상고대에 뒤덮인 나무들 ⓒ 이상기

 

겨울에 소백산을 오른 사람들의 글에 따르면, 소백에 불어대는 북서풍의 위력은 가히 살인적이다. 죽을 뻔했다는 표현들이 곳곳에 나온다. 그런데 오늘은 정말 바람을 거의 느낄 수 없다. 산 아래와 위의 기압차가 별로 없는 모양이다. 올라가면서 땀이 나고 힘은 들지만 바람이 없으니 등산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여기서 다시 1시간 정도 올랐을까? 주목군락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주목군락은 해발 1,200m 쯤부터 나타난다. 주목(朱木)은 붉은 나무라는 뜻이다. 주목의 겉은 갈색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붉은색을 띠고 있다. 그래서 주목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또 주목은 목재의 질이 좋아 가구 등 고급 생활용품의 재료로 쓰인다.

 

 비로봉 아래 주목군락
비로봉 아래 주목군락 ⓒ 이상기

 

주목은 높은 산지에서 자란다. 그래서 평지에서는 보기가 어렵다. 그런데 요즘은 주목이 관상수로 인기가 높아 정원이나 공원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굵은 줄기와 가지의 적갈색과 뾰족한 잎의 짙은 녹색이 대조를 이뤄 품위가 느껴진다. 더욱이 녹색 잎을 뒤덮은 눈과 상고대가 주목에 고고한 아름다움을 더해 준다.

 

우리 조상들은 자고로 소나무의 절개를 노래해 왔다. 소나무의 고고한 아름다움 때문이다. 고고함과 절개라는 측면에서는 주목도 소나무에 뒤지지 않는다. 1,000m가 넘는 고지에 우뚝 솟은 주목, 또 이들이 천년을 산 후 고사목으로 산을 지키는 모습은 정말 위대하다. 그래서 주목은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고 하지 않는가! 

 

비로봉에 오른 사람들이 어째 이리 많은 겨?

 

 비로봉을 오르는 사람들
비로봉을 오르는 사람들 ⓒ 이상기

 

주목 군락을 지나면서 하늘이 트이기 시작한다. 백두대간 마루금이 가까운 모양이다. 또 지대가 높아서인지 하얀 상고대가 거의 모든 나무를 뒤덮고 있다. 나무들이 겨울 내내 저렇게 얼음보숭이를 뒤집어쓰고 있으면 언제 자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 눈과 상고대를 뒤집어 쓴 주목과 철쭉 그리고 작은 키나무들이 모여 순백의 향연을 펼치고 있다.

 

등산로 중간쯤 주목나무 주변에 쉼터가 마련되어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잠시 휴식을 취한다. 날씨가 조금 풀려서인지 아니면 일요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참 많다. 웬만한 도시의 시장보다도 사람이 더 많은 것 같다. 문경에서 온 사람, 청주에서 온 사람, 부산에서 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비로봉에서의 우리 회원들
비로봉에서의 우리 회원들 ⓒ 이상기

 

하긴 우리 산행담소 회원도 27명이 왔으니, 우리 정도 규모의 팀이 100개만 되어도 소백산을 찾은 인원이 2,700명은 된다는 얘기다. 2,700명이면 작은 면 단위 인원이다. 1개 면 주민이 소백산에 모여들었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래서인지 요즘 산에 가면 좁은 등산로에서 서로 교차하기 위해 길을 양보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나는 많은 사람 중 청주에서 온 사람과 한참동안 대화를 나누며 산을 오른다. 그는 취미로 앵무새를 기른다고 한다. 그리고 앵무새 사진을 찍어 곳곳의 카페에 올리기도 한단다. 현재 50쌍 정도 기르는데, 가격이 200만원이나 나가는 것들도 있다고 자랑한다. 특히 회색앵무가 영리한데 이 녀석은 말을 하는 차원을 넘어 훈련을 통해 숟가락 사용법을 익히기도 한다는 것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취미를 넘어 부업수준에 이른 것 같았다.

 

 비로봉 가는 길의 눈터널
비로봉 가는 길의 눈터널 ⓒ 이상기

  

출발한지 세 시간쯤 후 우리는 소백산 주능선에 도착한다. 이곳에서는 천동계곡에서 올라오는 사람, 죽령쪽에서 올라오는 사람, 국망봉과 비로봉에서 내려오는 사람이 서로 만난다. 소백산 주능선에서 사방을 둘러보니 조망이 참 시원하다. 남서쪽으로는 연화봉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비로봉이 보인다. 더 멀리 동북쪽으로는 국망봉과 소백의 연봉이 첩첩이 겹쳐 보인다.

 

이제 소백산의 정상인 비로봉이 지척이다. 비로봉으로 오르는 길에는 인위적으로 만든 목책과 고무바닥이 길게 이어진다. 등산로가 훼손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일종의 보호장치이다. 등산객들이 많이 찾는 산들에는 대개 이런 시설들이 되어 있다.

 

 비로봉 아래 풍경
비로봉 아래 풍경 ⓒ 이상기

비로봉 정상에 오르니 멋진 표지석이 우리를 맞는다. 표지석 주변에는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여기저기서 방을 빼라고 난리다. 우리도 표지석에 모여 사진을 몇 장 찍는다. 아마 유명산의 정상표지석 만큼 인기 있는 돌도 없을 거다. 이곳 비로봉의 정상표지석 뒷면에는 서거정이 쓴 '풍기 소백산(豐基小白山)'이라는 시가 새겨져 있다.

 

이제 하산할 시간이다. 비로봉에서는 네 방면으로 내려갈 수가 있다. 백두대간을 따라 남쪽으로 가면 죽령에 이르고, 북쪽으로 가면 고치령에 이른다. 동쪽 영주방향으로 내려가면 순흥과 풍기에 이르고, 서쪽 단양방향으로 내려가면 가곡과 단양에 이르게 된다. 우리는 서쪽으로 길을 잡아 단양군 가곡면 어의곡리로 향한다.


#소백산#천동계곡#비로봉#주목군락#상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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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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