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행 선거법 총론은 "자유", 각론은 "부자유"공직선거법 제1조에서는 이 법의 목적을 규정하고 있다. 즉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와 민주적인 절차에 의하여 공정히 행하여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집시법 위헌 사건을 대리한 법무법인 한결의 박주민 변호사(37)는 이것이 선거법에 공통으로 담겨 있는 두 가지 쟁점 "선거 자유의 보장 VS 선거 자체의 공정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변호사는 26일 참여연대 느티나무홀에서 열린 <2010 지방선거 대응을 위한 네티즌-시민사회단체 간담회> 두 번째 모임에 선거법에 관한 궁금증을 해결해주기 위해 강사로 나섰다. 그 자리에는 노원, 의정부, 강남, 부천동작촛불 등 지역촛불 회원들과 진실을 알리는 시민, 촛불나누기, 민주전역시민회, 여성단체연합, 고양무지개연대, 815평화행동단, 촛불예비군 등 많은 시민단체와 커뮤니티가 참여해 뜨거운 선거 열기를 보여 주었다.
그 자리에서 박주민 변호사는 단도직입적으로 "현행 선거법상으로는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만 봐도 총론은 '선거 참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으나 각론에서는 규제 투성이다.
박 변호사에 따르면 선거법의 구체적인 지침 16~17개는 모두 "하면 안 된다"는 금지를 명시하고 있다고 한다. 때문에 선관위는 UCC 규제와 관련해서 지나치고 자의적인 규제에 치우쳐 있다는 비판과 함께 개정을 권고받았다.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보면 "공직선거법은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현의 횟수 제한은 두지 않고 있다"며 "'계속'이라는 자의적 표현으로 횟수를 제한하는 것도 개선돼야 한다"거나 "패러디물은 특성상 과장과 익살스러움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데 이를 허위사실이라고 금지하거나, 재미있어 반복 게시하고 옮기는 행위를 선거운동이라며 금지하는 것은 지나친 제한"이라는 식이다. 표현의 자유라는 헌법에 위배된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의 단순의견이나 패러디, 풍자 정도도 문제삼는 선관위의 고지식함을 대놓고 지적한 것이다.
평소보다 선거 때 더 할말 못해 답답...박 변호사는 선관위가 최근 선거흐름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는 두 가지 특징을 지적했다. 첫째, 금권선거 위험이 없고 완전경쟁이 이루어지는 온라인 공간을 오프라인 상황에 준해서 재단하는 부분이다. 둘째, 유권자들이 자발적으로 선거에 참여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시하기는커녕, 이미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유권자 참여 흐름에 찬물을 끼얹는 경우가 다반사라는 것이다.
예컨대 18대 총선 당시 한나라당 후보였던 정몽준 대표가 여기자의 뺨을 쓰다듬은 사건이 벌어졌다. 여성단체들은 정 의원 사무실 앞에서 성추행 행위에 대해서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선관위는 이를 선거법 위반이라며 의법 조치를 취하였다. 박 변호사는 "선거 때 오히려 역진현상이 벌어지는 것이 심각하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선거는 현대사의 이정표 역할을 했다. 특히 '선거공간'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선거공간 안에서는 대한민국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토론이 이루어졌다. 죽산 조봉암의 평화통일론이나, 김대중 전 대통령의 '미·소·중·일 4대국의 한반도 안전보장 공약'이 선거공간에서 유권자들을 감동시켰다. 심지어 17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허경영이라는 후보가 '박근혜 약혼설'을 공공연하게 말하고 다닐 정도로 선거공간의 의미는 각별했다. 그런 역사적인 의미의 '선거공간'을 선관위가 잠식해 진공상태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선거법 독소조항보다 더 무서운 것은, '독소해석'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제93조 1항이다. "누구든지 선거일전 180일부터 선거일까지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 이 법의 규정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정당 또는 후보자를 지지·추천하거나 반대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거나 정당의 명칭 또는 후보자의 성명을 나타내는 광고, 인사장, 벽보, 사진, 문서·도화, 인쇄물이나 녹음·녹화테이프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을 배부·첩부·살포·상영 또는 게시할 수 없다"에서 '기타 이와 유사한 것'이 문제가 되었다.
이를 좁게 해석하면 유권자들의 활동공간이 넓어지지만, 현실은 다르다. 선관위가 '기타'를 너무 넓게 해석하는 바람에 유권자들이 짚을 땅뙤기가 없어졌다. 이에 참여연대가 과잉해석 금지 사유로 위헌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는 위헌5, 합헌3, 단1표 차이로 위헌이 안 되었다. '선거에 영향을 미치게 하기 위하여'라는 대목도 크게 문제가 되었다. 선관위가 이를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위법 조치한 사례들이 많기 때문이다.
선관위의 해석에 따르면 "계속적으로 게시했다"는 것인데, 어떤 경우는 단 세 번 올렸는데도 문제가 되는 경우가 있었고, 또 다른 경우는 200번 넘게 올려도 문제가 안 된 경우가 있었다. 그리고 선거 때마다 한나라당 지지는 법률을 관대하게 해석하고, 반대의 경우는 무척 빡빡하게 해석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2월에는 선거법 개정 논의를 해야 '숨쉴 공간'이 생긴다박 변호사는 선거법의 실정이 이러한 상황에서 정당이 아닌 시민단체나 유권자 모임 등이 실질적으로 선거에서 할 수 있는 일이란 무척 제한돼 있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2월 한달은 '선거법'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선거법 개정까지는 아니더라도 검찰이나 선관위가 자의적으로 법 해석을 적용하거나 선거법을 남용하는 데 부담을 갖게 하는 정도까지는 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17대 대선 당시 8~9만 명의 선거법 위반자가 적발되었는데 이는 선관위가 선거법을 남용한 결과라는 지적이다. 18대 총선에서는 선거법 적발이 1만5천건밖에 발생하지 않았다. 박 변호사는 "유권자들이 선거법에 질려서 더 이상 글을 올리지 않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선관위가 유권자의 자발적인 선거 참여를 막아서는 장애물이 된 것이다.
아래는 강연이 끝나고 참석자들과의 1문1답
- 선거를 위한 모임을 계획하고 있다. 정당이 개입하면 안 된다고 해서 모두 개인 자격으로 가입하고 있다. 그런데 당적이 있으면 선거법에 저촉되는가?"당적이 있다고 해서 저촉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후보이거나 당직을 맡은 경우는 선거법상 저촉된다."
- 언론을 통해서 후보자의 비리 사실이나 비판적인 내용이 보도됐는데, 단 한 글자도 수정하지 않고 원문 그대로 블로그에 올린다면 선거법에 저촉되는가?"아까 지적한 독소조항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선관위는 '계속적으로' 올렸기 때문에 선거법에 저촉된다고 해석했다. 그렇기 때문에 1회에 한해서 기자회견 식으로 공표하는 방식을 많이 애용하고 있다."
- 우리는 수년 동안 상시적으로 신문배포, 판넬전 등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선거국면에는 눈물을 머금고 개점휴업을 해야 한다. 왜 우리들의 일상적인 활동을 못하게 막는 것인가?"현행 선거법상 가장 문제가 되는 점이다. 선거법은 당연히 금지항목을 줄이고, 평상적인 운동을 허용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가 민주주의의 득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선거법 현실에서는 저촉된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 유권자들이 정책에 대한 관심도가 낮아서 온라인 정책 평가 시스템을 추진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평점도 매기고 평균점수나 영역별 최고, 최악의 정책 같은 것도 소개할 계획이다. 그런데 선거법 108조에 "후보 간 비교평가 금지"에 저촉된다고 들었다. 하지만 신문사의 경우 2007년 경향신문이 대선후보 평가단을 조직해 A, B, C 등의 평점을 주는 특집을 2개월여 동안 진행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나?"2008년에 선거법에 개정되면서 언론사에 한해서는 비교평가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아까 지적했듯이 온라인의 흐름을 선거법이 제대로 포착하지 못한 것은 근본적인 한계다."
- 선거법에 대해서 너무 아는 게 없고 필요한 정보도 많다. 제대로 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나?"그렇지 않아도 민변에서 선거법에 관한 책을 준비하고 있다. 선거 전에 나올 것으로 희망한다."
- 선거 장소 역시 문제다. 교회 같은 종교시설에서 투표를 하게 되면 아무래도 선거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다. 교회에서 안 하게 하는 방법은 없는가?"그렇지 않아도 종교자유연구소에서 "종교시설 투표소 설치 반대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투표소에 관한 부분도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므로 진지하게 논의가 돼야 할 것으로 안다."(김민영 사무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