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가계부를 결산하면서 문득 지난 가계부들을 들춰보다가 깜짝놀랐습니다. 대형마트를 이용하고나서부터 생활비가 30만 원 넘게 더 나온 것이었습니다. 저렴하고 질 좋은 제품을 한 곳에서 편리하게 구매할 수 있어서 이용해왔는데 이상하게 마트를 이용하면서부터 생활비가 더 나오더라고요." - 주부 김씨의 이야기지난 7일 이마트가 주요생필품 12개 제품에 대해서 가격인하를 단행한 이후 롯데마트와 홈플러스의 맞대응이 이어지면서 대형마트의 가격전쟁이 시작됐다. 상대업체가 고시한 가격에서 10원이라도 더 싸게 팔겠다고 서로 나서는 통에 10원 전쟁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가격인하를 통해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소비자들로서는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석연치 않다. 값을 크게 내렸다는 할인품목은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7만여개의 제품 중에 겨우 1~20개 정도다.
극히 일부품목만 인하를 한 것임에도 대형마트의 가격인하에 대한 생색내기로 인해 소비자들에게는 전체적으로 가격을 내린 것처럼 비춰진다. 게다가 가격을 내렸다는 상품은 찾아가보면 이미 품절상태인 경우가 많고 재래시장보다도 비싸기 일쑤다.
이런 눈속임으로 인해 대형마트의 매출은 이미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정도 증가한 상태이다. 결국 값이 싸졌다고해서 대형마트를 찾은 대부분의 소비자들이 가격을 인하하지 않은 상품을 구매한 결과 대형마트만 돈 벌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대형마트, 정말 싸게 파는 거 맞아?사람들이 대형마트를 이용하는 이유는 편리하고 값이 싸기 때문일 것이다. 편리한 것은 몰라도 값이 싸다는 것은 한 번 되짚어 봐야 한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물건들이 동네슈퍼나 재래시장보다 싸지 않다는 것은 소비자단체나 미디어고발 프로그램 등을 통해서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묶음으로 파는 치약, 과자, 식용유 등은 일반슈퍼에서 판매하는 제품보다 중량이 적다. 애초부터 할인점용제품으로 싸게 만들어 '초특가' 등의 문구를 붙여놓고 마치 일반제품보다 싸게 파는 것인양 착각하게 만든다.
행사상품이라고 해서 특별히 할인해서 판매한다는 상품들도 마찬가지다. 행사상품 단골메뉴인 계란은 평소에도 늘 할인판매를 해오던 것이다. 1+1으로 팔리는 신선식품은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제품이 많다. 또 우유는 사람들이 평소에 잘 찾지 않는 2000㎖ 이상 대용량 제품만 싸게 판다. 원래 할인행사를 했거나 잘 안 팔리는 상품들을 중심으로 행사상품이 구성이 되는 것이다.
자체 조달을 통해서 질 좋고 저렴한 상품을 공급한다는 PB상품에서도 대형마트의 상술은 그대로 드러난다. 흰 우유에는 원유의 등급이 적혀있지 않고, 바나나 우유는 원유의 함량 자체가 적다. 소시지는 어육함량이 적고 햄은 돼지고기 함량을 줄이고 대신에 닭고기가 들어있다.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그대로 딱 들어맞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굳이 시간과 자동차 기름 값까지 들여가면서 대형마트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매장 곳곳 숨은 장치가 지름신 부른다대형마트 1층에서 화장실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푸드코트나 문화시설 등도 항상 매장 위쪽에 있다. 위로 올라간 사람은 다시 내려오기 마련이고 엘리베이터를 적게 설치해놓으면 엘리베이터를 찾고 기다리는 것이 귀찮아서라도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게 된다.
내려오는 길에 자연히 진열되어 있는 상품들과 마주치면 필요한 물건들이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점점 매장 안 쪽으로 들어가게 되고 창문도 없고 시계도 없는 마트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쇼핑을 한다.
유행하는 상품은 항상 눈높이에 진열되어 있기에 쉽게 손이 간다. 1+1 두부와 만두, 반 값 할인, 오늘의 기획상품, 한정세일 상품 등은 그냥 지나칠 수 없다. 카트를 한 가득 채우고 계산대 앞에 서면 3개 묶음 과자봉지와 껌이나 건전지 등이 눈에 보인다. 과자는 아이들을 위한 것이므로 거의 습관적으로 카트에 넣는다.
계산대에서 차례를 기다리다보면 눈은 계속 껌과 건전지를 쳐다보게 된다. 껌은 왠지 차 안에 두면 좋을 것 같고 건전지도 어차피 쓰게 될 물건이므로 하나 집어든다. 그래서 대형마트만 가면 과소비를 하지 않으려고 필요한 물건의 목록을 적어서 가더라도 집에 와서 보면 생각지도 못한 물건들이 술술 나온다.
어느덧 주방에는 1+1으로 산 주방세제가 줄을 서 있고 냉장고에는 역시 1+1 두부, 고추장, 만두 등이 가득 차 있다. 욕실에는 1년은 두고 쓸만큼의 치약과 칫솔이 놓여있다. 라면이 붙어있는 소주나 맥주를 사면서도 라면은 꼭 묶음에 보너스까지 추가된 제품을 산다. 평소에는 껌을 잘 안 씹는 사람도 차만 타면 껌을 씹는다. 집에 있는 건전지는 여기저기 굴러다니다가 사라진다. 그리고 다시 살 때는 늘 묶음으로 산다.
오리콤 브랜드전략 연구소에서 지난해 11월 발표한 "소통의 네비게이션, 뉴로마케팅"이라는 보고서에는 뇌과학을 이용해서 소비자들의 무의식에 침투하는 뉴로마케팅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다. 대형마트 역시 이런 뉴로마케팅을 통해서 소비자들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하고 있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간의 동선과 시선은 무의식적으로 오른쪽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매장 입구 오른쪽에는 대형마트의 주력제품들이 진열이 된다고 한다. 진열대의 눈높이에는 마진이 높은 제품들을 진열하고 초특가 표시는 빨간색으로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세일이라는 단순한 문구보다는 "한정 판매", "오늘만 이 가격", "1+1" 등의 조건을 달아서 소비자의 구매욕구를 자극하고 주부들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느린 템포의 음악을 틀어서 쇼핑을 느긋하게 즐기도록 한다.
대형마트는 이렇듯 우리 무의식에 대고 소비를 호소한다. 즉 대형마트에서 오는 지름신은 무의식의 영역에 해당하기 때문에 내가 이성적으로 판단해서 끊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편리하다고 해서 이용하는 마트이지만 마트의 이런 편리함이 사실은 나를 위한 편리함이라기보다는 나의 무의식을 조종하기 위한, 내 지갑을 향한 편리함이었던 것이다.
대형마트의 진열효과 30%, 끊으면 생활비 30% 절약대형마트에서는 진열을 잘 하는 것만으로도 30%의 매출증대가 이뤄진다고 한다. 이 말을 뒤집어보면 대형마트를 끊는 것만으로도 30% 이상의 식비와 생활용품 등의 생활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뿐만 아니라 대형마트를 다녀오는 기름 값부터 가득 채워넣는 냉장고로 인해 추가로 발생하는 전기요금과 버려지는 음식쓰레기로 인한 쓰레기 봉투비용까지 고려하면 대형마트를 끊음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인 이익은 생각보다 크다.
대형마트를 끊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비단 돈 뿐만이 아니다. 한가한 주말 오후를 얻을 수 있고 줄어든 생활비를 가지고 문화생활을 즐기거나 미래를 위한 통장을 준비할 수 있으니 삶의 질도 훨씬 높아지게 된다. 더구나 대형마트를 끊어보면 알 수 있는 것이 무겁게 차로 낑낑대며 실어 나르던 물건들을 동네슈퍼에서는 전화 한 통이면 집 까지 배달을 해주고 냉동실은 비어있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더라는 것이다.
대형마트가 아니더라도 살 수 있는 곳은 주변에 많다. 다만 대형마트처럼 한 곳에서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것들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없을 뿐이다. 값이 싸지도 않은 대형마트에서 내 무의식까지 지배당하면서까지 굳이 필요 이상의 돈을 써야할까?
덧붙이는 글 | 에듀머니 블로그인 착한 경제 행복한 가계부(http://edu-money.com)에도 게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