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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워싱턴에서 열린 미중 경제전략대화에서 왕광야 중국 외교부 수석부부장은 공개적으로 "미국이 북한의 '이유있는 안보우려'(reasonable security concerns)를 수용한다면, 북한이 미국의 일괄타결안에 대해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북미대화를 지지하겠다"고도 했다.

 

북한의 2차 핵실험에 이은 유엔 대북제재 상황에서, 북한의 안보우려가 '이유가 있다', 즉 북한의 핵무기개발은 근거가 있는 것이므로  대화를 통해 북한의 '안보우려'를 해소해주라고 공개촉구한 것이다.  왕 부부장의 발언에 대해 한 외교안보전문가는 "중국이 북한을 버리지 않을 것임을 미국이 분명하게 인식하는 계기가 됐고, 미국은 북미양자대화와 6자회담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판단을 굳혔다"고 평가했다.

 

중국 지난해 7월, 북한의 핵개발 '이유있는 안보우려'로 평가

 

중국의 촉구는, 미국과 북한이 양자접촉에 나서는 동력이 됐고 동시에 북한이 남북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배경의 하나가 됐다.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위해서, 남한과의 관계개선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밝힌 대로 북한이 남북정상회담을 원하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북한이 지난해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 하루를 기다리는 '굴욕'속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만나고, 최근에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대변인이 군복차림으로 강경 성명을 내고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보복성전'을 주장하면서도 이 대통령에 대한 직접비판을 삼가는 것에서도 확인된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달 29일 <BBC> 인터뷰에서 "열린 마음으로 사전에 만나는 데 대한 조건이 없어야 한다"며 "연내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이 인터뷰가 주목받은 것은 '연내'라는 시한을 말했고,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조건을 확 낮췄기 때문이었다. 지난해 11월 27일 '국민과의 대화'와는 달리, 북핵문제에 대해서는 "충분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고만 했고 국군포로·납북자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다.

 

정상회담 조건에 비핵화문제 전면화..."김정일, '유훈'이라는 말밖에 더하겠나"

 

그런데 바로 다음날인 30일 <CNN> 인터뷰에서는 "북한은 마지막으로 핵을 포기할 것인지 아닌지를 답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랜드 바겐에 대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핵문제'를 정상회담 핵심의제로 걸었다. 그 뒤 청와대 관계자들은 "정상회담에서 북핵문제가 '핵문제 진전'정도가 아니라 구체적인 진전이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압축시켰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현재 상황에서 북핵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진전'을 내건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기는 어렵다. 북핵문제는 북한과 미국의 갈등 속에서 나온 것이고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도 6자회담이 그 해결장치라고 정리돼 있다. 북한은 시종일관  북미적대관계가 해소되는 평화체제가 수립돼야 이 문제가 해결된다고 주장해왔다. 후견국인 중국으로부터 '이유있는 안보우려'라는 '추인'을 받은 북한은 3차 남북정상회담을 한다고 해도 이런 기조로 임할 가능성이 높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6자회담이 멈춰있는 상황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이 대통령에게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님의 유훈이다. 조선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 외에 다른 말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런 상황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북핵문제의 획기적 진전'을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것은 북미간 물밑접촉 흐름을 의식한  측면도 있지만, 논의가 된다해도 그 수준이 지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정상회담에 비판적인 '보수세력 달래기용'의 성격이 짙다.

 

이전 두 차례의 정상회담과는 달리 우리는 북핵문제에 할 말을 하면서 정상회담을 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2000년 6·15는 핵문제가 전면화하기 이전이었고, 2007년 10·4는 그 직전에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합의'가 나오는 등 6자회담이 순항하는 상황이었다.

 

보수세력의 비판..."'조건없는 만남' 북한에게만 적용하는 거였나"

 

이 대통령의 BBC 인터뷰 뒤 보수언론은 탐탁지 않아 하는 태도를 보였다. <조선일보>는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에 생각이 바뀐 이유'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3가지 문제(북핵포기에 도움이 되고, 국군포로, 납북자 문제)가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처럼 다뤄졌던 상황의 변화를 시사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고 했다. <동아일보>도 '남북정상회담, 정부가 좀 더 냉철해야 한다'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회담을 한다면 반드시 '북핵해결'을 전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일이 판 함정에 빠지는 셈"(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 "북한이 해안포를 발사해도 좋으니 우선 만나고 보자는 말"(이회창 자유선진당 총재)이라는 반발까지 나오면서,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연내 정상회담은 우리의 희망사항"이라는 말까지 했고, 이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위한 대가는 없다"는 말까지 했다. 북한이 현재 정상회담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고 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북한의 반발을 초래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연내 정상회담' 발언을 한 지난달 29일과는 크게 달라져, 지난해 11월로 돌아간 모습이다. 이 때문에 '조건없는 만남'이라는 이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에게'만' 조건을 달지 말라는 것이었다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실제로 정상회담을 하려고 한다면  북핵문제에 대한 남북관계에서의 현실적 목표를 정하는 등 정책적 접근이 있어야 하는데, 실제 그런 건 없지 않느냐"며 "현재의 '정상회담 드라이브'는 '정치'의 영역에 있는 것 같다"는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의 지적은 고개를 끄덕거리게 한다.


태그:#남북정상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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