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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아름다운 시를 통한 학생들의 정서 순화를 학교 특색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마산제일여자중학교의 문학 답사에 참여하여 경상남도 거제와 통영시를 다녀왔다. 해마다 학년별로 15편의 시를 선정하여 매달 두 편씩을 평상시 외우게 한 뒤 연말에 치르는 '시 암송대회'를 통해 시 암송의 달인들을 뽑고 있다. 그들에게는 시상과 함께 겨울방학 동안 하루 코스로 문학 답사에 참가할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지게 된다.

청마기념관을 거쳐 '요한시집'의 배경인 거제포로수용소로

경남 거제시 청마기념관에서.  
경남 거제시 청마기념관에서.  ⓒ 김연옥

오전 8시 40분께 마산서 출발한 우리 일행이 청마기념관(경남 거제시 둔덕면 방하리)에 도착한 시간은 9시 50분께였다. 청마 유치환이 태어난 곳에 세워진 이 기념관은 2008년 1월에 개관하였다. 청마가 성장한 곳으로 그의 문학적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통영에도 2000년 2월에 문을 연 청마문학관이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자전거' '반달' '메아리' '엄마야 누나야' '초록 바다' 등 동요를 참 많이 불렀다. 그 가운데 '산에 산에 산에는 산에 사는 메아리 언제나 찾아가서 외쳐 부르면 반가이 대답하는 산에 사는 메아리…(중략)…메아리가 살게시리 나무를 심자'라는 노래가 아직도 귓가에 맴도는데, 당시 초등학생들이 즐겨 불렀던 '메아리'의 작사자가 바로 유치환 선생이다.

거제 청마기념관  
거제 청마기념관  ⓒ 김연옥

'깃발' '행복' '그리움' '생명의 서' 등을 발표했던 청마는 총 14권에 달하는 시집과 수상록을 펴냈다. 흔히 '생명의 시인'이라 불리는 그는 그리움과 행복의 시인이기도 했으며, 또한 편지의 시인이기도 했다. 통영여자중학교 교사로 함께 근무했던 정운 이영도 시조 시인에게 20년 동안 5000여 통의 편지를 써 보낸 이야기는 너무나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는 친일 논란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비록 최근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에서 이름은 빠져 있지만 아직 그에게 면죄부가 주어진 것은 아닌 듯하다. 이것이 그의 기념 사업을 서둘러 추진하려고만 드는 단체에 적잖은 사람들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일 것이고 또한 앞으로 꼭 풀어 나가야 할 우리들의 몫일 것이다.

오전 11시께 문학 답사 두 번째 장소인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경남 거제시 시청로)에 도착했다. 한국전쟁 동안 유엔군의 포로가 되었던 인민군, 중공군, 의용군 등을 수용하기 위해 고현, 수월, 양정 지구를 중심으로 360만 평의 농토와 임야에 설치된 거제포로수용소(경남문화재자료 제99호)가 있었던 곳이다.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  
거제포로수용소유적공원에서.  ⓒ 김연옥

'대동강 철교' 조형물 6·25 전쟁 당시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자유를 향해 험난한 피난의 길에 올랐던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
'대동강 철교' 조형물6·25 전쟁 당시 폭파된 평양의 대동강 철교를 타고 자유를 향해 험난한 피난의 길에 올랐던 사람들을 표현한 작품. ⓒ 김연옥

학생들의 해맑은 미소처럼 이제 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며... 거제포로수용소 잔존 유적지에서.
학생들의 해맑은 미소처럼 이제 전쟁의 아픔을 딛고 통일을 희망하며...거제포로수용소 잔존 유적지에서. ⓒ 김연옥

장용학의 소설 '요한시집'의 작품 배경이기도 한 거제포로수용소는 최대로 17만 3천명의 포로들을 수용했다고 전해진다. 포로들이 점차 조직화되어 친공포로와 반공포로로 갈라진 채 이데올로기 대립 양상을 띄게 되면서 처절한 학살과 폭동이 이어졌고, 포로수용소 사령관인 돗드 준장이 친공포로들에게 납치되는 사건도 발생했다.

동족상잔의 비극적 현장인 그곳에는 그 당시 포로 막사, 취사장, 화장실 등이 아주 리얼하게 재현되어 있고, 철거되지 않고 일부 남아 있던 건물들은 1983년 12월에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그런데 건물 벽면에 웬 낙서가 그리 많은지 기분이 몹시 씁쓰름했다.

그래서 유적공원 측에 문의해 보니 문화재로 지정되기 전 한동안 방치되었을 적에 쓰인 낙서라고 해서 언짢았던 마음이 좀 풀어졌다. 같은 민족끼리 서로 총부리를 겨누는 아픈 역사를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 또 전쟁의 아픔을 딛고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교과서 밖으로 걸어 나온 시를 만나는 통영으로

청마문학관에서 내려다본 통영 바다. 청마의 시 '그리움'이 절로 떠올랐다.
청마문학관에서 내려다본 통영 바다.청마의 시 '그리움'이 절로 떠올랐다. ⓒ 김연옥

거제와 통영을 잇는 다리로 견내량해협을 가로지르는 신거제대교를 건너서 미리 예약해 둔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은 뒤 우리는 청마문학관(경남 통영시 정량동)을 향했다. 버스에서 내리자 비릿한 갯가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내가 사는 마산도 바다를 끼고 있는 도시라 짭짤한 갯가 비린내가 싫지 않고 오히려 정겨우면서 살맛나게 하는 것 같았다. 가파른 돌계단을 따라 올라가자 청마문학관이 나왔다. 넘실대는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청마문학관. 그의 시 '그리움'이 어느새 내 마음 속으로 밀려들었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뭍 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오후에 비가 온다던 일기예보가 적중했다. 하늘이 갑자기 잿빛으로 잔뜩 찌푸려지더니 세병관(국보 제305호, 경남 통영시 문화동)에 도착하자 비가 주룩주룩 내리기 시작했다. 목조건물로 경복궁 경회루, 여수 진남관과 더불어 우리나라에서 가장 규모가 큰 건물에 속하는 세병관(洗兵館)은 제6대 이경준 통제사가 조선 삼도수군 통제영 본영(三道水軍 統制營 本營)을 이곳으로 옮기면서 선조 37년(1604)에 세운 건물로 290여 년 동안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의 수군을 총지휘했던 곳이다.

세병관(국보 제305호)의 천장은 몹시 아름다웠다.  통영이 낳은 윤이상, 박경리, 전혁림, 유치환, 김춘수가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세병관(국보 제305호)의 천장은 몹시 아름다웠다. 통영이 낳은 윤이상, 박경리, 전혁림, 유치환, 김춘수가 공부했던 곳이기도 하다. ⓒ 김연옥

그리고 두룡포라 불렸던 이 지역이 이때부터 통영(統營)이란 지명을 얻게 되었다. 세병관은 일제강점기 때 기둥 사이에 칸막이를 쳐서 통영초등학교의 임시 교실로 쓰인 적이 있었는데, 통영이 낳은 윤이상, 박경리, 전혁림, 유치환, 김춘수도 이곳에서 공부를 했다 한다.

비가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여전히 추적추적 내렸다. 하지만 우리는 통영을 좀 더 느껴 보기 위해 동피랑 벽화골목으로 해서 김춘수 생가에 잠시 들렀다가 청마거리와 초정거리를 걷기로 했다. 비가 내려 단체로 움직이는 것이 꽤 신경 쓰였지만 모처럼 낭만에 젖는 느낌에 매우 즐거웠다.

꼬불꼬불한 동피랑마을을 우산 쓰고 올라가면서.  
꼬불꼬불한 동피랑마을을 우산 쓰고 올라가면서.  ⓒ 김연옥

동피랑 벽화골목  
동피랑 벽화골목  ⓒ 김연옥

통영 중앙시장 뒤쪽 언덕에 위치한 동피랑마을은 본디 통영성 동포루(東砲樓)가 있던 자리로 흔히 말하는 달동네이다. 통영시에서는 본디 이곳을 철거해서 동포루를 복원하고 주변에 공원도 조성할 계획이었다 한다.

그러나 '푸른통영21'이란 시민단체에서 2007년 10월에 동피랑 색칠하기를 위한 전국벽화공모전을 열게 되었고, 전국의 미대 학생들을 포함한 18개 팀이 낡은 담벼락에 예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결국 철거 방침은 철회되고, 동피랑마을의 꼬불꼬불한 골목길도 벽화골목으로 새로 태어날 수 있었다.

'동쪽 벼랑'이란 뜻을 지닌 동피랑. 그림과 이야기가 있는 그 골목길은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였다. 아쉬움 속에 비 내리는 동피랑를 뒤로하고 김춘수 생가로 갔다. 김춘수 생가 앞에서 내가 청마를 떠올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청마가 부인 권재순 여사와 결혼하던 날,신랑 신부 앞에 꽃바구니를 들고 서 있던 어린아이 가운데 한 명이 대여 김춘수였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청마거리에서. 통영중앙동우체국 빨간 우체통 옆에 청마의 시 '행복'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청마거리에서.통영중앙동우체국 빨간 우체통 옆에 청마의 시 '행복'이 새겨진 시비가 있다. ⓒ 김연옥

통영은 예술의 도시이다. 길을 걷다가 아름다운 시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가 통영이다. 청마가 에메랄드빛 하늘을 바라보며 편지를 썼다는 우체국을 볼 수 있고, 거리 바닥에 깔린 타일에서도 전혁림 화백의 그림을 감상할 수 있다.

과연 학생들은 이번 문학 답사에서 무엇을 느꼈을까? 아마 역사의 수레바퀴 안에서, 또 웃고 우는 우리들 삶 속에서 문학이 숨쉬고 있다는 것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리고 동피랑에 꿈을 그려 준 아름다운 사람들처럼 그들도 다른 사람들에게 넉넉함을 주는 마음을 키워 나갔으면 좋겠다.


#통영세병관 #동피랑벽화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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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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