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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계적 경제 위기 국면에서 일본의 경기가 빠르게 악화되자 마치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전반적으로 크게 떨어지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이는 근거 없는 억측일 뿐 실상은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의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인 조선업의 경우 수주잔량 측면에서 2000년부터 한국이 일본을 제친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조선업을 주요 사업 영역으로 하는 한국의 중공업 업체들이 이미 일본의 업체들을 능가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하지만 조선업이 아닌 중공업 부문 전체로 확대하면 일본은 매우 강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나라다. 한국의 경우 조선업 하나에만 매달려 있어 세계 경제 위기라는 외풍에 쉽게 흔들릴 수밖에 없으나 일본 기업들은 사업 다각화를 충실하게 진행해 '뿌리 깊은 나무'와 같은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런 현황을 모르고, 한국 중공업 업체들의 실적을 '뻥튀기'해주는 환율효과에 취해 한국 중공업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아래에서 일본과 한국의 중공업업체들의 현황을 좀 더 구체적으로 비교해보자. 일본의 대표적인 중공업 업체들은 미츠비시중공업, 카와사키중공업 그리고 IHI를 들 수 있다. 이들 업체들은 모두 조선업을 모태로 시작한 업체들이다. 그러나 조선뿐만 아니라 오랜 업력과 다양한 기술개발 및 선진기술 도입을 통해 항공우주, 플랜트, 기계, 범용기 등 기술력을 바탕으로 하는 사업부문으로 다각화를 이루어 왔다.

<도표1>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는 창업의 모태가 된 선박부문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비선박관련 사업들이 주력사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예컨대 IHI의 경우 에너지·플랜트, 항공·우주 사업 등이 주력사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미츠비시중공업도 원동기, 중량산품, 기계·철구조물, 항공·우주 사업들이 확실한 주력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또, 카와사카중공업 역시 범용기, 항공·우주 사업 등이 주력사업으로 자리잡고 있다. 이처럼 일본 중공업업체들은 선박사업 부문에서 에너지·플랜트, 기계, 항공·우주 등 첨단분야로 사업구조를 빠르게 바꾸어가고 있다.

<도표1>일본 중공업 업체별 사업 매출액 추이 (주) 각사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2009년은 2분기 누계치의 연환산치임.
<도표1>일본 중공업 업체별 사업 매출액 추이(주) 각사 자료로부터 KSERI 작성. 2009년은 2분기 누계치의 연환산치임. ⓒ 김광수경제연구소

이에 비해 한국의 중공업업체들의 현황은 어떨까? 한국의 대표적 중공업업체인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자.

<도표2>에서 현대중공업의 경영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2008년에 20조원(연결기준 27.4조원)에 달했고 2009년에도 3분기까지 누계 16조원의 매출을 기록해 연말까지 21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중공업 역시 2008년 매출액은 10.6조원을 기록했으며 2009년에는 3분기 누계로 이미 9.6조원으로 연말까지 13조원 가까이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최대 중공업업체인 미츠비시중공업의 2008년 매출액이 3.4조엔 정도이고 카와사키중공업와 IHI가 1.3조엔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매출규모 면에서 현대중공업은 미츠비시중공업의 55%(연결매출 기준 70%) 정도 수준이며 삼성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은 카와사키중공업이나 IHI와 거의 비슷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도표2>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경영실적 및 사업내용 (주) 각사 자료로부터 KSERI작성. 현대중공업은 단독실적. 2009년은 3분기 누계치.
<도표2>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경영실적 및 사업내용(주) 각사 자료로부터 KSERI작성. 현대중공업은 단독실적. 2009년은 3분기 누계치. ⓒ 김광수경제연구소

그러나 비선박부문 사업다각화가 이루어진 일본 중공업업체들과는 달리 한국의 중공업업체들은 대부분 선박사업에 집중되어 있으며 사업다각화가 거의 되어 있지 않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사업내용을 보면 현대중공업은 조선 및 해양부문 이외에도 엔진기계 부문과 건설장비 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삼성중공업은 조선과 건설부문의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사업부문별 실적추이를 보면, 현대중공업은 조선부문의 매출이 2008년에 9조원, 2009년 3분기 누계 6.8조원으로 가장 많았으며, 해양부문이 2008년 3조원, 2009년 3분기 누계 2.7조원 등으로 나타났다. 삼성중공업은 조선부문 매출액이 2008년에 10조원을 넘었고 2009년 3분기 누계가 9조원을 기록해 대부분의 매출이 조선부문에서 발생하고 있다.

삼성중공업은 2008년 기준으로 조선부문이 전체 매출의 94%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역시 조선, 해양, 엔진기계의 3부문 비중이 75%를 차지하고 있다. 둘째는 지나치게 수출에 의존하는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2개 업체의 수출 비중을 보면 현대중공업은 90%를 넘고 있으며, 삼성중공업 역시 마찬가지로 90%를 넘고 있다. 이처럼 한국 중공업업체들의 사업구조가 조선과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들 업체들이 조선산업의 경쟁 및 시황과 환율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2008년까지 호조를 보였던 조선산업은 이제 중국을 상대로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미 중국의 조선업은 수주량에서 2009년 11월에 한국을 제쳤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로 한국 조선업계는 사업환경이 어려워지고 있지만 중국은 해외 금융기관으로부터 충분한 금융 제공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중국정부가 막대한 외환보유고를 바탕으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상황이다. 향후 중국 조선산업은 한국 조선업체들에게 큰 위협이 될 것은 자명해 보인다. 조선사업이 타격을 받을 경우 조선사업에만 집중된 한국의 조선업체는 심각한 타격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 외에도 한국의 중공업업체는 지난 2008년부터 환차익에 크게 의존해오고 있다. 이미 주지하는 바와 같이 일본 엔화 환율은 경제위기 전에 달러당 115엔-120엔 대에서 최근에는 달러당 90엔대 전후 수준으로 -25%가량 떨어졌다. 이에 비해 원화는 달러당 930원 전후 수준에서 경제위기 후 한때 1500원대 이상으로 치솟았다가 최근 달러당 1150원대 전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경제위기 전에 비해 25%가량 올랐다. 이로부터 일본 중공업업체는 엔화 강세로 인한 환차손이 크게 발생했으며 한국 중공업업체는 원화의 급격한 약세로 환차익이 크게 발생했다. 이러한 환차손익은 한일 양국 중공업업체의 매출 실적에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수출 실적을 기준으로 환차손익을 차감한 환율조정 수출액을 추산해 보면 위 <도표2>에서 볼 수 있듯이 2008년과 2009년에 실제 수출액보다 크게 감소한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수출액이 18조원으로 전년보다 4조원이 증가했지만 이중 2.8조원은 환차익에 의한 증가이다. 2009년에는 환차익이 더욱 확대되어 무려 6.7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즉 2009년 예상수출액 19조원 중 6.7조원이 원화 환율 급등에 의한 환차익에 기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박명훈 김광수경제연구소 일본경제팀장.
박명훈 김광수경제연구소 일본경제팀장. ⓒ 권우성
삼성중공업 역시 마찬가지로 2008년에 수출액 9.9조원 중 1.5조원이 환차익에 의한 것이었으며, 2009년에도 수출액 12조원 중 4.2조원 가량이 환차익에 의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실제 이러한 환차익을 차감하면 2009년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의 수출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원화 환율이 한국 중공업업체들의 생사를 쥐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은 조선업 편중에서 벗어나고 환율에 의존하는 체질에서 벗어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다. 그러나 중공업의 특성상 다른 사업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첨단 고부가산업의 기술기반 확보가 전제조건이다. 기술력 향상은 단기간에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 또 과도한 수출의존 구조 역시 달리 해결할 방법이 없다.

한국의 5배 가량이 되는 경제규모를 지닌 일본은 자체 수요가 어느 정도 있다. 그러나 한국은 자체 내수 수요가 절대적으로 작을 뿐만 아니라 맹렬히 추격하는 중국과의 치열한 경쟁에 직면해 있다. 진퇴양난에 직면해 있는 상황인 것이다. 과거 일본 조선업이 한국 조선업의 추격을 받아 1위 자리를 내준 것처럼 한국은 이제 중국의 추격을 받아 머지 않아 1위 자리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

덧붙이는 글 | 모든 사람이 땀흘린만큼 제대로 대접받는 건전한 민주주의 시장경제 건설을 위한 좀더 의미 있는 토론과 참여를 원하시는 분들은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http://cafe.daum.net/kseriforum)을 방문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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