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퍼들의 천국 서퍼스 파라다이스

브리즈번에서 70여Km 떨어진 골드 코스트(Gold Coast)로 향했다. 흔히 호주 30,000Km 해안 중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골드 코스트 47Km 구간을 꼽는데 우리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그 중의 백미라는 서퍼스 파라다이스(Surfer's Paradise). 말 그대로 서퍼들의 천국이다. 일 년 내내 파도가 좋아 크고 작은 국제 파도타기 대회가 주최되는 곳이다. 핫팩이 필요할 만치 으스스했던 시드니와 달리 아열대 기후지대인 이곳에서 무색한 겨울을 접한다. 동래불사동(冬來不似冬)의 경지.

아열대 기후로 호주 내에서도 겨울 속의 여름을 맛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서퍼들의 천국이다.
▲ 서퍼스 파라다이스 해변. . 아열대 기후로 호주 내에서도 겨울 속의 여름을 맛볼 수 있다. 말 그대로 서퍼들의 천국이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겨울 같지 않은 겨울의 경지를 넘어 이 해변은 아예 여름의 영역에 속한 것처럼 보였다. 비키니와 짧은 수영복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이는 백사장에서 긴팔과 긴바지로 무장한 내 모습이 너무 튄다. 서둘러 긴팔을 벗고 옷차림을 가볍게 만들었지만 여전히 해변 사람들 속에 녹아들 정도는 아니다. 노닐 해변이 아니라 거닐 해변으로 목적을 잡은 이의 한계다.

개중에는 거닐 해변으로 찾았으되 적극적으로 동화되어 노는 무리도 보인다. 홍콩에서 온 젊은이들이 점프 장면을 사진에 담으려 애쓰고 있다. 무엇이 그리 좋은지 키득키득 깔깔 웃던 그네들이 내게 와 사진 찍어주기를 청했다.

호주 30000Km 해안 중 가장 아름답다는 골드코스트, 그 중 백미라는 곳이 서퍼스 파라다이스다.
▲ 해변에서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관광객들. 호주 30000Km 해안 중 가장 아름답다는 골드코스트, 그 중 백미라는 곳이 서퍼스 파라다이스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내 카메라를 보고 사진에 조예가 있는 사람으로 오인한 모양인데 기술이 아니라 카메라 때문이면 낸들 재주 있나. 잘 해도 본전이란 부담을 가진 채 사진기를 받아 요행에 몸을 맡겼다. 점프를 하려는 순간에 질끈 셔터를 눌렀는데 다행히 일자로 공중에서 펴진 그의 다리가 잘 나왔다. 액정을 확인한 무리가 또 까르르 웃으며 손뼉을 치고 즐거워한다. 덩달아 기분이 좋다. 젊다는 것, 이렇게 별것 아닌 일에 호들갑스럽게 웃을 수 있는 여유이다. 이런 깔깔웃음을 웃어본 게 언제야? 나이가 드는 것일까.

서핑구역에서 파도를 타는 이들의 자태도 참 곱다. 물결을 역류하며  나아가 물결에 순응하며 돌아온다. 자연에의 저항과 순응, 다시 저항과 순응. 부서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로 나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파도가 멈추지 않으니 파도타기를 멈출 수 없다는 호주인의 정서를 느끼게 해준다.

골드 코스트는 워너브러더스 무비월드나 드림월드, 시월드, 웨트 엔 와일드 워터 월드 등의 거대 테마파크가 밀집되어 있는 관광지다. 그러면서 제트스키와 스쿠버 다이빙, 패러세일링 등 다양한 활동이 가능한 엑티비티 스포츠의 천국이다. 주변에 200여 개의 골프장도 있다. 이 모든 것 중 가장 관심을 가졌던 분야는 스카이 다이빙이었고, 이것을 위해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다.

그러나 분명 있다고 믿었던 골드코스트의 회사는 이미 망했고, 바이런 베이 쪽에서 가능한데 내일 아침 7시에 출발해서 오후 3시 30분에 돌아온다 한다. 내일 시속 200Km로 추락하는 짜릿함을 맛볼 것인가, 프레이저 아일랜드(Fraser Island)로 들어가는 기쁨을 누릴 것인가 고민하던 중 후자를 택했다. 공포에 맞서는 도전의 기회는 잃었지만 하고픈 일 하나를 간직하는 기대는 남겨두게 되었다.

육지에서는 버스로, 바다에서는 유람선으로 변신하며 시내와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 바다로 진입하는 장면을 안에서 찍을 수는 없어 안내 자료의 사진으로 대신.
▲ 수륙양용자동차 아쿠아 덕 육지에서는 버스로, 바다에서는 유람선으로 변신하며 시내와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 바다로 진입하는 장면을 안에서 찍을 수는 없어 안내 자료의 사진으로 대신.
ⓒ 아쿠아 덕

관련사진보기


꿩 대신 닭이라고 아쿠아 덕(Aqua Duck)이라는 수륙양용차로 시가지와 해안을 둘러보기로 했다. 땅에서는 버스요, 바다에서는 유람선이 되는 차가 서퍼스 파라다이스의 번화가 오키드거리(Orchid Ave)에서 출발해 해안을 따라 1시간 가량 설명과 함께 관광객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층건물 사이 시가지를 달리던 버스가 바다로 첨벙 뛰어들 때의 경이로움이란......

정작 어느 한 쪽에서의 기능만 놓으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어중간한 편에 속하겠지만 짧은 시간에 안과 밖에서 시내의 풍경을 모두 섭렵하고자하는 나그네 입장에선 여간 유용한 게 아니다. 해안에 있는 별장지대를 지날 때의 풍광이 인상적이었다. 헬리콥터나 요트를 매어 놓은 수려한 건물의 위용. 언뜻 안내방송을 들으니 저 중에 성룡의 별장도 있다 한다. 누군가는 저기에 살고 누군가는 구경하며 스쳐간다. 이 먼 곳까지 와서 사람살이의 현실만 목도하가 가는군. 흠.....눈만 버렸다.

안내방송과 함께 별장지대나 전망 좋은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
▲ 아쿠아 덕에서 바라본 골드코스트 해안 안내방송과 함께 별장지대나 전망 좋은 해안을 구경할 수 있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호주 정착민의 모험유전자, 아웃백 스펙타큘러(Australian Outback Spectacular)

해가 기울 무렵 골드코스트에서 퍼시픽 모터웨이(Pacific Motorway)를 타고 오스트레일리안 아웃백 스펙타큘러 공연장(http://outbackspectacular.com.au)으로 차를 몰았다. 골드코스트로 나를 이끈 진짜 동인은 아름다운 해변보다도 아웃백 스펙타큘러 공연이었다. 낮 시간의 유람은 이 저녁 공연을 위한 소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웃백을 향해 나선 길에 맛뵈기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고, 막상 아웃백에선 그리던 아웃백의 모습은 쉽게 볼 수 없으리란 우려 때문이었다.

알 엠 윌리엄스사가 만든 곳으로 1천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저녁식사와 함께 아웃백을 소재로 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 스펙타큘러 공연장 전경 알 엠 윌리엄스사가 만든 곳으로 1천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저녁식사와 함께 아웃백을 소재로 한 공연을 감상할 수 있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지는 태양의 마지막 빛이 남빛에 눌려 사그라드는 배경으로 목장의 창고를 연상케 하는 공연장의 자태가 웅장하다. 광대한 주차장에 하나 둘 차들이 들어차기 시작하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한다. 그러나 긴 줄의 기다림에도 문은 6시가 넘어야 열리게 되어있다. 게다가 건물에 들어서고 나서도 정작 식사와 공연이 시작되는 7시 30분까지는 또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 기다림은 지루함이나 따분함과는 거리가 멀다.
.  
본공연장에 입장하기 전 맥주홀에서 사전 쇼를 즐길 수 있다.
▲ 대기 시간 본공연장에 입장하기 전 맥주홀에서 사전 쇼를 즐길 수 있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입구에서 나눠주는 밀짚 목동모자(Stockman's hat)를 머리에 덮는 순간 축제에 온 느낌에 빠져든다. 본공연 시작 40여 분 전부터 펍(맥주홀)에서 진행되는 사전쇼(Preshow)로 흥겨운 포크송 공연이 이어진다. 카우보이 모자에 청바지를 입은 가수가 기타와 하모니카에 맞춰 구수한 음색을 뱉어내면 이곳이 영화 속 서부의 어디쯤, 붉은 모래가 가득한 아웃백 어디쯤의 펍인 듯 착각하게 된다. 나무 술통 위에서 흥겹게 노래하는 가수 뒤로 이색적인 아웃백만의 표지들이 눈에 띈다. 꼭 길 상태를 점검하고 움직이라는 표지(Please check the road condition)나 지금부터 96Km 구간은 캥거루가 출몰한다거나 다음 562Km 구간 내에 주유소 없음을 경고하는 표지가 광활하고 거친 야생의 훈기를 훅 내뱉는 것 같다.

흥겨운 컨트리 송과 카운터에 걸린 모자 등 아웃백 펍의 느낌이 물씬난다. 시간이 될 때까지 결코 열리지 않는 본공연장의 문 앞에서 가벼운 맥주와 수다를 즐기는 느낌이 좋다.
▲ 아웃백 펍 흥겨운 컨트리 송과 카운터에 걸린 모자 등 아웃백 펍의 느낌이 물씬난다. 시간이 될 때까지 결코 열리지 않는 본공연장의 문 앞에서 가벼운 맥주와 수다를 즐기는 느낌이 좋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모자나 배지가 주렁주렁 걸린 아웃백의 펍을 제대로 재현한 카운터, 그곳에서 맥주를 시켜먹는 사람들과 포크송 가수의 연주에 맞추어 춤을 추는 이들의 흥겨움에 휩쓸려 마음은 벌써 아웃백에 와 있다. 그런 느낌으로 벽엘 걸린 아웃백 사진을 보는데 흠칫 가슴이 멎는다. 이 먼 곳까지 나를 날아오게 한 원인들이 사각의 틀 속에 박혀 나를 응시하고 있다. 양떼에 갇힌 승용차, 호주 아웃백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석양 속 버즈빌 호텔, 말 위에 앉은 목동, 로드 트레인, 끝없이 이어지는 붉은길, 황무지를 가로지른 딩고 펜스...... 조금만 기다려라. 여기 박제된 단상이 아닌 실제의 너를 만나러 내가 가마.

벽에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아웃백의 느낌을 한껏 자아낸다.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입장할 때 무료로 나눠주는데 머리띠의 색깔로 좌석을 구분해 경주할 때 편을 가른다.
▲ 대기 시간 벽에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아웃백의 느낌을 한껏 자아낸다. 사람들이 쓰고 있는 모자는 입장할 때 무료로 나눠주는데 머리띠의 색깔로 좌석을 구분해 경주할 때 편을 가른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드디어 본공연장에 입장. 로마시대 전차경기장을 연상케 하는 공연장에서 지정된 좌석을 찾아가니 전채(前菜)요리가 깔려있다. 이곳의 비싼 입장료는 바로 3코스 저녁식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디너쇼다. 전식으로 망고 드레싱을 얹은 부쉬맨 퀸즐랜드 샐러드가 나오고 본요리로 프럼 소스가 둘러진 바비큐 안심스테이크, 후식으로는 퀸즐랜드 베리 소스와 컨트리 크림을 곁들인 파블로바가 나오는데 맛은 매우 흡족했다. 음식 자체의 질이 좋았던 면도 있겠지만 2시간 이상을 기다린 배가 무엇인들 맛있지 않았으랴.

맥주나 와인, 음료가 무한 리필이어서 일행의 입은 함지박이다. 어차피 술을 입에 대지 못하는 내가 있으니 운전기사는 확보되었고, 이참에 먹고 죽어보자는 심산이다. 서빙하는 이들도 알 엠 윌리엄스(R. M. Williams)사의 아웃백 의상으로 무장하고 한껏 휴식의 기분을 유도한다. 아웃백 의류와 용품으로 유명한 알 엠 윌리엄스사는 아웃백 스펙타큘러를 만든 주체이기도 하다. 2천 3백만 달러를 들여 1천석 규모의 이런 식당 겸 공연장을 만들려면 개인의 힘으론 어려웠을 것이다.

로마 전차경기장 같은 공연장에서 전채요리로 시작해 본요리, 후식으로 이어지는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
▲ 아수백 스텍타큘러의 식사. 로마 전차경기장 같은 공연장에서 전채요리로 시작해 본요리, 후식으로 이어지는 코스요리를 즐길 수 있다.
ⓒ 오창학

관련사진보기


공연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구에 호주 아웃백 같은 장소 다시 없고, 지구에 호주 아웃백 스펙타큘러 같은 쇼 다시 없다"는 업체의 광고가 허풍이 아님을 실감한다 .
아웃백에 대한 소개,  목장의 삶, 각종 경주로 이어지는 3막 공연을 통해 아웃백 삶의 이모저모를 보여준다. 역량 있는 가수의 컨트리 음악과 등장인물들의 연기, 그리고 말, 소, 양, 낙타, 개, ATV와 사륜구동, 심지어 헬리콥터까지(실제 날아다니는 것은 아니고 천장에 매달려서) 등장하는 그야말로 스펙타클한 장면의 연출은 아웃백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정착민들의 용기와 개척정신, 애환과 웃음을 진한 감동으로 전해준다.

모자의 띠 색깔로 편을 나눈(엄밀히는 주최측에 의해 나뉜) 관객 모두가 열띤 응원으로 호응하는 가운데 펼쳐진 경주, 등장인물들의 익살, 가히 묘기라 할 만한 기마술에 마음을 뺏기다가 마침내 호주 깃발을 든 기마대가 대미를 장식할 때쯤엔 정열과 흥분에 흠뻑 감염된 다. '보라, 이런 열정과 개척정신이야말로 진정 장엄한 호주 정신이다'며 외치는 연설에 보기 좋게 설득당한 느낌이다. 비아냥이 아니라 부러움이다. 내국인과 외국인이 함께 공감하고 지향할 수 있는 정서가 있음은 부러운 일이다.

공연은 아웃백에 관한 것이지만 꿈의 시대(Dream Time)라 일컫는 신화시대로부터 저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의 삶과 문화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다. 백인들의 목장과 광산이 들어서기까지 원주민에게 가했던 폭압과 잔혹의 역사를 드러내기엔 피 냄새가 너무 역하고, 은폐한 채 원주민과 백인 문화의 연계성과 유대를 표현하기엔 가식의 냄새가 너무 강했을 것이니 저녁을 먹으면서 즐기는 쇼의 주제로 삼기에 무리가 있었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고 바람뿐인 황무지, 더운 날씨, 물 부족, 파리와 뱀, 그리고 고립을 상대로 처절한 삶을 이어갔던 초기정착민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면 자연 앞에서 왜소한 인간의 모습과, 그럼에도 굴하지 않는 위대한 인간의 의지에 공감할 수 있다.

독립전쟁으로 죄수송출이 어려워진 미국을 대신해 호주가 새 유형지가 되어 1788년 726명의 죄수가 포함된 1300여명의 영국 선단이 이 땅에 도래한 이래 수많은 죄수와 자유정착민이 씨앗 한 줌을 들고 광막한 아웃백을 삶의 터전으로 바꾸어 나갔다. 아웃백의 목장들을 '스테이션(Station)'이라 부르는데, 말 그대로 '주둔지'의 의미를 갖는다. 지금도 아웃백이라는 거친 환경과 싸우는 상황에서 원래 식민정부가 죄수를 주둔시킨 농장과 목장을 지칭했던 이 용어는 여전히 유효하다.

아웃백 목장의 모습을 노래와 스텍타클한 장면으로 재현하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연장면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안내책자의 사진으로 대신.
▲ 아웃백 스펙타큘러의 공연장면 아웃백 목장의 모습을 노래와 스텍타클한 장면으로 재현하여 풍부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공연장면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안내책자의 사진으로 대신.
ⓒ 오스트레일리안 아웃백 스펙타큘러

관련사진보기


한과 신념의 노래 월칭 마틸다

컨트리 뮤직의 전설 리 커너간(Lee Kernaghan)이 작곡한 곡들이 울리는 장엄한 감동 속에 연출되는 목장의 삶,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의 교감을 보노라면 별, 모닥불, 음악으로 포장된 아름다운 모습에서도 고단한 아웃백의 삶은 감지된다. 리의 곡은 아니지만 '월칭 마틸다(Waltzing Matilda)'가 울려 퍼질 땐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1984년, 호주 국가(國歌)로 불리던 영국 국가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대신 '오스트레일리아여 굳세게 전진하라(Advance Australia Fair)'가 채택되었지만 여전히 '비공식 국가'라 일컬어질 만큼 호주사람들에겐 대중적 인기를 누리는 노래다. 경쾌한 행진곡풍의 곡조에도 불구하고 노랫말이 애잔한 한의 정서를 담고 있어 한국의 아리랑에도 곧잘 견주어진다.

노래의 내용은 이렇다. 떠돌이노동자(Swagman)는 유칼립투스 나무 그늘진 샛강(Billabong) 언덕에서 야영을 한다. 양철주전자(Billy)에 먹거리를 익히다가 강가에 물 마시러 내려온 양 한 마리를 훔쳤는데 목장주인(Squatter)이 경찰 셋과 쫓아와 네 보따리에 든 게 누구 양이냐고 추궁한다. 떠돌이노동자는 "산 채로 날 잡아가지는 못할 걸(You'll never catch me alive)"하며 강물에 몸을 던져 목숨을 끊는다. 그리고 그 후 강가를 지날 때면 "너도 나와 같이 유랑을 떠나자(You'll come a waltzing Matilda with me)"는 유령의 목소리가 들린다. 

시인 벤조 (Andrew Banjo Paterson: 호주 10달러 지폐 앞면에 그려진 바로 그 사람)가 작사한 이 노래에는 19세기말 20세기 초, 실업률이 심각했던 때 아웃백 떠돌이노동자의 애환이 잘 그려져 있다. 이는 19세기 중반 골드 러시기에 일확천금의 꿈을 안고 호주로 몰려들었다가 빈털터리가 되어 괴나리봇짐 등에 메고 이 농장 저 목장으로 떠도는 날품팔이 유랑민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1854년 금광붐이 한풀 꺾이던 시기 광부들과 정부 사이에 면허비 징수를 둘러싸고 벌어진 유레카 봉기(Eureka Stockade)도 어찌 보면 굶은 이가 강 웅덩이로 몸을 던지는 방법 대신 적극적 저항의 길을 택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또 1880년 사형당한 네드 캘리(Ned Kelly:생활이 어려워 말과 소를 훔치다가 급기야 '켈리 갱'이라는 갱단을 만들어 은행을 털고, 경찰관 셋을 죽이고, 심지어 목격자까지 죽였다)가 당시 사람들에게 아웃백의 로빈 후드로 추앙되었던 것 역시 빈부격차에 대한 부정적 인식, 강자에 저항하는 약자에 대한 애정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양 한 마리를 훔친 대가는 무엇이었을까? 사형? 무기 징역? 영국에서 빵조각을 훔쳤던 사람이 7년형을 받던 시대였고, 심지어는 배로 8개월이나 떨어진 호주로 유배를 가야하는 처지였으니 호주에서의 양 한 마리도 결코 가볍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국에서 호주로 유배된 죄수들의 대부분은 굶주림을 참지 못한 도시노동자였다는데 호주 이후의 삶도 굶주림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있었음을 이 노래는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태생이 어디이든 호주땅에서 호주인으로 살아가는 이는 체포에 직면해 다른 양상을 보인다.
"산 채로 날 잡아가지는 못할 걸(You'll never catch me alive)"
힘을 갖지 못한 자가 보여주는 최고의 저항, 죽음으로 맞서는 마지막 저항이다. 그리고는 끝맺지 못한 그의 노래가 유령의 목소리가 되어 강에서 들려오게 된다. 호주인들이 이 노래를 애창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언더독(underdog)'이나 '배틀러(battler)'라 부르는 강인한 이들을 숭상하는 사회적 정서와도 통하는 바가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서는 유형지로 개척되었던 사회적 여건과 아웃백으로 대변되는 거친 자연환경의 싸움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공연은 끝났다. 어쩐지 가슴 한 켠이 뻐근하다. 외국인 뿐 아니라 호주관광객들에게도 저녁식사 한 끼와 한 바탕 쇼 이상의 무언가가 있는 표정이다. 해안 도시의 안락한 삶에 젖은 이들에게도 아웃백의 개척 정신은 아릿한 향수로 남아 유전자 어디를 자극하고 있는 것일까. 다시 믹 던디(영화 크로커다일 던디의 주인공)나 드로버(영화 오스트레일리아의 남자주인공)로 대변되는 '호주인'의 탄생을 기대해도 좋을까.

시중에서 5달러면 살법한 모자건만 공연장에서 나눠준 목동모자를 소중하게 챙겨나왔다. 우리도 한국의 정체성을 상품화할 이런 공연 하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호주의 인기 민요 '월칭 마틸다(Waltzing Matilda)'
문자대로 '춤추는 마틸다'로 번역해서는 의미가 잘 와 닿지 않는 이 노래는 호주의 시인 밴조 페터슨(Andrew Banjo Paterson)이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5년 퀸즐랜드의 아웃백 목장(Dagworth라는 윈튼 북쪽의 목장이라고도 한다. 윈튼에는 '월칭 마틸다 센터'가 있다)을 방문했다가 매력적인 곡조가 연주되는 것을 들었고 그 곡조에 가사를 붙여 1900년대 초 노래집에 발표되었다는 것인데 노래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창작의 소종래와 노랫말의 해석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다.

대략 알려진 바로는 벤조가 목장주인에게 그곳에서 있었던 양털깎이 노동자들의 폭동 이야기를 들었는데, 내용인 즉 노동자들이 목장에 불을 질러 양 100마리 이상을 죽이고 도망갔는데 목장 주인과 3명의 경찰이 그들을 추적하자 범인 중 한 명인 호프마이터(Hoffmeister)라는 사람이 경찰에 붙잡히기를 거부하고 연못에 투신자살했다는 것. 

벤조는 이 이야기에 당시 실업문제가 심각했던 호주 사회의 현실을 반영해 내륙 오지의 목장을 전전하며 어려운 생활을 하는 떠돌이노동자(Swagman)의 애환을 노랫말로 담아내었다.  떠돌이노동자(방랑자)가 배가 고파 양을 훔쳤는데 쫓아온 목장주인과 경찰들에게 체포되기를 거부하고 연못에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뒤 연못에서 '함께 유랑을 떠나자'는 유령의 소리가 들려온다는 내용이다.

월칭(Waltzing)은 독일어 'auf die walze gehen'에 어원을 둔 '방랑자', '유랑노동자' 정도의 의미를 가지며 마틸다(Matilda)는 투튼어 '위대한 여전사(mighty battie madien)' 기원을 두고 있는데 유럽의 30년 전쟁(1618-1648) 때 군인들을 따라다녔던 여성들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이후 '마틸다'는 '밤에 따뜻하게 해주다'의 의미로 쓰이다가 아예 '모포'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 '등짐','괴나리 봇짐'정도로 해석할 수도 있으니 '월칭 마틸다'는 '등짐(모포) 맨 떠돌이노동자(방랑자)'로 호주의 떠돌이노동자 스웨그맨(Swagman)을 지칭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혹자는 '춤추는 등짐'으로 보아 춤추듯 등짐을 털럭이며 방랑하는 유랑민, 떠돌이 노동자로 보기도 한다.

'월칭 마틸다'의 내용은 윤필립의 <시드니에는 시인이 없다>와 이덕안의 <지구촌 나들이 호주>를 참조


태그:#호주,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 #아웃백 스펙타큘러, #골드 코스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시.서.화에 능하고 길떠남에 두려움이 없는 생활인. 자동차 지구 여행의 꿈을 안고 산다. 2006년 자신의 사륜구동으로 중국구간 14000Km를 답사한 바 있다. 저서 <네 바퀴로 가는 실크로드>(랜덤하우스, 2007)

이 기자의 최신기사그레이트빅토리아 사막 횡단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