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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올해 창간 10주년 기획의 일환으로 국내 11개 진보싱크탱크들과 공동으로 '지방선거 10대 어젠다'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삽보다 사람'이라는 주제가 붙은 이번 기획을 통해 거대 담론보다는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선정하고 이에 대한 대안을 내놓을 계획입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편집자말]
3살된 한결군 벌써 만 15개월, 한국나이로 3살이 된 한결군
3살된 한결군벌써 만 15개월, 한국나이로 3살이 된 한결군 ⓒ 문병호
2008년 11월 10일, 우리 부부의 첫 아이가 세상에 태어났다. 팔불출 아빠가 보기엔 너무도 크고 예쁜 눈을 가진 사내아이로 이름은 한결이다. 한결이가 태어나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등록된 장소는 서울 용산구, 그리고 만 15개월이 된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안양이다.

한결이가 태어나고 우리 부부는 용산구청으로부터 5만원의 출산장려금을 받았다. 일반적인 출산장려정책이 저출산문제 자체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라면, 지자체의 출산장려정책은 특히 지역의 출산율을 높임으로써 지자체의 인구 규모와 구성을 유지하기 위한 목적도 갖고 있다. 이렇게 보면 우리 부부는 출산장려금만 타먹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 먹튀가 된 셈이다.

고향은 아니지만 자취로 시작해 7년을 살았고 결혼후 신혼집까지 꾸렸던 용산에서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육아문제 때문이다.

출산장려금 '먹튀' 양산하는 서울의 주거·육아 환경

어렵게 구한 신혼집의 전세금은 8천만원이었고 계약기간은 출산 몇 달후가 만료였다. 하지만 재개발과 뉴타운 바람이 휘몰아쳐 남일당의 참사가 일어났던 그 용산의 집값은 이미 천정부지로 뛰어있었다. 그 전세금으로는 집이 없다며 부동산에서 문전박대 당하기가 일쑤였다. 햇볕이 안 들어 벽지에 곰팡이가 슬어 있는 반지하집,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는 도저히 올라갈 수 없어 보이는 가파른 계단의 4층집, 한없이 세모에 가까운 사다리꼴 모양을 하고 있는 집들을 둘러본 후에 우리 부부는 이사를 결심했다. 부부야 상관없지만 아이는 정상적인 주거환경에서 키우고 싶었기 때문이다.

주거환경의 문제도 심각했지만 육아문제도 중요했다. 맞벌이에 아내는 잡지사에 근무해 마감 기간에는 야근이 잦았다. 아이의 보육료는 국가에서 지원되지만 맞벌이 부부의 퇴근시간에 맞는 어린이집을 찾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아직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였기 때문에 조건은 더 까다로웠다. 결국 아이의 외할머니가 있는 지역으로 이사가기로 결정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부부가 특별한 조건을 갖고 있는 건 아니다. 많은 신혼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집 없이 전세로 결혼생활을 시작한다. 출산을 했거나 고려하는 많은 젊은 부부들이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할 수밖에 없다. 우리 부부가 결국 이사를 했으니, 용산구의 출산장려금 5만원은 출산을 장려하거나, 혹은 아이를 낳은 후 이사를 했기 때문에 용산구의 신생아 비율을 늘리는데 실패한 셈이다.

출산장려금을 더 많이 준다고 해서 문제는 달라지지 않는다. 전남 보성의 출산 장려금은 240만원(첫째 기준)으로 용산의 50배에 가깝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의 다른 조건들을 다 상쇄할 금액이 아닌 이상 보성에서도 먹튀와 저출산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출산장려금을 많이 주는 지자체의 출산율이 오르지 않는 이유다. 결국 출산장려정책은 육아와 보육정책과 연결되어야 하고 주거환경을 결정짓는 부동산 정책과도 이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출산장려정책은 지자체가 아니라 국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지자체, 육아의 디테일을 파고 들어라

지자체의 역할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출산장려금도 출산시 비용부담을 줄여주는 좋은 제도이기도 하다. 일부 지자체처럼 생색내는 수준의 금액이 아니라 출산비용에 근거해 현실적 부담을 줄여주는 방향으로 개선되면 출산을 장려하는 정책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맞벌이 부부들이 출산비용 때문에 출산을 미루는 게 아니라 육아 비용과 조건 때문에 출산을 미룬다. 때문에 지금의 출산장려금 일변도인 지자체 출산장려정책은 육아조건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국가가 보조하는 어린이집의 야간 운영비용을 지자체가 추가 지원한다면 맞벌이 부부의 육아부담을 줄일 수 있다. 아예 구립 어린이집을 늘리고 운영도 맞벌이 부부의 육아 형태에 최적화시킨 맞춤 육아 서비스를 직접 제공하는 방법도 있다. 요즘 이슈가 되는 무상급식도 마찬가지다. 한나라당 지자체 의원들이 차등지원이라며 제외하고자 하는 가정의 대부분은 육아와 교육비용에 적지않은 부담감을 갖고 있다. 그리고 이 부담감이 곧 저출산의 원인이 된다.

매해 도로만 뒤엎을 게 아니라 유모차가 다니는 인도의 환경을 정비할 수도 있다. 지자체들이 자전거 유행에 편승하느라 안그래도 좁은 인도에 자전거 길을 내 유모차와 자전거가 스치듯 지나가는 아찔한 길도 많다. 유모차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1킬로미터 남짓한 길에만 뜯어고치고 싶은 길이 10군데는 된다.

지자체 선거, 출산장려금 경쟁 말고 육아환경을 경쟁하라

6월 지방선거가 다가온다. 아마 대부분의 후보들이 나름의 저출산 대책을 내놓을 것이다. 지자체 선거에 꼭 참여할 부모 유권자로 후보들에게 한가지만 요구하고 싶다. 이번 선거에서는 출산장려금 경쟁을 할게 아니라 육아조건을 개선시키는 경쟁을 해달라는 것이다.

유모차가 못가는 곳이 없는 동네, 5만원 출산장려금은 안 줘도 5만원만 내면 되는 어린이집이 있는 동네, 애를 낳고 키우는 것이 두렵지 않고 행복한 동네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내건 후보들이 지자체에 더욱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특별히 현재 주거하고 있는 안양시장 후보들에게 부탁한다. 100층짜리 시청청사보다 1층짜리 시립, 구립 어린이집을 100개 지어달라고 말이다. 이건 '동혁이형'이 이미 부탁했던가?


#지자체선거#출산장려금#저출산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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