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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나를 아는 사람과 나를 모르는 사람이다'는 식의 재미있는 표현방식을 빌려보려고 한다. 요즘 출판되는 책들을 이렇게 말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책표지 책의 표지
▲ 책표지 책의 표지
ⓒ 전남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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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책이 있다. 좋은 글을 널리 전하려고 출판되는 책과 출판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대필 작가의 손을 빌려 자기 돈 들여 나온 책이다.   

후자의 책은 선거를 앞둔 입후보자들이 출판기념회를 통해 선거유세 일환으로 만들어 내는 책이 포함된다. 지금 내가 소개하는 책도 명백히 후자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다. 세상에 출판되는 책의 종류를 새로 하나 더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강진군 군수 황주홍씨가 낸 책이다. <강진군에서도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는 책인데 지난 달 말에 나왔다. 이 책을 선뜻 읽게 된 것은 그가 재작년인가 신문에 쓴 글을 읽고 크게 놀란 적이 있었던 데다 최근에 그가 민주당의 텃밭이라고 하는 전라남도에서 민주당을 탈당하며 기초자치단체장의 정당공천제를 반대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재작년에 중앙 일간지에 그가 쓴 글은 시민운동가가 쓴 글 같아서 기억에 새롭다. 오후 6시 이후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짧았던 그 글에 비해 이 책에서는 좀 더 밀도 있게 그 주장이 나온다.

접대문화와 회식문화에 대한 비판이었다. 퇴근 후에 벌어지는 대부분의 모임들이 밥 먹고 술 먹고, 다시 1차와 2차 술집을 순회하다 노래방과 찜질방을 돌며 건배소리 요란한 폭탄주를 돌리는데 이는 공무원이나 직장인을 가리지 않고 사업가나 교수도 예외는 아니라면서 이런 문화를 바꾸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번 옳은 말이다. 동창회니, 향우회니 하는 곳이 대개는 돈 자랑, 먹기 대회, 버리기 대회인 것이 사실이다.

선거용 명함처럼 책 표지 전면에 저자인 황 군수 사진이 실려 있는 이 책은 다른 '현직'들이 쓴 책과 다른 점이 있다. 출판에 급급해 쓴 글들이 아니고 이미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동아일보, 내일신문, 강진신문, 월간 지방자치 등에 실렸던 글들이다. 그러니 상당히 객관적 사회비평 글이 대부분이다. 물론 그 중심에는 강진군이 있고 행정과 정치가 있다.

입시에 전념하고 있는 고등학교 학생들 앞에서 명문대에 합격하기 위한 특강을 하는 강사가 독서를 많이 하라. 신문도 보고 잡지도 보고 도서관 책들을 많이 읽으라고 이야기 한다면 청중은 그 다음 이야기를 좀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단 두 가지 조언을 하면서 한 시간을 강의한 그 강사가 두 번째는 이웃을 보살피고 남을 배려하라고 이야기 했다면 이 사람이 대안교육 활동가인가 하지 않겠는가?

현직 군수다. 자기 군의 고등학교에서 이런 특강을 한 사람이 강진군수다. '기죽지 말라'고 자식과 제자를 가르치지 말고 '남을 배려하라'고 가르쳐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주장에 맞게 강진군은 전국에서 최초로 '마을도서관 운영지원조례'를 제정하였다고 한다. 세계 192개 나라 중에서 166위의 독서수준인 대한민국을 바꾸는 시도라 하겠다.

물론 이 책에는 강진군의 경제성장율이 어떻고 부농이 얼마나 증가했고 하는 자기 자랑이 있다. 사실에 부합되는 주장일 경우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저자의 경제관이 어떠냐 하는 것이 중요해진다. 성장을 통해 인간의 무한한 욕망을 뒤쫓을 것인지 절약과 근검을 선택할 건지 '현직'으로서 쉽지 않을 일이다.

한국을 방문한 헤어초크 독일 대통령이 신라호텔에 며칠 동안 머물면서 20여장의 타울 중 단 두 장만 썼고, 양말은 화장실에서 손수 빨아 신었다. ....(중략)... 프랑스 리모쥬시를 방문했을 때였다. 시 국제국장의 차를 탔는데 국장이 더워서 목덜미에 땀이 뻘뻘 흘러 내렸다. 국장 차는 에어컨이 없는 차였다.(330쪽)

경제가 곧 도덕 신념, 군 행사에 자화자찬성 축사도 없애

그는 경제는 곧 도덕이라고 주장한다. 도덕이 경제가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 보인다.

강진군은 군 청사가 옛 건물 그대로다. 신축 계획도 없다. 성남시나 안양시의 초호화 청사와 비교된다. '지구의 부담을 줄입시다!'는 군 차원의 캠페인도 준비하고 있다. 군청 소비품에 대한 절약도 강조된다.

예산을 절감하자는 차원만이 아니라고 한다.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우리들의 생각을 개선시켜 줄 출발선'이 되고자 하는 것이라고 한다. 코앞에 닥친 선거를 앞두고 하는 주장이 아니라 2008년 5월에 어느 신문에 그가 쓴 글에 나오는 이야기다.

책에는 2007년 8월 '내일신문'에 실렸던 글이 있다. 지자체들이 다투어 벌이는 지역축제에 거품들이 많다는 주장이다. 우선 권위주의의 거품이다. 그는 강진군 행사에 군수가 하는 자화자찬 성 축사를 없애버렸다. 내 외빈 축사도 없앴다. 심지어 애국가까지 없앴다.

'대하소설 같은 축사들이 참석자들의 인내심을 실험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참 고귀한 믿음이라 아니할 수 없다. 현직군수의 말로 곧이들리지 않을 정도다.

가장 역설하는 것은 지방자치에 대한 중앙정치권력의 장악수단이자 '추악한 악법'인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것이다. '정당공천폐지 국민운동본부' 상임공동대표를 맞고 있는 그는 작년 3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천폐지운동이 실패하면 슬그머니 민주당 공천을 신청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고 선언했었다.

아쉽게도 그 '추악한 악법'은 여태 바뀌지 않았고 지난 17일 약속대로 그는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하겠다는 것을 선언했다. 정치인으로서 자기 소신에 목숨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드문 일이다.

미국의 미네소타 대학과 서울에 있는 건국대에서 정치학교수로 있었던 전력대로 그는 정치적 신념을 귀하게 여긴다. 실리를 따라 행정에 복속시키지 않아 보인다.

3박4일 동안의 평양 방문기를 읽고 있노라면 지방행정의 수장이라기보다는 정치이해에 초탈한 민족주의자 같다는 느낌도 든다.

북녘에 대한 사랑과 연민, 존중이 묻어나는 현직 행정가의 글을 나는 지금껏 본 적이 없어서다.

몇 가지 아쉬움도 있다.

정당공천제 폐지에서 더 나아가 이장 직선제까지 갔다면...

그가 그렇게 지방자치를 망치는 공적 1호로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힘쓰는 반의 반이라도 기초자치단체 구성은 시.군.구가 아니라 읍.면.동이어야 함을 주창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 마을의 이장 하나도 주민이 뽑지 못하는 게 우리나라 지방자치의 현실이다. 비록 선거는 하지만 임명권자는 읍.면장이다. 어느 시.군도 이장이나 통장 선거를 완전한 주민자치로 한다는 조례를 만들어 놓은 곳이 없다. 강진군에서 하면 좋겠다.

주민의 압도적 다수가 선출했던 이장이 임명되지 못한 사례도 있고 이장이 읍.면장에 의해 파면되기도 하는 게 현실이다. 읍.면장을 군수가 임명하는데 이장을 주민이 뽑을 수 있겠는가? 

공천권의 실질 행사자인 지역 국회의원에게 아부하고 뇌물 바쳐야 하는 기초자치단체장의 울분 뿐 아니라 당장 황 군수의 이번 27일 출판기념회에 강진군의 읍.면장들이 군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즐거운 주말을 포기하고 행사장에서 보내야 한다는 현실을 직시해 주었으면 한다.

군수가 인사권 예산편성권 행정 명령권을 거머쥔 지역의 '황제'라는 지적이 꼭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에게 특강을 하실 때 다음부터는 조중동을 가리켜 한겨레나 경향과 똑 같이 "다 좋은 신문입니다. 거기에는 최고의 필자, 엄선된 기자, 엄선된 논설위원들이 모든 지식을 동원해 쓰는 고급지식과 정보가 있으니 이보다 더 좋은 교과서가 없습니다"고 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신문도 신문 나름이지 않은가. 현직군수로서 조중동을 비판할 수 없다면 신문에 대해 차라리 침묵하는 게 자신의 정치소신과도 맞아 보인다.

페루에 이어 한국 노동자가 세계 제2위의 장시간 노동국임도 알아 줬으면 한다. 노동조합의 파업이 야기하는 사회기회비용만을 따질 게 아니라 한국 노동자가 받는 연봉은 장시간 노동에 바친 피땀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우리나라의 노동조합이 87투쟁 이후에 정책능력을 키우기보다 싸움기술만 늘었다고 하는 비판을 받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사회안전망이 이토록 부실한 나라에서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모두를 잃는 것과 같다. 비정규직이 노예노동에 버금가는 현실이 있지 않은가.

선진국의 높은 시민의식에는 노동조합이나 파업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포함되어 있음도 황군수가 알아주었으면 한다.

강진군에서만 대한민국을 바꾸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농촌 들녘에서, 공장 작업대에서, 주부의 싱크대에서, 뒷간에서, 의사당에서 우리는 모두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을 것이다. 황 군수의 민주당 탈당처럼 소아를 내 놓고 대의를 쫒은다면 말이다.


강진군에서도 대한민국을 바꿀 수 있다

황주홍 지음, 전남대학교출판부(2010)


#황주홍#강진군#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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