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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고향 죽마고우들과의 정례모임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천안에 갔는데 친구들과의 약속시간인 

정오보다 꽤 이른 오전 10시도 안 되어 도착했습니다.

 

그건 선친의 산소에 성묘를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천안시청 앞에 위치한 백석동 공원묘지에 아버님을 모신 건 지난 25년 전입니다.

 

근데 이 권역이 모두 재개발 지역으로 고시되는 바람에

올 연말까지 선친의 산소도 이장(移葬)을 해야만 합니다.

고속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백석동 공원묘지 입구서 내렸습니다.

 

일단의 사람들이 명함을 주며 달려들었습니다.

산소 이장을 전문으로 하는 업자들이더군요.

 

"아는 사람에게 벌써 부탁했습니다!"

아버님 산소에 가기 전에 저를 키워주신 유모할머니의 산소부터 들렀습니다.

 

그러자 이미 이장을 마친 산소더군요.

순간 어찌나 마음이 놓이던지요!

 

생모를 너무도 일찍 여읜 저를 아버님께선 같은 동네서

혼자 사시는 할머니께 양육을 부탁하셨습니다.

남편과 자식들까지 일찍 잃어 박복하셨던 할머니는

저를 친손자, 아니 친 아들 이상의 극진한 사랑으로 키우셨지요.

 

저 또한 할머니를 생모 이상으로 알고 의지하며 살았고요.

그러나 할머니께선 너무도 일찍 세상을 버리셨습니다.

 

그 은공이 너무도 컸기에 저는 설날과 한식, 그리고 추석과 때론

어제처럼 아무 때나 무시로 산소를 찾아 절을 하고 술도 따르곤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께는 엄연히 따님과 외손자분들이 계십니다.

 

하여 산소 이장과 같은 첨예한 문제는 솔직히 제가 어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지요.

아무튼 천안시청에서 할머니 유족분들께 연락을 취하여

이장을 마친 현장을 보자니 적잖이 마음이 놓였습니다.

 

백석동 산소 이장이라는 화두는 벌써 수 년 전부터 거론된 얘기였거든요.

이제 5월이면 아버님의 산소도 이곳을 떠납니다.

 

그럼 앞으론 아버님과 유모 할머니의 산소에 성묘를 할 일도 없어지겠지요.

그러한 생각의 항구에 마음이 닿자 불현듯 무언가를 잃은 듯한 상실감이 엄습하더군요.

 

그래서 그랬을 겁니다.

이후 친구들을 만나 과음, 아니 폭음을 한 연유는요.

 

얼추 30년 가까이나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았던 할머니의 산소였습니다.

그건 저를 키워주신 은공을 잊지 못 하는, 아니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막중한 감사함에 따른 당연한 행동이었음은 물론입니다.

 

텅 빈 할머니의 산소 앞에서 잠시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 보았습니다.

잠시 모인 뭉게구름은 이내 할머니의 생전 모습으로 변하여 저에게 손짓하셨습니다.

 

"내 손자야, 그간 고마웠다! 네 고생도 이젠 끝이로구나."

또 주책없이 눈물이 날까 봐서 아버님 산소를 향하여 뛰기 시작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TV동화 행복한 세상에도 송고했습니다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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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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