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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권'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할 '인권'

 

한국은 예술 해서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사회다. 전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이름난 예술가 보다는 월 100만원조차 받지 못한 채 예술의 혼을 불사르고 있는 예술가들이 더 많다는 얘기다.

 

아울러 문화예술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이는 것 또한 우리 모습의 일부다. 책을 읽거나 영화와 연극을 보고 어쩌다 큰 맘 먹고 공연장을 찾거나 뮤지컬과 오페라를 관람하거나 시간을 내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정도에 그친다.

 

이마저도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하고 있다면 어느 정도 문화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축에 속한다.

 

헌데 문화예술에는 그러한 장르만 있는 것도 아니다. 전문예술가들이 창조한 작품을 나름 큰돈을 들여 감상하는 것만이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아니다. 인류가 살아온 모든 궤적이 담겨 있는 게 바로 문화다. 그래서 문화예술은 인류가 살아온, 살아가고 있는, 살아갈 세상과 사람에 대한 모든 표현이자 기록이며 역사다.

 

그래서 어느 노인의 사설조도 문화예술이고, 아이들이 그린 담벼락 벽화도 문화예술이며, '대포'집 노동자의 걸쭉한 노래도, 서툴게 써내려간 한 편의 시도, 수줍게 담아낸 영상도, 실력 있는 전업 예술가의 다양한 작품세계도 모두 우리가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예술이다.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 '자바르떼' 인천지부 이찬영 대표는 "문화예술이라고 해서 거창한 게 아니에요. 문화예술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고 향유할 수 있어야죠. 이것을 누구나 누리고 보장받아야 할 인권이라고 생각해요. '문화권'은 인권과 다름없어요. 인권이 차별받지 않아야 하듯 문화권 역시 차별받아선 안 될 소중한 권리예요"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문화권은 하나의 기본권입니다. 그런 배경을 토대로 지난 2006년 문화헌장이 탄생하기도 했지요. 문화예술은 누구나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아직까지도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화예술 향유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계층을 향한 노력이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라고 덧붙였다.

 

자바르떼(jobarte) 일하고(job)면서 문화예술로(art) 노는(play)집단 자바르떼. 자바르떼는 사회적 기업 중에서도 문화예술 분야로 사회적 기업을 인증을 받은 독특한 사회적 기업이다. 그들의 사업은 사람은 누구나 차별없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권에서 출발했다.
자바르떼(jobarte)일하고(job)면서 문화예술로(art) 노는(play)집단 자바르떼. 자바르떼는 사회적 기업 중에서도 문화예술 분야로 사회적 기업을 인증을 받은 독특한 사회적 기업이다. 그들의 사업은 사람은 누구나 차별없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기본권에서 출발했다. ⓒ 김갑봉

일자리 창출과 문화예술 소외 극복은 자바르떼의 원칙

 

여기 놀면서 일하는 기업이 있다. 그것도 낮은 곳에서 외국인노동자·이주여성·비정규직노동자·소외받는 아이들과 함께 평화와 인권을 노래하고 춤을 춘다. 때론 맘껏 웃기도 한껏 울기도 하면서 그들은 서로를 보듬어 안고 세상과 사람을 향해 소통의 메아리를 던지고 있다.

 

사회적 기업 '자바르떼(jobarte)'는 놀며 일하는 기업이다.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추기도 하고 그림을 그리고 연극을 하고 노래도 부르며 신명나는 우리 가락으로 흥을 돋우는 예술인들이 모여 만든 사회적 기업이다.

 

2008년 정부로부터 문화예술 분야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은 '자바르떼' 인천지부에는 현재 15명의 일하는 사람들이 연극·풍물·영상·노래·글쓰기 등 여러 문화예술 장르를 통해 대중을 만나고 있으며, 강습을 하기도 하고 무대공연을 선보인다.

 

"자바르떼는 잡(job)·아트(art)·플레이(play)의 합성어예요. 일자리와 예술 그리고 놀이가 만난 거죠. 가난한 예술가와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서민대중이 자바르떼가 펼치는 여러 문화예술 교육과 공연, 체험활동을 통해 문화예술과 놀이로 어우러지고 세상과 소통하는 곳이 바로 자바르떼예요."

 

자바르떼 이찬영 인천지부장은 "자바르떼는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제공하고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받고 있는 대중들에게 혜택을 주고자 설립했어요. 예술가에겐 일자리를 문화예술 소외 계층에겐 문화권을 보장하자는 게 자바르떼의 설립정신이자 지금도 변함없는 원칙이에요"라고 설명했다.

 

자바르떼의 모태가 된 것은 지금도 진행하고 있는 '신나는 문화학교'다. 2004년 당시 '신나는 문화학교'를 시작할 때만 해도 걱정이 많았다.

 

이찬영 지부장은 "97년 IMF경제위기로 대량 실업사태가 발생했죠. 2004년 당시에도 실업문제가 해결되진 않았습니다. 사회 양극화는 심화됐고, 저소득층 자녀 또한 늘어났어요. 그처럼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에서 문화예술 운운하니 말들이 많았어요"라고 당시를 들려줬다.

 

지금 자바르떼가 있기까지 모태 역할을 한 '신나는 문화학교'는 예술인들의 헌신성과 자발성으로 이 사회 낮은 곳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지역아동센터로, 자활기관으로, 비정규직이 있는 곳으로, 이주여성과 외국인노동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문화예술 교육 사업을 벌였다. 그리고 교육 사업은 지금도 자바르떼의 가장 소중한 사업 영역 중 하나로 꼽힌다.

 

이 지부장은 "문화예술이 기본권이라고 했을 때 향유도 중요하지만 직접 참여할 수 있어야 해요. 그래서 교육 사업이 중요합니다. 자신이 직접 문화예술을 창조할 수 있는 일에 참여할 때 사람은 더 폭넓게 문화권을 누릴 수 있어요. 마찬가지로 예술인들 역시 교육 사업에 임할 때 문화예술의 재 생산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게 돼 더욱 값진 보람을 느낍니다"라고 말했다.

 

사회적 기업은 역시 '민주주의'가 중요

 

자바르떼 이찬영 사회적 기업 '자바르떼(jobarte)' 인천지부 이찬영 지부장. 예술해서는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서 그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밥 벌어 먹고 살고, 일하는 사람들에겐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서.
자바르떼 이찬영사회적 기업 '자바르떼(jobarte)' 인천지부 이찬영 지부장. 예술해서는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든 현실에서 그는 동료 예술가들과 함께 사회적 기업을 만들었다. 예술가들이 밥 벌어 먹고 살고, 일하는 사람들에겐 문화예술 향유를 위해서. ⓒ 김갑봉

지역아동센터와 자활기관, 외국인노동자를 대상으로 한 문화예술 교육 사업 '신나는 문화학교'와 찾아가는 공연활동 '문화원정대'는 상당한 성과를 발휘했다. 이 모든 배경에는 15명에 이르는 예술인들의 헌신성이 무엇보다 크게 작용했다.

 

반신반의 했던 각 단체의 대표자나 기관장이 먼저 이들이 펼친 '신나는 문화학교'와 '문화원정대'의 활동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찬영 지부장은 "자활기관의 경우 인생을 포기하다시피한 사람들에게 변화가 생겼어요. 일하는 데 몰입하게 되고 무엇보다 삶의 즐거움을 느끼게 된 거죠. 삶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겁니다. 지역아동센터의 경우 아이들의 변화가 더 빨라요. 집중도·몰입도·자존감·자신감 모두 좋아지는데 어른들보다 더 두드러지더라고요. 우리가 예술인이라고 하지만 우리도 문화예술이 가져다 준 그 변화에 놀라고, 감사했습니다"라고 말했다.

 

낮은 곳을 찾아가 길어 올린 이와 같은 성과들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자활기관이나 지역아동센터 등의 기관에 정부의 재정지원이 줄어든 것. 그렇다고 사업을 그만 둘 수는 없었다.

 

이 지부장은 "교사로 임하고 있던 예술인들과 토론한 끝에 어렵지만 교육 사업을 계속 이어가기로 뜻을 모았어요. 정말 예술인들의 헌신성이 없었다면 하지 못했을 거예요. 하지만 그것도 1년을 버티기 힘들더라고요"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래서 이들은 2008년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을 결정했다. 사회적 기업을 통해 예술인들은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고, 그동안 전개한 사업들을 지속적으로 진행해 소외 계층들이 문화예술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

 

이찬영 지부장은 "사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했지만 1년 넘게 헤맸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 헤맸다고 봐요.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다 보니 수익을 창출해야 해요. 사업의 영역도 예전 교육 사업에서 문화예술 공연 기획까지 범위가 넓어졌는데 결국 문제는 '사람'이었어요"라고 말했다.

 

자바르떼가 초창기 헤맨 것은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기 전 예술인들의 관계가 수평적인 관계였는데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하다보니 어느새 7년을 동고동락한 조직 안에 수직적인 관계가 자리 잡게 된 것. 동시에 예술인들의 자발성과 헌신성이 떨어진 것도 문제였다.

 

이에 대해 이 지부장은 "일차적 책임은 저를 비롯한 당시 사회적 기업 전환을 결정한 사람들에게 있어요.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한다고 했을 때 기간이 아무리 촉박하더라도 15명의 예술인들이 모두 참여해 상향식 의사결정구조를 갖췄어야 했어요. 역시 문제는 민주주의였던 거죠. 지금도 뼈저리게 반성하고 있는 부분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많이 찾아가 빌었죠. 때론 읍소도 하고 협박도 하고(웃음), 찐하게 술자리도 가지면서 1년 넘게 헤맨 겁니다. 그래서 지금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어요. 소통, 민주주의 정말 중요해요. 우리가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켜가기 위해서도 그렇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사회적 기업으로 전환 뒤 '자바르떼'는 다시 그들이 정한 원칙 즉, 모든 이들이 문화예술로부터 소외받으면 안 된다는 '문화기본권'을 위해 다시 낮은 곳을 찾아다니며 풍물을 울리고, 함께 노래를 부르며, 같이 영상을 담기도 하고, 무대공연을 올리고 있다. 그들은 분명 이 시대의 놀며 일하는 진정한 '광대'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부평신문(www.bpnews.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기업#사회적 경제#자바르떼(JOBARTE)#문화예술#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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