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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에게 박근혜는 적일까, 동지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이명박은 적일까, 동지일까?

적어도 '아름다운 동행'을 경선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운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 때만 해도 두 사람의 관계는 '경쟁자'였지 '적'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후로 두 사람 사이에는 '아름다운 승복'과 '불편한 동행'이 있었을 뿐이다.

그 '불편한 동행'은 2008년 총선을 앞두고 단행된 '친박' 인사들에 대한 '공천 학살'로 '한 지붕 두 가족'의 '불편한 동거'로 바뀌었고, 지난해 정운찬 총리 기용에 이은 '세종시 전쟁'을 계기로 사생결단의 '적대적 관계'로 바뀌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이다.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발언을 되짚어보면 그렇다.

이동관 "국민투표의 '국'자도 얘기한 적 없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근혜는 적일까, 동지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이명박은 적일까, 동지일까? 사진은 지난 2007년 1월 한나라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이명박 대통령에게 박근혜는 적일까, 동지일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이명박은 적일까, 동지일까? 사진은 지난 2007년 1월 한나라당 신년인사회에 참석했을 때의 모습. ⓒ 오마이뉴스 이종호

때로는 나무보다 멀리 떨어져 숲을 보는 지혜가 필요하다. 역사의 변곡점을 되짚어보면 '실언'이 나중에 '계산된 발언'이었거나 세상을 뒤흔든 대사건의 전주곡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떤 사안 자체가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폭발성이 클 때는 일부러 실언을 가장해 흘리는 경우도 있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지난달 28일 청와대 기자들과 산행을 하면서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문제를 두고 이명박 대통령의 '중대 결단'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 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청와대 핵심 관계자'를 자처해온 '핵관' 수석의 말인지라, 모든 언론이 "국민투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는 투로 기사화했다.

그런데 한 지방신문이 이 수석이 같은 날 '중대 결단' 발언 말고도 'TK(대구경북) X들'이라고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고 보도하면서 파문이 더 확산되었다. 그러자 'TK 비하' 발언을 극구 부인하고 나선 이 수석은 '중대 결단' 발언에 대해서도 "민주적 토론을 거쳐 결론이 나면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며 이렇게 강조했다.

"국민투표의 '국'자도 얘기한 적 없다."

"○□의 '○'자도 얘기한 적 없다"는 말은 흔히 가장 강도가 센 부정의 표현방식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런 초강도의 부정도 나중에는 거짓으로 드러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서석재 전 총무차장관의 '전직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설' 폭로 때도 그랬다.

서석재의 '4000억 비자금설' 실언과 이동관의 실언

김영삼 정부 시절인 95년 8월 1일 당시 서석재 총무처장관은 여름휴가를 앞두고 기자들과의 술자리에서 '비보도'를 전제로, '전직 대통령 4000억원 비자금설'을 흘렸다. 그러나 일부 언론 보도로 파문이 커지자 서 장관은 3일 서둘러 자신의 말뜻이 잘못 전달됐다는 해명 회견을 갖고 진화에 나섰다. 당시의 문답이다.

- 발언의 전말은 무엇인가.
"지난 1일 저녁 몇몇 기자들과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취중에 가볍게 얘기한 것이 와전됐다."

- 전직 대통령 중 한 사람은 누굴 지칭하나.
"시중의 얘기임을 전제로 들은 대로 '과거 권력주변의 상당한 실력자'가 4천억 원의 처리방법을 놓고 고민한다더라는 말만 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은 이름 한자 나온 적이 없다."

그때도 YS의 오랜 측근인 서 장관의 단순 실언인지 계산된 발언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많았다. 그러나 전직 대통령의 4천억 비자금설이 사실로 확정되는 데는 시간이 별로 걸리지 않았다. 박계동 의원이 그 해 10월 1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비자금 관리자와 계좌번호 등 구체적인 물증까지 제시하며 노태우 비자금 의혹을 폭로함에 따라 전직 대통령 비자금이라는 판도라의 상자가 처음 열린 것이다.

되짚어보면 95년 당시 임기 중반을 맞은 YS는 위기를 맞고 있었다. 취임 초 압도적인 지지를 보였던 국민은 6·27 지방선거에서 집권당인 민자당에 참패를 안겼다. 개혁이 기대에 못 미친 탓과 미숙한 국정운영 그리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 삼풍백화점 붕괴 같은 악재도 한 원인이었다. 또한 92년 대선 패배 후 은퇴를 선언했던 평생의 라이벌 DJ(김대중)가 '새정치 국민회의'를 창당하며 정계복귀를 기정사실화한 것도 YS로서는 큰 부담이었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도가 떨어지자 민정계는 인기 없는 여당에 남아 있다가 공멸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 또 96년 총선을 앞두고 분위기 쇄신을 위해 공천 물갈이를 할 경우, 민정계가 0순위가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컸다. 위기의식은 탈당과 독자정당 모색으로 이어졌다. 그럴 때 터져 나온 것이 서석재의 '전직 대통령 4천억 비자금설'이었다. 민정계에 대해 '까불지 마라'는 경고였던 셈이다.

물론 그 뒤로도 우여곡절은 있었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건 '결과'로 보면, YS는 5·18특별법을 만들어 전두환-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감옥에 보냈다.

'희한한' 정운찬, 총리 지명 받자마자 '세종시 수정' 발언

이동관 수석의 '중대 결단' 및 'TK 비하' 발언이 완고하게 세종시 원안을 고수하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경고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 수석이 설령 'TK 놈들'이라는 발언을 하지 않았더라도 '첨단의료복합단지 특혜' 발언만으로도 그는 중대한 실언을 했다.

그러나 MB는 그 닷새 후 대구를 방문해 "왜 (TK는) 만날 피해의식만 갖고 손해 본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희한하다. 도저히 이해가 안 간다"고 했다. 이 수석이 먼저 여론의 뭇매를 맞으며 닦아놓은 길을 MB가 걸어가는 그런 '희한한' 모양새다. '핵관 수석'과 대통령의 교감이 없으면 어려운 일이다.

되짚어보면 선진당의 대표였던 충남 공주 출신의 심대평 의원을 총리후보로 지명하려다가 선진당의 반대로 무산되자 '희한하게도' 다시 공주 출신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을 총리후보로 지명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다. MB가 왜 그토록 세종시 지역(충남 공주-연기) 출신 총리후보에 연연했는지를. 집권 2년차 총리 지명의 1차적 기준이 공주-연기 주민과 나아가 대전-충남 주민 설득에 있었음을.

지난해 9월 초 총리후보로 지명된 정운찬 교수가 지명 소식을 듣자마자 기자들에게 뜬금없이 "세종시 계획 수정 필요" 발언을 한 것은 더 '희한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서울대 총장이었던 그가 노무현 정부 시절에 교육(3불)정책과 부동산정책을 비판한 적은 있지만, 세종시 관련 공개 발언은 고작 이것뿐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행정중심복합도시를 내세워 지역을 고루 발전시킨다 하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행정 불균형 아닌 교육 불균형을 해소하는 것이다."(2006년 11월8일 서울 강남초등학교 특강)

"정부의 부동산정책이 왔다 갔다 한 데다 행정중심복합도시·신도시 등 개발정책 때문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게 됐다."(2006년 11월28일 미래에셋증권 투자포럼)

'세종시 방탄' 정운찬 카드의 본심은 '박근혜 견제용'

 '세종시 계획 수정' 발언을 되짚어보면 정 총리 카드는 겉으로는 '세종시 방탄용'이었지만 본심은 '박근혜 견제용'이었다. 정운찬 촐리(왼쪽)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세종시 계획 수정' 발언을 되짚어보면 정 총리 카드는 겉으로는 '세종시 방탄용'이었지만 본심은 '박근혜 견제용'이었다. 정운찬 촐리(왼쪽)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 오마이뉴스 유성호·권우성

그래서 일부에서는 그의 느닷없는 '세종시 계획 수정' 발언을 맥락 없이 내뱉은 '실언'쯤으로 간주했다. 그러나 되짚어보면 정 총리 카드는 겉으로는 '세종시 방탄용'이었지만 본심은 '박근혜 견제용'이었다. 그때도 이 수석은 개각 발표 하루 전에 '청와대 핵심 관계자'라는 익명으로 기자들에게 본심을 드러내는 실언을 했다.

"오늘 현재 이 시점의 (총리후보의) 콘셉트는 화합과 탕평도 변함없는 한 축이지만, 변화와 개혁의 이미지랄까, 차기 대권주자군이 포함될 수 있다는 것도 고려대상 중 하나다."

여의도가 발칵 뒤집힌 것은 두 말할 나위 없다. 이 때문에 이 수석은 이날 오후 기자실에 다시 나타나 "대통령에게 심한 질책을 받았다"면서 오전 브리핑 내용을 부인하는 소동을 벌였다. 차기 대권주자 얘기는 원론적으로 얘기한 것인데 의미가 확대 전달되었다는 해명이었다. 그러나 이미 본색은 드러났고, 엎질러진 물이었다.

여권의 역학구도가 현재대로 유지될 경우 권력의 속성상 임기말로 갈수록 '미래 권력'(박근혜) 쏠림 현상과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은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당내에 '박근혜 대항마'가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MB에게는 잠재적 대권주자를 영입해 '차기 관리'에 들어갈 필요성이 커진 상황이었다. 김영삼 대통령도 이홍구·이수성 서울대 교수를 총리로 기용해 차기 대권 경쟁구도를 만든 바 있다.

물론 역대 정부에서 보듯, '차기 관리'가 '현재 권력'이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레임덕을 감수하면서 미래 권력에 힘이 쏠리도록 아무런 관리도 안 하는 현재 권력은 없다. 결국, 대통령이든 정치인이든 어떤 행위자가 정책 의도를 명확히 밝히지 않거나, 설령 의도를 밝혀도 믿기지 않을 때는 '결과론'으로 의도를 파악하는 수밖에 없다.

안상수, 정운찬, 정몽준, 이명박의 의도와 결과는?

먼저, 정운찬 총리를 보자. 단기필마인 정 총리는, 박 대표를 만나 설득하겠다는 기세로 세종시 수정안 칼춤을 추더니 이제는 제풀에 지쳐 떨어져 나간 모습이다. 그는 세종시 수정안 발표 이후 매주 주말마다 세종시를 찾아가 주민을 설득하겠다고 기염을 토했지만, 요즘 그가 세종시를 방문했다는 소식은 찾아볼 수 없다.

정 총리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은 또 다른 '정도령'을 보자.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2월 한 달 내내 초등학교 동창생(박근혜)을 공격하는 칼춤을 추더니 차기 대권후보로서 두 자릿수 지지율에 안착했다. 지금은 당론 변경 및 국회 처리를 앞두고 잠시 숨을 고르는 모양새다.

정 대표는 12일 한국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 참석해서는 "세종시 문제 해결을 위해 중진협의체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논의를 하고 있다"면서 세종시 출구 전략과 관련, "논의 자체를 유보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세종시 문제의 결론을 유보해 6.2지방선거 이후로 미룰 수 있다는 얘기다.

집권당의 원내사령탑인 안상수 원내대표는 입장이 180도 바뀌었다. 그는 정운찬 총리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세종시 수정' 소신을 밝힐 때만 해도 "총리후보자의 세종시 수정 입장은 개인적 소신으로 정 후보자가 대통령의 뜻을 어길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 대통령은 그동안 몇 차례에 걸쳐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혔다"며 "총리는 대통령의 보좌기능을 하는 직책으로, 대통령의 뜻과 다른 행정을 펼칠 수 없다"고까지 했다.

그런 그가 지금은 세종시 당론 변경과 수정안 관철에 앞장서고 있다. 그는 정 대표가 세종시 결론 유보 가능성을 시사하는 발언을 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14일 기자간담회에서 "세종시 출구전략이나 논의 유보를 위해 세종시 중진협의체를 만든 것은 결코 아니다"면서 중진협의체가 세종시 해법을 반드시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조차도 대표와 원내대표 중에서 누구 말에 진정성이 있는지 헷갈릴 정도다.

마지막으로 이명박 대통령을 보자. 그는 여전히 '국민투표 카드'를 버리지 않은 채 '세종시 전쟁'을 독려하고 있다. MB는 이 수석의 '실언' 이틀 뒤에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현재 (세종시) 국민투표는 검토하고 있지 않다. 당에 위임한 상태인 만큼 당이 치열하게 논의해 결론을 내는 것이 맞고, 책임정당으로 그 정도는 해야 한다."

10일 대전충남을 방문해서는 "정부안대로 되면 대전을 중심으로 대덕과 세종시, 오송을 잇는 과학벨트가 생겨 국가발전에 중추적 역할을 할 것"이라며 "정치적 논리를 적용해서는 안된다. 오로지 지역발전과 국가발전이라는 국가백년대계를 놓고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정치 논리를 떠난 백년대계'임을 강조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당에서 책임지고 아퀴를 지으라는 얘기처럼 들린다. '실언'이 아니라면 두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하나는, 당이 알아서 '세종시 블랙홀'로부터의 '출구전략'을 마련하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그러면 마지못해 따라가겠다는 투다. 다른 하나는, 박근혜와 사생결단을 해라는 주문으로 들린다. 되짚어보면, 세종시 수정안에서 '국가 백년대계'의 진정성이 느껴지기보다는 '박근혜 죽이기 카드'로 비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종시#이명박#박근혜#정몽준#정운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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