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소장과 다른 증언 쏟아내는 곽영욱... '강압수사' 논란까지 거론
한명숙 전 총리 재판이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오락가락' 진술로 새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곽 전 사장은 11일 내내 진행된 공판에서 검찰 공소장과 다른 증언들을 쏟아내고 공판 막바지에는 '강압수사' 논란까지 거론해 검찰을 당혹케 했다.
곽 전 사장은 먼저 "자신이 2만 달러, 3만 달러의 돈 봉투를 한 전 총리에게 건넸다"는 요지의 공소 사실을 뒤집었다.(자세한 내용은 3신 참조) 그는 이날 공판에서 "돈 봉투를 총리공관 오찬장의 의자 위에 놓고 나왔다"며 "한 전 총리가 돈을 두고 나오는 것을 봤는지 못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곽 전 사장의 진술로 최악의 경우 '배달 사고'가 있었을 개연성이 생겼지만, 검찰은 "돈을 두고 나왔다고 하는 게 진술을 바꾼 것은 아니다"라며 문제없다는 태도다.
하지만 이날 공판에서 검찰의 주장과 다른 취지의 진술은 이뿐이 아니었다. 곽 전 사장은 또 200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한 전 총리에게 1000만 원을 전달했다는 검찰 주장도 부인했다.
그는 "대한통운 관리부장과 함께 선거 사무실에 갔는데 손님이 꽉 차있어 문만 열어보고 그냥 돌아왔다"며 "사람이 많이 있는 데서 돈을 줄 수 없었다, 진실을 말하라니 진실 쪽으로 이야기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중에 한 전 총리에게 그 돈을 전달했는지 회사에 반납했는지 개인적으로 썼는지 기억나지 않는다"며 "한 전 총리는 단 둘이 식사할 때도 돈을 잘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오찬 자리에서 민주당 정세균(당시 산자부장관) 대표에게 '곽영욱을 잘 부탁한다'고 했다는 공소장 내용도 부인했다.
그는 "'곽영욱을 부탁한다'는 게 아니라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잘 부탁한다'고 한 것"이라며 "그게 한 전 총리가 모두에게 인사로 그렇게 말한 것인지, 당으로 돌아가는 정세균 장관에게 당에 돌아가서도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한 것인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내가 듣기에 (한 전 총리의 말은) 당시 현직 장관이던 정 대표에게 '곽영욱을 잘 봐달라'고 한 것으로 생각해 기분이 좋았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진술도 변호인단의 반대심문에서 또 뒤집혔다. 변호인단의 백승헌 변호사가 해당 진술이 담긴 검찰 조서를 제시하며 "왜 검찰 조사에서의 진술 내용과 오늘 내용이 다르냐"고 묻자, 그는 "저를 잘 봐달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느낌이 있었다, 검찰에서의 진술이 맞는 것 같다"고 종전의 자신의 진술을 바꿨다.
이에 재판장이 "검찰에서의 진술과 오늘의 진술 중 어떤 것이 사실과 같냐"고 다시 확인했을 때도 곽 전 사장은 "검찰에서의 진술이 맞다"고 말했다.
한 전 총리를 만나 "놀고 있으니 답답하다, 도와달라"고 했다는 공소장 내용도 부인했다. 곽 전 사장은 "그 말은 내가 한 게 아니라 한 전 총리가 거꾸로 물어본 것 같다"며 "그 말에 대해 나는 '안사람이 일을 해야 건강해 진다고 한다'고 답했던 것 같다"고 대답했다.
진술 번복은 계속 이어졌다. 곽 전 사장은 검찰이 공소장에서 "석탄공사 사장으로 임명받지 못했는데 그 즈음 한명숙으로부터 다른 공기업 사장으로 가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그 취지에 반하는 진술을 했다.
신문에 나선 이태관 검사가 "석탄공사 사장 임명을 받지 못한 후 한 전 총리로부터 '기다리면 더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거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느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좋은 자리 간다'가 아니라 '그냥 계시면 될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다"고 답했다.
"그게 무슨 뜻이었냐"는 재판장의 추가 질문에는 "좋은 자리로 갈 수 잇다는 이야기인지, 나이도 많고 하니 그냥 그대로 지내도 괜찮다는 뜻인지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한명숙 총리와 함께 골프매장 방문해 구입"
단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고가의 골프채를 선물했다는 검찰의 주장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검찰은 이날 이날 공판에서 한명숙 전 총리와 곽영욱 전 사장과의 친분 관계를 드러내기 위해 두 사람이 함께 골프용품 가게를 방문해 골프채 세트를 구입한 사실을 집중 거론했다.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여성부 장관 시절 골프채와 가방 세트 등을 선물한 경위에 대해 "생각해보니, '장관을 그만두고 쉴 때 골프나 배우라'고 드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곽 전 사장은 특히 "한 전 총리와 함께 골프매장에 갔냐"는 검찰 질문에 "그렇긴 하지만 한 전 총리가 선뜻 가자고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당시 골프샾의 여성 전무가 한 전 총리를 '사모님'이라고 불러 혼을 내고 골프매장 사장까지 불러냈다"며 "'높은 분을 사모님이라 부르는 게 어디 있냐'고 지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기도 했다.
검찰은 이에 대해 대한통운 서울지사에서 발행된 10만원권 수표 100장의 인출내역이 담긴 금융기관의 전표와 골프샾 매장의 상품 판매 내역 등을 들며 곽 전 사장의 진술에 신빙성을 더하려 애썼다. 검찰이 공개한 상품 판매 내역 옆에는 '한명숙'이라고 기재돼 있었다.
곽 전 사장은 "(선물의)가격을 600만 원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이언만 생각해서 그런 것 같다"며 "(가방세트 등)전체를 다 합하면 980만 원 정도 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한 전 총리 측 변호인단은 골프채 수수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검찰은 또 "곽 전 사장이 한 전 총리에게 '여성단체 운영비', '선거자금' 등의 명목으로 돈을 준 적이 있지 않냐"며 둘 간의 금품 수수 관계를 캐기도 했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에게 여성단체 운영비로 10만원권 수표로 1천만 원이 주기도 했지만 장관이 된 후에는 어떻게 받아들이지 몰라 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불거진 강압수사 논란 "곽 전 사장 죽을 것 같았다"
이날 공판 막바지에는 검찰이 곽 전 사장을 조사하면서 심야조사를 하는 등 '강압수사' 논란도 불거졌다. 곽 전 사장은 지난 연말 구속된 상태로 검찰 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한 전 총리에게 5만달러 공여 사실을 말하게 된 과정을 설명하면서 "검찰 조사를 밤 12시까지 받는데 이후에는 검사 요청으로 검사실에서 면담을 했다"며 "새벽 1시나 2시까지 변호사 없이 검사와 면담을 하면서 정치인들 관련 이야기를 했다"고 밝혔다.
이어 "새벽까지 면담을 하고 검찰청 구치감에서 기다리다 구치소에 돌아오면 새벽 3시가 될 때도 몇 차례 있었다"며 "구치소 기상시간이 새벽 5시쯤인데 심장이 조여오는 통에 잠을 잘 수 없어 너무 힘들었다, 교도관들이 저사람 뒷문으로 나간다(죽는다)고들 했다"고 토로했다.
곽 전 사장은 또 "검찰 조사에서 검사가 '전주고 나온 사람들(에 대해) 다 불어라'고 했다"며 "죄 지은 채 검사 앞에 서니 너무 무서웠다, 죽고 싶었다"고 말했다.
직접 곽 전 사장을 조사한 이태관 검사는 강압수사 의혹을 부인했다. 이 검사는 "조사가 늦어진 이유에 대해 설명하겠다"며 "곽 전 사장이 몸이 아프다고 하면 가족들을 검사 집무실에서 면회시키거나 휴식을 취하도록 했고 이로 인해 조사가 안되는 경우도 있었다, 또 몸이 아프다면 구치소에서 강제로 검찰청으로 데려온 적도 없었다"고 반박했다.
이 검사는 또 '새벽에 구치소로 돌아갔다'는 곽 전 사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구치소 출청 기록을 제출하겠다"고 부인했다.
그러나 곽 전 사장은 변호인단의 반대심문에서도 "검찰 조사를 계속 받으면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해 죽을 것 같았다, 무서웠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변호인단이 "무서웠기 때문에 수사기관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한 진술을 여러 번 바꾸었냐"고 묻자, 곽 전 사장은 "대한통운 직원들이 저한테 달러를 줬다고 검찰에 말했고 저도 처음에 한 전 총리에게 3만 달러를 줬다고 한 바 있어 추궁을 계속당했기 때문에 진술을 바꿨다"며 "수사과정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껴 진술을 바꾼 것이다, 사실대로 말한 것이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은 총리 공관의 도면 등을 제시하며 문제의 오찬 상황을 물었으나 곽 전 사장의 답변은 시원치 못했다. 곽 전 사장은 총리 공관 구조를 그린 도면을 보고도 오찬 장소를 정확히 짚어내지 못했고 오찬 당시 참가자 및 수행원들의 동선을 그린 도면을 보고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변호인단이 오찬 당일 미 공군을 방문한 한 전 총리의 사진을 제시하며 "한 전 총리가 당시 입은 옷이 치마인지, 바지인지, 어떤 색인지 기억나지 않냐"고 물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곽 전 사장은 "(한 전 총리가) 근무일인 것은 알겠는데 치마인지, 바지인지는 모르겠다"며 "주머니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수행원이 핸드백 등을 들고 있었는지", "한 전 총리가 겨울철 외투를 입고 있었는지" 등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변도 "기억나지 않는다"가 전부였다.
13시간 계속된 공판... 한 전 총리 변호인 "이제 시작이니 길게 보자"
이날 공판은 오전 10시 30분에 시작돼 오후 11 시 30분까지 13시간 동안 계속됐다. 곽 전 사장이 이번 사건의 핵심 증인이라 신문 사항이 많았고 진술이 오락가락 하는 바람에 같은 질문이 반복되거나 진술 내용을 검찰과 변호인, 재판부가 일일이 확인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던 탓이다.
결국 장시간의 공판에도 곽 전 사장에 대한 변호인 측 신문을 끝마치지 못해 재판부는 12일 오전 10시 다시 공판을 열어 증인 신문을 계속하기로 했다.
공판이 모두 끝나고 한 전 총리는 지지자들에게 "수고하셨다"는 말을 남기고 법원을 떠났으며, 곽 전 사장은 구급차를 타고 입원 중인 병원으로 돌아갔다. 변호인단의 백승헌 변호사는 취재진에게 "이제 시작이니 길게 보자"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