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레낭(보리수나무) 우거진 숲길을 걷는 재미는 쏠쏠했다. 하지만 볼레 열매는 찾아 볼 수 없었다. 지나가는 올레꾼들이 보리수를 다 따 먹은 것이다.
황개천 지나 배고픈 다리 쉼터 사랑
박수기정 올레의 내리막길을 빠져 나오자 황개천 입구. 사람도 배가 고프면 배가 찰싹 들어붙듯이 하천을 건너는 길도 역시 배가 고픈지 아래로 내려앉았다. 제주사람들은 이런 곳은 '세월' 이라고도 부르고 '배고픈 다리'라고 부른다.
1시간 정도를 걸었더니 입안이 텁텁했다. 그 즈음 만난 올레꾼 쉼터, 의자 서너 개가 놓인 쉼터에서 보온 물통의 뜨거운 물로 커피를 준비하는데, 나 홀로 올레꾼을 만났다. 나 홀로 올레꾼과 함께 마시는 커피는 노천카페라고나 할까. 낯선 이와 마시는 커피 한잔의 여유가 바로 진한 행복감을 가져다준다. 길을 걷다 만나는 이방인, 이들 모두가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인심이 바로 제주 올레 사랑이다.
'A' 코스 진모르 동산은 고향집 언덕
제주올레 9코스는 어느 올레보다 짧은 코스로 2시간 30분 정도를 걸을 수 있는 시간이다. 때문에 시간에 쫓기는 사람들이 부담 없이 걸을 수 있는 길이 바로 제주올레 9코스다. 화순선사유적지 부근에서 A코스와 B코스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A코스를 택했다.
진모르 동산과 안덕계곡을 경유해서 걷고 싶어서였다. 서귀포 대평리 바다와 화순, 산방산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진모르 동산 언덕길은 고향 뒷동산 같았다. 밋밋하지만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언덕, 보리수나무와 잔디가 깔려 있다.
어미소 울음소리에 봄이 피어나다
가축(소)을 키우는 축사에서는 가축의 분비물 냄새가 났다. 어미소 울음소리가 진모르 동산에 들려왔다. '옛이야기 지줄 대는 실개천이 휘돌아 나가고, 얼룩빼기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이라는 이동원의 '향수'라는 노래가 생각났다.
축사의 가축냄새는 바람을 타고 진모르 동산에 피어올랐다. 그 바람은 바로 봄바람이었다. '파란 하늘빛이 그리워 함부로 쏜 화살을 찾으러 풀섶 이슬에 함추름 휘적시던 곳' 그 동산에 봄이 피어났다. 바람을 타고 노란 유채꽃이 피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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