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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페뎀 9호 : 번역출판>(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9)
 ├ 글 : 강주헌, 고명섭, 권남희, 김선희, 김정민, 김진준, 박정선, 박중서,
 │      백원근, 안진환, 양억관, 오철우, 이규원, 이재형, 이종인, 임희근,
 │      정창, 조영학, 최경옥, 황보석, 쓰노 가이타로
 └ 책값 : 12000원

우리 말로 옮겨진 책을 읽으면서 저는 제 깜냥껏 마음속으로 '줄거리만 읽으'려고 합니다. 문학책을 읽든 인문책을 읽든 만화책을 읽든 매한가지입니다. 옮겨진 말로 '글쓴이 생각'을 읽기보다, 옮겨진 말에 감춰지거나 못 다 실린 느낌과 넋을 곱씹어 보고자 합니다.

한자 지식이 아닌 한문을 처음 배우던 중학교 1학년 때에는 한문 번역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3학년부터 영어 동화책과 손쉬운 한문책을 함께 읽으면서 제 깜냥껏 번역을 해 보았습니다. 그무렵에는 바깥말 솜씨를 키우려는 마음이었지, '번역이 믿을 수 없어' 이렇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으며 무언가 알쏭달쏭하거나 잘 알 수 없던 이야기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으면서 '번역이 잘못될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저 '나라면 이러한 이야기를 어떻게 부대끼거나 살피면서 말로 나타낼까' 하고 생각했습니다. 어렴풋한 생각이었지만, 한문책을 읽을 때에는 한문에 적힌 말마디를 한글로 옮겨 놓는 일은 번역이 아니라고 느꼈습니다. 영어책을 읽을 때에는 영어 낱말을 한글로 옮겨 놓으면 번역일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오늘날 우리 나라에는 일본책이 아주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와 맞물려 영어권 책이 대단히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요즈음 우리 옆지기가 바느질에 푹 빠져 헌책방에서 갖가지 바느질 책을 사서 보고 있는데, 어제 찾아간 헌책방에서 장만한 책을 읽던 옆지기가 갑자기 웃으면서 저를 부르더니 '속스'를 좀 보라고 하더군요. 뭔가 하고 들여다보니, '양말'을 '속스'라 적어 놓았더군요. 바느질이나 뜨개질 다루는 책은 지난날 일본책을 많이 베꼈고, 통째로 도둑질하기까지 했습니다. ㄱ출판사처럼 이름난 곳에서 펴낸 '아동백과사전(또는 과학백과사전)'은 아예 백과사전을 송두리째 도둑질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런 '책 도둑질'이란 꽤 예전부터 이루어져 왔는데, 저로서는 헌책방을 다니지 않았다면 이런 모습을 알 턱이 없었습니다.

2000년대에 헌책방을 다니며 '어린이책 자료를 찾던 때'에 처음으로 알아차렸습니다. 헌책방에 있는 좋은 일본책을 사서 보는데 어딘가 참 낯익다 싶었더니, 다름아닌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에 학교 도서실에서 보던 책들이더군요. 그래, '속스'란 무엇인가 하면, 일본사람은 제 나라 말로 이야기를 하기보다 영어 쓰기를 대단히 즐겨 하고 있는데, '양말'이라는 말조차 영어로 'socks'를 그대로 쓰고 있던 셈이며, 이렇게 '속스'로 적힌 일본책을 몰래 도둑질하던 한국 책마을 일꾼은 '속스'가 마치 어떤 남다른 옷뜨기인 줄 알고 그대로 적바림해 놓은 셈이었습니다.

 바느질 책에 나오는 '속스'. 이런 말마디를 보면서도 우리가 '엉터리 도둑질 책 문화' 때문에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바느질 책에 나오는 '속스'. 이런 말마디를 보면서도 우리가 '엉터리 도둑질 책 문화' 때문에 우리 말과 글이 얼마나 망가지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 최종규

1950년대에 나온 세익스피어 번역책 가운데에는 '하-므렛'이라고 적은 책이 있습니다. '하-므렛'이 무엇이냐 하면 '햄릿'입니다. 일본은 'Hamlet'을 소리값대로 말하기 어려워 '하-므렛'처럼 말하는데, 1950년대 어느 번역책은 아예 '-' 부호까지 넣으면서 일본책을 베꼈음을 보여준 셈이라 하겠습니다.

.. 진짜 문제는 부실 번역이다. 인문사회과학 서적으로 한정해 보면 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따위로 된 고전적인 저작들이 부실하게 번역되면, 그건 한 사회의 지적 역량을 갉아먹는 일이 된다. 번역서로 공부를 해 본 사람이라면, 국내에 나와 있는 인문사회 고전들이 얼마나 엉망으로 번역돼 있는지 절감할 것이다(72쪽/고명섭) … 인문서 시장에는 고만고만한 입문서가 거의 포화 상태를 이루고 있다. '원 소스 멀티 유즈'가 바로 이를 말한다. 반면 전문서들은 전문서라는 고상한 이유를 들어 대중을 외면한다. 수준의 양극화는 독자들에게서 선택의 다양성을 빼았는다(82쪽/김정민) ..

지난날 우리 나라에는 갖가지 해적판 책이 참 많았습니다. 우리 나라도에도 저작권법이 있고 세계저작권협정을 맺은 나라입니다만, 1999년 12월 31일까지 해적판 책은 그야말로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문화예술 책을 많이 낸다고 하는 ㅇ출판사 또한 1999년 12월 31일까지 '해적판 책 재고 떨이'를 하면서 책을 팔아치울 뿐이었고, 옳게 계약을 맺으며 책을 내지 않기 일쑤였습니다. 이는 우리 나라 인문책을 내는 다섯손가락에 드는 ㅊ출판사라고 다르지 않았습니다. 나라밖 책을 제대로 인세 계약을 맺지 않으면서 드는 핑계는 이와 같이 계약을 맺어 책을 내면 출판사가 살아남을 수 없다는 소리 하나에, 외화 낭비라는 소리 하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핑계를 들던 우리 나라 책마을에서는 중국에서 한국책을 몰래 펴낸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크게 분통을 터뜨리곤 합니다. 중국에서 한국책을 해적판 책으로 내는 모양새는 1999년까지 이 나라에서 일본책이든 서양책이든 인세를 안 치르고 해적판으로 냈던 모양새하고 똑같은데 말이지요.

2010년대로 넘어선 오늘날 우리 나라는 나라밖 책을 인세 계약할 때에 계약금으로 몇 억에 이르는 돈을 척척 내곤 합니다. 지난날에는 '그런 인세 계약을 하면 출판사 문을 닫아야 한다'며 벌벌 떨던 그 출판사들이 앞장서서 몇 억씩 갖다 바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몇 가지 잘 팔리는 책에만 몇 억씩 척척 갖다 바치는 계약금을 치를 뿐, 우리 인문밭이나 문화예술밭을 넓힐 숱한 책에는 그리 눈길을 두고 있지 못합니다. 무엇보다도 상업성을 가장 앞에 내놓고 있습니다.

 '도라에몽' 해적판 책들. 우리는 이렇게 해적판 책이 넘치는 나라에서 살면서 제대로 된 올바른 번역문화를 맛볼 길이 없었습니다.
'도라에몽' 해적판 책들. 우리는 이렇게 해적판 책이 넘치는 나라에서 살면서 제대로 된 올바른 번역문화를 맛볼 길이 없었습니다. ⓒ 최종규

.. 평소에도 워낙 헌책방을 자주 돌아다니기 대문에 나로선 이외의 수확을 얻는 경우가 종종 있다. 헌책방이라고 하면 보통은 남이 보다 버린 책이 있는 곳으로 아는데, 의외로 생소한 저자의 작품을 발견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물론 대학교재로 쓰는 고전들이 상당수를 차지하지만, 미처 우리 나라에서 소개되지 않은 외국책들이라든지, 때로는 외국서점에서도 고가로 팔리는 희귀한 책이 우리 나라의 헌책방에 버젓이 나와 있는 경우도 있다. 헌책방에서 책을, 즉 어떤 기획거리를 고를 때의 장점은 남들이 미처 모르는 책 또는 잊힌 책까지도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장점은 자료 구입비가 무척이나 싸다는 것이다. 새책으로는 1만 원이 넘는 페이퍼백도 헌책으로는 겨우 2000∼3000원에 구입할 수 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는 의외로 헌책방을 경시하거나 외면하는 풍조가 없지 않은 것 같다 … 물론 나야 일본어를 모르니 필요가 없었지만, 그래도 유용한 자료라고 생각해서 평소 친분이 있는 한 출판사에 구입을 권유했는데, 의외로 시큰둥한 답변이 돌아와서 상당히 실망했다. 만약 책을 사라는 요청이 아니라 술이나 밥을 (나한테) 사라는 요청이었다고 해도 출판사에서 그렇게 시큰둥한 답변을 내놓았을까? ..  (122∼123쪽/박중서)

마땅한 노릇이라 할 텐데, 돈이 있는 출판사는 돈이 있기 때문에 상업성을 좇고, 돈이 적은 출판사는 돈이 적기 때문에 상업성을 노릴 수밖에 없는 얼거리가 단단히 뿌리내리고 있습니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 나라 삶터에 걸맞는 창작책을 펴내는 데에는 돈있는 출판사나 돈없는 출판사나 돈을 들이기 어려운 얼거리가 탄탄히 굳어집니다. 잘 팔리는 책에 몇 억을 들여 계약금을 치르고 척척 펴내면 몇 곱절에 이르는 벌이가 되는 구구단은 할 줄 알지만, 착하게 책을 기획하고 착하게 책을 만들어 착하게 나누려고 하는 마음밭 일구기하고는 자꾸자꾸 멀어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나라안에서는 창작책을 일구는 사람들이 좋은 책 하나를 이루는 글이나 그림이나 사진을 일구어서는 먹고살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출판사는 살림을 꾸리고, 새로운 책은 꾸준하게 쏟아집니다. 창작책보다 번역책에 더 높은 무게를 두고 있다 보니 번역을 할 사람은 아주 많아야 하는데, 번역 일감이 많고 외국말을 다루는 사람(거의 일본말과 영어) 또한 고학력 실업자가 늘면서 제 몫을 제대로 받기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애써 번역을 했다 하여도, 번역한 글이 우리 말과 말법과 말투와 말결에 걸맞는지를 돌아볼 만한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영어 좀 알거나 일본말 좀 아는 사람은 있을지라도, 우리 말과 글을 어느 만큼 깊이 헤아리거나 살필 줄 아는 사람은 매우 드뭅니다.

번역 수요는 많을 뿐 아니라 넘치고, 번역책은 많을 뿐 아니라 넘쳐나고 있으나, 번역을 옳게 할 만한 사회 밑틀이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번역 공부를 하고 번역 밑일을 배우면서 번역 솜씨를 키울 배움터라든지 제도라든지 책이라든지 알차게 서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인데, 번역책만큼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집니다.

 겉그림.
겉그림.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 생각보다 많은 작가들이 상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우리 나라에 알려지지 않은 채 묻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개인적으론 베스트셀러의 몸집이 좀 줄고 좀더 다양하고 고른 책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김밥이 잘 나간다고 뷔페식당의 90퍼센트를 김밥으로만 채울 수는 없지 않은가? 사람들이 좀 골고루 먹고살았으면 좋겠다. 하긴 베스트셀러만 먹기도 빠듯한 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일까? ..  (132∼133쪽/김선희)

'북페뎀' 9호로 나온 <번역출판>을 읽습니다. 우리 나라 번역 문화를 놓고 스물한 사람이 스물한 가지 목소리를 펼쳐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여기를 둘러보고 저기를 돌아보아도 번역책투성이인 우리 나라에서 번역을 놓고 오가는 이야기가 대단히 적기 때문에, <번역출판>이란 몹시 반가운 책일 뿐 아니라, 너무 늦게 나온 책입니다. 앞으로 번역출판을 놓고는 더 많은 이야기와 더 깊은 이야기가 오가야 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 책문화를 비롯하여 '번역출판'뿐 아니라 '번역영화'와 '번역문화'를 두루 짚거나 다루는 이야기가 있어야 한다고 느낍니다.

일본말과 영어에만 얽매인 번역이 아닌, 세계 여러 나라 번역을 골고루 다룰 줄 아는 우리 나라가 되는 한편, 세계 여러 나라 훌륭한 책과 문화를 우리 말글로 알차고 알뜰히 즐길 수 있는 터전을 이룩해야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싶지만, 워낙 우리 나라에는 번역이나 번역출판을 놓고 주고받는 이야기가 아주 드뭅니다. 이리하여 <번역출판>에서 다루는 이야기는 '가벼운 문제제기'나 '번역 실무자 잡담' 눈높이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지난 2005년에 <번역과 번역가들>(열린책들)이라는 책이 옮겨진 적 있는데, 일본사람 쓰지 유미 님이 엮은 <번역과 번역가들>을 떠올리면 <번역출판>은 거의 아무런 이야기조차 짚어내지 못했다는 느낌을 지울 길 없습니다.

번역이란 무엇이고 번역출판이란 무엇인지, 번역문화는 어떠하고 번역 밑틀은 어떻게 짜야 하는가 하는 이야기는 한 가지도 건드리지 못한 <번역출판>입니다. 스물한 사람이 스물한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는 틀은 반갑습니다만, 스물한 가지를 하나로 어우르는 굵직한 벼리가 보이지 않습니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에서 '북페뎀'이라는 기획잡지를 엮어낼 때에는 뜻있을 뿐 아니라 오래도록 깊은 이야기를 나눌 만한 책마을 문화를 다루려고 했을 텐데, 북페뎀 9호인 <번역출판>은 이래저래 아쉬움 한 가득입니다.

.. 번역가를 지망하는 사람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본인이 한국어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그리고 자신이 전공하는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아주 잘 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188쪽/양억관) … 번역가들은 자신의 영어 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매일 독서를 한다. 고전을 읽고 그것을 해석해 주는 관련서적을 읽고 새로운 논평에 계속 귀를 기울이면서 영어 실력을 키우려고 힘쓰는 것이다. 나 또한 시내의 헌책방을 돌아다니면서 번역에 유익한 책들을 열심히 구입하고 있다(200쪽/이종인) ..

제가 거쳐 온 길을 돌아보자면, 저는 통역과 번역을 꿈꾸면서 네덜란드말을 공부하겠다고 다짐하며 ㅎ대학교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이 학교에 들어가 첫 수업을 받은 날부터 모든 꿈과 빛이 무너졌습니다. 아니, 첫 수업을 받기 앞서 새내기 배움터에 갔을 때부터 꿈이건 빛이건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느 누구도 네덜란드말을 놓고 통역과 번역을 할 생각이 없었으며, 이런 일로는 굶어죽을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가 1994년이니 한참 옛날 일이요, 2002년 월드컵을 앞뒤로 했다면 달라졌을 수 있겠지요.

그러나 2002년 월드컵 때 한국 축구단 감독을 맡은 히딩크 님은 네덜란드말이 아닌 영어를 썼습니다. 처음에는 네덜란드 통역을 붙이려 했다지만 통역자가 너무 어리숙해서 그냥 영어 통역자를 붙이기로 했다더군요. 우리 나라에는 아시아에 딱 하나 있는 네덜란드말 학과가 어엿이 있습니다만, 국가대표 축구 감독 통역자로 네덜란드말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붙이지 못합니다. 나라안에 옮겨지는 네덜란드 문학이 적잖이 있으나, 모두들 '네덜란드 책을 독일말로 옮긴 판'을 다시 옮기는 책일 뿐입니다.

사람들이 익히 아는 <안네의 일기>마저 네덜란드 학과 ㄱ교수님이 딱 한 번 '네덜란드말에서 한국말로 옮긴 적'이 있습니다만, 이 책은 거의 안 팔린 채 판이 끊겼고, 우리가 읽는 모든 <안네의 일기>는 '네덜란드말로 된 책을 독일말이나 영어로 옮긴 책'에서 다시 옮긴 판입니다. 네덜란드 그림쟁이 반 고흐 님이 동생하고 주고받은 편지 또한 모두 네덜란드말로 적혀 있습니다만, 이 또한 우리 나라에 옮겨진 반 고흐 님 편지 책은 '영어로 옮겨진 책'에서 옮기기 일쑤입니다. 그나마 '독일말로 옮겨진 책'에서 옮기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반 고흐 님 편지를 묶은 책을 읽다 보면 사람이름이나 땅이름을 엉터리로 옮겨 적은 대목을 자주 봅니다. '네덜란드 말법과 영어 말법'이 다른데, 옮긴이는 네덜란드말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딱 한 번 제대로 번역된 적이 있는 <안네의 일기>. 네덜란드 문학인 안네 일기를 '네덜란드말에서 한국말로 옮긴' 일은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딱 한 번 제대로 번역된 적이 있는 <안네의 일기>. 네덜란드 문학인 안네 일기를 '네덜란드말에서 한국말로 옮긴' 일은 한 번으로 끝났습니다. ⓒ 최종규
책마을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이지만, 스웨덴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작품을 '스웨덴 책을 곧바로 한국말로 옮기는' 일이란 없습니다. 1982년에 종로서적에서 <말괄량이 삐삐>를 펴낼 때에 꼭 한 번 스웨덴말을 한국말로 옮겼습니다만, 오늘날 모든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님 작품은 '스웨덴 책을 독일말로 옮긴 판'에서 한국말로 옮깁니다. 하기는, 아이작 바이셰스 싱어 님 책을 '이디쉬말에서 한국말로 옮길 사람'이 우리 나라에 어디 있겠습니까.

번역책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지만, 정작 번역문화란 찾아볼 길이 없는 우리 나라입니다. 번역문화가 없는데 번역책 문화를 말할 수 없고, 번역책 문화를 말할 수 없는데 자그마한 <번역출판> 한 권에서 번역 이야기를 옹글고 깊게 다룰 수 있기를 바랄 수 없습니다.

다만, 아쉽고 모자라나마 우리네 번역쟁이 삶자락을 돌아볼 수 있는 책이요, 번역쟁이들이 스스럼없이 펼치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한국땅에서 번역을 꿈꾸는 젊은이한테 좋은 길동무가 될 수 있는 책입니다. 모든 길을 보여주지는 못하나, 길자락 하나를 살며시 보여주면서 '번역문화뿐 아니라 다른 문화도 메마르고 팍팍한 한국'에서 대기업 회사원이 아닌 번역쟁이를 바라는 삶이란 얼마나 고달프고 힘든가를 보여주는 가운데, 고달프고 힘들기 때문에 재미있고 보람있는 번역쟁이 삶이기도 하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 누리집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cafe.naver.com/hbooks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 글쓴이는 다음과 같은 책을 써냈습니다.
<생각하는 글쓰기>(호미,2009)
<책 홀림길에서>(텍스트,2009)
<자전거와 함께 살기>(달팽이,2009)
<헌책방에서 보낸 1년>(그물코,2006)
<모든 책은 헌책이다>(그물코,2004)
<우리 말과 헌책방 (1)∼(8)>(그물코,2007∼2009)



계간 북페뎀 6호 - 2004.겨울호 그림책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엮음,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2005)


#책읽기#인문책#번역#번역출판#번역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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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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