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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밀어 작품을 시작하였지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현재 살아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내용의 중심을 맞췄다. 할머니들의 바람은 오직 한 가지…. 응어리진 한(恨)을 다 내려놓고 하늘나라에 가시는 것이다. 이것은 가해자들의 진정어린 사죄와 배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오페라음악극 <이화((梨花) 이야기>의 작곡가 이용주씨의 말이다. 부산시립합창단은 제132회 정기연주회로 상처 입은 영혼을 다룬 <이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 17~18일 각 오후 7시 30분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부산시립합창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음악극 <이화 이야기>를 17~18일 사이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무대에 올린다. 사진은 행사 포스터.
부산시립합창단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다룬 음악극 <이화 이야기>를 17~18일 사이 부산문화회관 중극장 무대에 올린다. 사진은 행사 포스터. ⓒ 부산시립합창단

이 작품은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일본군 '위안부'로 강제 연행된 조선여성들의 기구한 삶을 그린 오페라음악극이다.

 

<이화 이야기>는 기존 오페라 형식에 연극적 요소와 예술합창가곡이 더해진 음악극. 극과 음악의 분리로 이야기의 전개가 뚜렷하고, 특히 서양오페라와 달리 우리의 역사 이야기를 배경으로 사실적이고 한국적인 정서를 호소력 짙은 아리아로 전달하는 '한국형 오페라'라고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선 주인공 강이화(가명)의 친구(순자)가 위안소에서 탈출하며 이화에게 남긴 편지가 소개되는데, 편지 내용은 우리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다.

 

"중국의 허허벌판에서 도망가다 살아남은 사람 없다는 거 나도 다 안다. 하지만 너희들 그거 아니? 내가 도망가기로 결심한 순간부터 살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기 시작한 거? 그리고 얘들아! 내 나이 이제 16세이지만, 난 그 짐승 같은 일본 군인들을 보면서 세상에서 가장 큰 죄가 무엇인지 깨달은 게 하나 있다. 그건. 인간의 영혼을 갉아먹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의식도 갖지 않고 산다는 것이야."

 

순자는 그 일을 "세상에서 가장 큰 죄악이 삶에 대한 의지가 없도록 만들어 버리는 일"로, 그것에 대해 일말의 죄책감도 느끼지 못하는 자들을 "영혼을 갉아먹는 자들"로 표현하고 있다.

 

편지 내용은 단순히 오페라음악극을 위해 작가가 잘 포장해서 만들어 낸 글이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고통스런 외침이며, 여자로서 겪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 속에서 나온 처절한 울부짖음이다.

 

<이화 이야기>는 일본군 '위안부'가 겪은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주인공 이화가 '위안부'로 강제로 끌려가는 과정부터, 전쟁 후에 겪는 삶의 일대기까지 그려내고 있다. 극의 대본은 피해 할머니들의 증언기록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사안의 민감함을 고려해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에 소속된 전문가들로부터 검증과정을 거쳤다.

 

부산시립합창단은 "오직 진실만을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나눔의 집과 일본대사관 수요시위에 참관하며 현장의 분위기를 파악하였고, 관련단체 전문가의 조언을 바탕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였다"며 "처음에는 가해자들의 뻔뻔함에 분노가 치밀어 작품을 시작하였지만,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현재 살아계신 피해자 할머니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가에 내용의 중심을 맞추면서 작품의 표현방법과 방향을 수정하였다"고 설명했다.

 

부산시립합창단은 "이 작품의 목표는 가해자들에 대한 '고발'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미 세계로부터 고발당했기 때문이다. 오직 눈물을 동반한 참회를 목표로 한다. 가해자들의 진심어린 참회를 통해 피해자 할머니들의 한을 풀어 드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음악극엔 이화가 전쟁 후 중국에서 만나 결혼한 중국인 남편 리하이와 나누는 대화도 나온다. 리하이는 흐느낀다.

 

"알아! 다 이해해. 전쟁통에 그런 상처와 과거, 충분히 있을 수 있어. 무엇보다 이화! 당신 탓이 아니잖아? (이화를 안아주며 흐느낀다) 불쌍한 이화. 내가 이제부터 그 상처, 다 씻어줄게."

 

이화와 아이 둘을 낳고 잘살다가 이화의 과거가 밝혀지면서 나눈 고백이다. 피해 할머니들을 바라보는 우리 마음은 리하이와 같을 것이다. 우리가 오페라음악극 <이화 이야기>를 한번쯤은 봐야 하는 이유를 바로 '리하이'의 대사에서 찾을 수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울부짖는다. "일본군 '위안부' 사건은 한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여성들을 상대로 저지른, 인류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행위"라고.

 

이번 공연 지휘는 김강규 부산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수석지휘자가 맡고, 반주는 이승윤·이경미씨가 맡는다. 김나영·강종철씨 등이 주요 배역을 맡아 출연한다.


#부산시립합창단#부산문화회관#일본군 위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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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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