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빗자루 한 개 주시오. 저놈의 나무 때문에 환장하겠소."
아침 일찍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건물 관리인이 하는 말이다. 우리 가게 앞 이면도로 쪽에 심어진 가로수는 내가 봐도 희한한 나무다.
봄에는 여느 나무처럼 연두색 이파리가 빠끔히 얼굴을 내민다. 그리고 녹음이 짙어지는 6월이면 이파리에 윤기가 흐르고 잎이 쌩쌩해 주위에 있는 나무를 기죽게 한다. 10월이 되면 이파리는 빨갛게 물들어 단풍의 향연에 당당히 초대 받는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고통스럽고 비난만 받는 지루한 여정이 시작된다.
이 나무 이파리는 화려한 단풍의 향연이 끝났는데도 떠나지 않고 그 자리를 고집하며 나무에 끝끝내 붙어있다. 그러다가 겨울바람이 불어오면 이파리는 하나 둘 수를 세며 도로 위로 떨어진다.
그때부터 우리 건물 관리인은 매일 낙엽을 쓸어야 한다. 주변 상가 주인들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나무에 열매가 맺히기 시작하면서 또 다른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열매를 따기 위해 발로 차고 심지어는 큰 돌이나 망치로 나무를 두드린다. 어떤 나무는 심하게 훼손되기도 했다.
이 나무는 4월이 돼서야 나무에 끝까지 남아 있던 이파리가 다 떨어진다. 오랫동안 낙엽을 쓸어야하는 불편함을 줌은 물론이고, 1년 중에 이파리가 커지기 전 한 달만 상가 간판을 제대로 볼 수 있는 피해도 준다. 11개월 내내 이파리가 상가 간판을 가려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주니 상인들이 좋아할 리 없다. 그리고 이파리가 야무져 하수구를 막는 경우도 있다.
우리 동네에서 천덕꾸러기인 이 나무는 대왕참나무다. 미국이 원산지로 속성수며 30~40미터까지 큰다. 높은 산에서는 자라지 않지만 공원 등 평지에서는 잘 크며 탄소 흡수량이 많고 나무 재질이 좋아 조경업자들은 나무뿐만이 아니라 열매도 선호한다.
엉성하게 서 있는 나무는 여러 가지 상념에 잠기게 한다. 이 나무가 다른 단풍나무처럼 이미 생명력이 없는 이파리를 버리지 못하고 보듬고 있는 것을 보면 자기를 털어내지 못하는 욕심 많은 인간들 같다.
그리고 이 나무는 물러날 줄 모르는 사람 같다. 특히 선거철이 도래하면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새 잎이 나면서 밀어 내야만 자리를 내 놓는 이파리는 조금 서운 할 때 떠나는 일이 아름다움을 모르는 것이리라.
또한 이 나무는 '무엇이든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함'을 가르쳐 준다. 이 나무들이 공원에 심어졌더라면 손가락질 대신 사랑을 받았을 게다.
이 나무는 주먹구구식인 도시계획의 한 단면도 보여 준다. 나무가 빨리 자라고 키가 커서 나무 위를 지나가는 전선과 케이블선을 자주 옮겨 주어야 한다. 이런 면을 고려하지 않고 이면도로가 있는 상가 밀집지역에 대왕참나무를 심은 것은 탁상행정, 근시안적인 행정의 일면이다.
바쁘게 봄을 나르는 비가 그치면서 터지는 꽃봉오리는 코와 눈을 간지럽게 하는데, 지금 가게 앞 도로는 생뚱맞게도 조락의 계절 가을(?)이다. 어지럽게 떼로 몰려다니는 낙엽을 쓸어 모으는 관리인 아저씨의 사나운 빗질 소리와 긴 한숨 속에 봄이 엉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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