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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8일자 '조선일보'를 보던 중 변희재씨의 「아침논단」이라는 칼럼에서 내 이름 석자를 발견하고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구독률 1위의 조선일보에서, 유명하신 변희재씨가 나와 같은 '듣보잡'의 이름을 직접 거론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몰랐기 때문이다.

변희재씨는 글의 도입부에서 '20대의 반란은 충분히 예견되는 일이었다'며 그 근거로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와 등록금 문제를 언급한다. 이 같은 문제인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 모든 문제를 '20대 스스로 해결하라'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미국과 일본의 대학생들에 비해 '형편없는 독서량'을 반성하라며 훈계한다. 20대가 처한 심각한 사회구조적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그 해법을 독서량 증대에서 찾는 이상한 논리를 보고 있자니 몸 둘 바를 넘어 눈마저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형편없는 독서량'과 그로인한 실력부족이 20대 문제의 원인인가? 20대이자 대학생인 내가 접하는 주변 친구들은 늘 책을 끼고 산다. 다만 고시생들은 고시준비를 위한 책을, 취업 준비생들은 미시경제학 책과 문제풀이집을, 저학년 학생들은 전공 서적을 끼고 살 뿐이다. 그러나 이 많은 책들을 읽고 공부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 스스로가 이 책들을 진짜 '책'으로 여기지 않는다.

왜냐하면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와 폭넓은 역사적 경험을 습득할 수 있는 책이 아닌, 더 나은 경제적 생활조건을 보장받기 위해 무조건 달달 외우고, 시험문제에 이미 정해진 답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해야하는 '죽은 지식'만이 가득한 책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우리는 이러한 '죽은 지식'이 가득한 책들만을 보고 있는가. 쉽게 말해서 먹고 살기 힘든 세상 때문이다. 변씨가 동의했던 최악의 청년실업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더 나은 학점, 더 나은 영어점수, 이른바 우월한 스펙을 쌓는 것에 모든 것을 투여하도록 강요받기 때문이다.

경쟁에서 뒤처지면 사회에서 낙오자가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우리를 더욱 무조건적인 경쟁에 몰입하게 만들며, 이 경쟁이야말로 인문학적 소양을 죽이고, 세상을 올곧게 바라볼 지혜를 죽이고, 20대만의 젊은 창발성을 죽이고 있다. '형편없는 독서량'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현상이며 결과이다. 변희재씨가 독서를 많이 하라고 훈계하기 전에 왜 대학생들의 독서량이 형편없어졌는지 곰곰이 생각해보길 권한다.

또한 변씨는 대학생들이 스스로를 위한 정책들을 수립하고 관철시킬만한 '실력없음'을 지적하며, 반성과 성찰을 통해 실력을 쌓고 치열한 정책 시장의 경쟁을 통해 이를 극복하라고 훈계한다. 그러나 지금 20대 문제가 정말 '정책'이 없어서, 혹은 '대안'이 없어서 발생했는가? 혹은 정책이나 대안이 부족해서 지금의 문제들을 완화시키지 못하고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정책이 아니라 오히려 '철학'이다. 사람, 그리고 진정한 진리추구가 아닌 돈과 시장이 중심이 된 대학에서 창발적인 정책대안이 탄생할 리가 만무하다. 취업준비를 위한 대학에서 진리추구와 자유로운 학문탐구의 대학으로 변하지 않으면 어떤 철학도, 상상력도, 대안적 담론도 형성될 수 없다. 모든 책임을 개개인의 실력부족, 독서량 부족으로 치부하기 이전에, 개인들을 무력하게 만드는 사회구조적 문제, 대학구조적 문제에 대한 통찰이 필요한 때이다.

변씨는 칼럼에서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을 '낡은 도식'이라고 치부했지만, 나는 앞서 발표한 글에서 오히려 정작 낡은 것은 신자유주의 그 자체라는 것이 실제 현실에서 증명되기 시작했음을 지적했다.

마지막으로 변희재씨에게 권한다. 세계적 석학들이 어째서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언급하며 다른 대안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는지 잘 살펴보길 바란다. 동시에 '미국식!'을 외치면서도 미국과 정반대로 건강보험을 민영화시키려는 집권세력과 국내 신자유주의자들의 시대변화에 대한 둔감함을 깨닫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독서량을 높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더 프로답게 반란하라'는 등의 여유는 순식간에 20대의 반란에 잠식당할지 모른다.


#변희재#아침논단#조선일보#신자유주의#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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