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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통일시 시인들이 2년 만에 ‘분단과통일시’ 편집동인란 이름으로 다시 모여 지난 2월 끝자락에 ‘분단과통일시’ 제2집 <동행>(예감)을 펴냈다.
분단과 통일시시인들이 2년 만에 ‘분단과통일시’ 편집동인란 이름으로 다시 모여 지난 2월 끝자락에 ‘분단과통일시’ 제2집 <동행>(예감)을 펴냈다. ⓒ 이종찬

그래서 어쩌라구요
손을 놓지 못하는 게 아니라
본디 놓을 수 없는 게 손이란 걸
아는데 어쩌라구요

자를까요 싹둑?
뚝 분질러 드릴까요?
그러면 그리움도 놓을 수 있다고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당신?

이 꽃 저 꽃 닮게 피는 땅인데
기침소리 노랫소리 죄다 닮은 민족인데
이 말 저 마음 단방에 통하는 조국인데
어쩌라구요 -20쪽, 권선희 '뭘 어쩌라구요?' 몇 토막

"이 땅의 민주화는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며, 더구나 분단체제는 아무것도 해결된 것이 없다"는 데 뜻을 같이 하며 지난 2007년에 한국작가회의 소속 시인들이 만든 '분단과통일시'. 이들이 이 모임을 만든 때는 노무현 정부 때다. 게다가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남북관계는 남한이 이끄는 '햇볕정책'으로 그리 꽁꽁 얼어붙은 상태가 아니었다.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평양 관광 등, 북한에 가고 싶은 사람은 신청만 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갈 수 있어 곧 한국통일이 이루어질 것처럼 기대에 부풀어 있을 때였다. 근데 왜 이들은 민주정권 10년을 겪으면서도 이 땅에 진정한 민주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분단을 풀 아무런 실마리도 없었다고 여겼던 것일까.

이들이 이렇게 주장한 까닭은 다름 아닌 남북을 둘러싼 외세 때문이었다. 남북 스스로 통일을 이루기 위해 아무리 노력한다 해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이 곱지 않은 눈초리를 보내기 때문이었다. 민주화도 마찬가지다. 반북이데올로기로 철저하게 무장한 보수우익세력이 너무 많아 늘 민주화에 걸림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때 참가한 동인들은 시인 이적, 김윤환, 박희호, 송문헌을 합쳐 4명뿐이었다. 이들은 그때 여러 시인들로부터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공존하는 시대, '햇볕정책' 시대에 아직도 '분단'과 '통일'이란 낡아빠진 주제를 가지고 시를 쓰고 있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들은 마치 백년 앞을 내다보기라도 하듯이 똘똘 뭉쳐 <분단과통일시> 제1집을 냈다.      

아니나 다를까. 그해 12월 대통령 선거에서 '10년 민주정부'는 정말 맥없이 주저앉았다. '햇볕정책'도 곧바로 사라졌다. 금강산 피살사건과 서해교전, 북핵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꽁꽁 얼어붙기 시작했다. 앞으로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는 10년 뒤로 물러섰고, 시민들과 문화예술인들은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와야 했다. 그러니까 <분단과통일시> 시인들 주장이 곧바로 맞아 떨어진 것이다.

분단극복과 통일을 위한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나라

분단과통일시 이번 시집은 북핵문제 등으로 꽁꽁 얼어붙고 있는 남북에 ‘분단’ 과 ‘통일’이란 초에 불을 붙여 따스한 봄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분단과통일시이번 시집은 북핵문제 등으로 꽁꽁 얼어붙고 있는 남북에 ‘분단’ 과 ‘통일’이란 초에 불을 붙여 따스한 봄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 이종찬
"MB 정권이 들어서면서 남북은 꽁꽁 얼어붙었고, 이 글을 쓰는 지금은 국민의 정부 참여 정부 전직 대통령 두 분까지 저 세상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직은 시적 상상력의 자유와 풍요로운 문학의 자유를 누릴 시기는 아니라는 게 확실합니다. 우리는 다시금 치열했던 7, 80년대의 문학정신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책머리에' 몇 토막

지난 2007년 봄 <분단과통일시>란 이름으로 제1집을 냈던 시인들이 2년 만에 '분단과통일시' 편집동인이란 이름으로 다시 모여 지난 2월 끝자락에 '분단과통일시' 제2집 <동행>(예감)을 펴냈다. 이번 시집은 북핵문제 등으로 꽁꽁 얼어붙고 있는 남북에 '분단' 과 '통일'이란 초에 불을 붙여 따스한 봄기운을 불어넣고 있다.

<동행>에는 제1집에 실렸던 시인 박희호 송문헌이 빠지고, 시인 권선희 김윤환 김창규 김판용 박은산 박석률 석여공 이소리 이적 진평주를 합쳐 모두 10명이 동행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권선희는 구룡포에서, 김창규는 청주에서, 김판용은 전주와 고창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들이다.

이번 시집에는 권선희 '춤추는 분단' 외 9편, 김윤환 '금강산은 떠나고' 외 9편, 김창규 '오월계단' 외 9편, 김판용 '슬픈 유희' 외 11편, 박은산 '대추리' 외 9편, 박석률 '겨레의 아빠가' 외 7편, 석여공 '냉이꽃' 외 10편, 이소리 '기다림' 외 9편, 이적 '은밀히' 외 8편, 진평주 '마침내 기차는 달린다' 외 8편 등 모두 99편이 실려 있다.
         
이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지금 현실은 어떠한가. 분단극복과 통일을 향한 그 민주주의마저 위협받고 있다"라고. "말하고 듣는 자유마저 감시당하는 과거로 회귀된 세상에 살고 있다"라고. "우리는 이 땅의 현실에 대해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특히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사대주의를 항상 감시하며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협하는 이 땅의 구조적 모순을 절대 외면치 않을 것"이라고. 

통일은 차 없이도 이고, 지고, 끌고, 엎고 가야 한다

권선희는 구룡포에서 짙푸른 바다를 애인으로 삼아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래서일까. 그는 바다를 통일에 빗대며 "바다, 그 안에 그녀 있다는 믿음이 / 파도를 살게 하는 거래요"(파도 이야기)라고 쓴다. 여기서 '바다'는 한국통일을 뜻하는 것이고, '그녀'는 남남북녀처럼 북한을 말하는 것이다. '파도'는 물론 남한이다.    

김윤환은 시인이자 목사이자 대학교수이다. 그는 어머니와 금강산을 다녀오기로 약속한다. 하지만 "어느 여인이 새벽 산책길에 느닷없이 총 맞아 죽었다는 정말 느닷없는 뉴스"(금강산은 떠나고) 때문에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해 안달한다. "노무현 김정일이 아니어도 갈 줄 알았는데 뭔 나라가 이렇노?"라며 2MB를 원망하는 어머니 쓰린 마음을 헤아린다.

청주에서 목회를 하면서 시를 쓰고 있는 목사시인 김창규는 꿈에 본 그 백두산 정상에 올라 천지를 내려다보며 외친다. "제국주의 강도들에게 선전포고를 하고 / 총에는 총, 칼에는 칼 / 나를 죽이려는 어떤 죽음의 세력도 /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백두산 장군봉에서)며, 통일은 남북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는 마음을 꼭꼭 다진다. 

김판용은 교육 일선에 서서 '제대로 된 교육'을 위해 손땀, 발땀을 흘리며 시를 쓰는 시인이다. 그는 남북통일은 "차 없이도 이고, 지고, 끌고, 엎고...... / 길이 길이 되도록"(동행) 나아가야 한다고 쓴다. 그래야 "우리가 가는 그 길가로 / 한없이 걸어오는 동행의 그들"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동행의 그들'은 북한이다.

박은산은 오랜 시업을 시단이라는 틀을 벗어나 제 홀로 가꾸며 한동안 시단을 비우고 있었던 시인이다. 그는 "울 / 안에 너와 내가 있다 / 우리 / 안에 너와 나 우리가 갇혀 있다 // 바람은 경계가 없다"(울)며, 남북이 스스로 울타리를 치고 서로 보지 않으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되묻는다. 그는 남북이 경계를 죽여야 비로소 진정한 통일이 온다고 믿는다.   

박석률은 전사시인 김남주와 함께 '남민전'에 참여했던 시인이다. 그는 "'너를 또 버리고 떠난다'는 구순에 든 아버지의 / 한 서린 이별사를 / 백년 세월 가도록 또 들어야 할 것인가"(이 7월에는)라며, 남북 이산가족이 금강산에서 헤어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가슴을 친다. 버스 창 너머 마주 잡은 저 손목들이 모두 우리 형제들 손목 아니냐며.

3.8선 없는 지도에 눈물방울로 지도 그린다

지난해 첫 시집 <잘 되었다>를 펴낸 뒤 와각을 애인처럼 꼭 품고 사는 석여공은 시인스님이다. 그는 "흙 속에서 뽑힌 / 미끈한 그것이 그런 줄 몰랐다 / 허연 몸뚱아리가 토막토막 잘리더니 / 벌겋게 화장을 하네"(무우)라며, 무가 깍두기로 탈바꿈하는 모습을 남북관계에 빗댄다. 보수우익세력은 그 피범벅이 된 깍두기를 낼름낼름 잘도 받아먹는다는 것이다.  

이소리는 첫 시집 <노동의 불꽃으로>를 펴내며 박노해, 백무산과 더불어 우리 노동문학을 노동현장에서 이끈 시인이다. 그는 "저 푸르른 하늘 푸더덕 나는 장끼가 / 무심코 떨군 해무리 하나 들고 / 달 뜨도록 기다리겠어요"라고 가슴에 새긴다. 남북관계는 무심코 내뱉는 말 한마디에도 큰 상처가 될 수 있기에 그 상처가 아물 때까지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민통선에서 '민통선평화교회' 담임목사를 맡고 있는 이적 시인은 민통선을 "남으로도 막히고 / 북으로도 막힌 또 하나의 나라"라며 그곳에서는 온통 울음소리만 들려온다고 쓴다. 그는 "남으로 북으로 / 끊어진 실핏줄을 찾으러 / 인간도 짐승도 달빛마저 / 울부짖는 시간"에 둥근달이 조용히 떠오른다고 여긴다. '둥근달'은 한국통일이다. 

진평주는 세상살이를 속으로 곰삭히며 시란 텃밭을 홀로 고랑고랑 갈구고 있는 시인이다. 그는 "아버지 고향이 황해도라는 한 사내"가 "연신 북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 허공에선 갈매기 날고"(화진포) 있는 모습에서 분단이 남긴 깊은 상처를 곱씹는다. 그리하여 "3.8선이 없는 지도에 / 눈물 방울방울로 지도를 그린다." 그 지도는 3.8선이 없는 한반도다.

분단과통일시 <동행>에는 제1집에 실렸던 시인 박희호 송문헌이 빠지고, 시인 권선희 김윤환 김창규 김판용 박은산 박석률 석여공 이소리 이적 진평주를 합쳐 모두 10명이 동행하고 있다.
분단과통일시<동행>에는 제1집에 실렸던 시인 박희호 송문헌이 빠지고, 시인 권선희 김윤환 김창규 김판용 박은산 박석률 석여공 이소리 이적 진평주를 합쳐 모두 10명이 동행하고 있다. ⓒ 이종찬

원로시인 김규동 선생이 말하는 '10인의 초상'

"3년 만에 다시 2집을 선보입니다. 몇몇 시인은 빠졌고, 새로운 시인들이 몇 분 더 함께 자리를 빛냈습니다. 우리는 지구상에 꼭 하나 남은 이 땅의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민주주의가 없이는 이루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시어가 다소 거칠고 공격적이더라도 실용적 문학정신에 더더욱 충실할 것입니다."-'분단과통일시' 편집동인

원로시인 김규동 선생은 '10인의 초상'에서 "권선희는 서정시의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가. 그것은 간소미와 침묵의 세계"라고 했고, "김창규는 보는 사물과 그 비창의 세계는 가난에 짓눌린 것들이나 신생의 새벽이 당도하리라는 우리들의 합창을 듣고 사람들 함께 눈을 뜬다"라고 평했다. 

김규동 선생은 "박석률은 무릇 낙천주의를 경계하고 있다. 따라서 소재를 구하는데 있어서도 주의를 기울이는 시인"이라 했고, "박은산은 어머니가 읽어보고 누이가 읽고 삼촌도 와서 한번 쭉 훑어본 원고들이다. 무궁무진 시가 많이 씌어져서 더럭 겁이 나는 때가 있다"고 적었다.

석여공에 대해서는 "불교는 석여공이 시로 가는 길에 바람과 비, 햇빛을 던진다. 이 길은 그가 혼자 가는 길"이라 했고, "이소리는 천리를 마다 않고 시가 사는 집을 찾고 산천을 찾아 헤맨다. 방황인가? 아니다. 이것은 전진"이라 썼다. 진평주는 "어둠을 밝히는 횃불로 있다. 시인은 현실을 더듬거리며 쓰고 있는 것"이라고 되짚었다.

이적에 대해서는 "분단문제를 시세계에 끌어들이되 관념이라기보다는 정감과 의지로서 그 일을 행한다. 이것은 우리들에게 있어 불변의 진리"라 했고, 김윤환에 대해서는 "세상 돌아가는 소식에 밝았으면 하나 그가 시인이기 때문에 그 일이 잘 아니되는 듯싶다"고 말했다. 김판용에 대해서는 "김판용의 예술은 조각가가 대리석을 쪼아내는 과정을 거치듯 어떤 여백의 발견에 힘쓰고 있다. 지우고 깎는다"고 적었다.

'분단과통일시' 제2집 <동행>은 극우보수주의자들 때문에 민주화가 10년 저 너머로 후퇴한다는 경고와 함께 진정한 한국통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외세가 아니라 남북 스스로 이루어야 한다는 것에 방점을 찍는다. 이 시집이 가장 돋보이는 것은 시인과 스님, 목사, 교사, 주부, 출판인 등 직업과 종교에 관계없이 민주화와 남북통일로 가는 길에 동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편, 15일(목) 저녁 7시 인사동 '시인'에서 분단과통일시 제2집 <동행>과 김윤환 두 번째 시집 <까띠뿌난에서 만난 예수>(오마이뉴스 4월 8일자) 합동 출판기념회가 원로시인 김규동 선생을 모시고 열린다. 주최는 '한국문학평화포럼(회장 홍일선)이며, 주관은 '분단과통일시' 편집동인 10명이다.


분단과 통일시 - 동인지 제1집

김윤환.박희호.송문헌.이적 지음, 화남출판사(2007)


#분단과통일시#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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