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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전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TV·라디오 생방송 연설을 하던 중, 희생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연설은 KBS, MBC, SBS, YTN, MBN 등 5개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일 오전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TV·라디오 생방송 연설을 하던 중, 희생장병 46명의 이름을 일일이 호명하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날 연설은 KBS, MBC, SBS, YTN, MBN 등 5개 방송사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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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이 눈물을 흘렸다. 지난 19일 천안함 침몰 사고와 관련 연설 중에 사망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면서다. 조악한 연기라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그도 사람인지라, 눈물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 '46명'이라는 숫자, '희생자'나 '사망자'라는 추상적 표현이 아닌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을 때, 어찌 슬픔을 참을 수 있었을까?

한국전쟁에서 300만 명이 죽었다는 말에 덤덤하던 이들도 노근리 쌍굴다리에서 죽어간 정씨 가족 이야기에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숫자'가 아니라, '조국을 위한 희생'이라는 거대한 언어가 아니라, 그 속의 '사람'을 통해서만 우린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나눌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최근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면, 우린 그들에게 '사람'으로 다가가지 못하고 있다. 천안함 침몰 사태 이후 몰아치는 군사주의 광풍 속에서 그들은 조국을 지키다가 희생된 '영웅'으로, 잊지 않겠다는 맹세 속에 고정된 '희생자'로 박제화되고 있다. 그 어디에도 '사람'으로서의 46명의 젊은이는 없다. 조국을 위해 죽어야했던 '대한민국의 아들'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북한 연계설을 흘리며 '북풍'이라 불리는 안보정국을 꿈꾸는, 그래서 피비린내 나는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이들의 게걸스러움은 너무 노골적이어서 차라리 정직하다. 때문에 그 게걸스러움을 비판하는 것은 '안전'하다. 그러나 게걸스러움을 비판하는 우리 안에서조차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군사주의를 직시하는 일은 '불편'하고 '위험'하다. 하지만 이 불편함과 위험함을 감수해야, 순고한 희생이라 추앙된 영웅이 아닌 차디찬 물속에서 고통스러웠고 무서웠을 그들을 사람으로서 말하고, 기억할 수 있다.

죽은 자의 말을 이어가기

군인이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아무리 조국과 국가를 위한 희생이라 미화하며 마취시키려 한다고 해도, 신체를 가진 사람인 이상 상처입고 죽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를 잠재울 수는 없다. 그러나 이 당연한 두려움은 압도적인 권력의 억압 앞에 자신의 목소리를 갖지 못해왔다. 군대를 가지 않은 것은 단순한 범죄가 아니었다. 군부독재 하에서 병역은 '도덕'이 되었고, 누구나 군대를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면서도 아무도 공적인 공간에서 그 말을 꺼낼 수 없는 "신성한 병역"의 담론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폭력이 자신의 몸을, 우리의 가족과 친구의 몸을 삼킬 때 우리는 소리를 낼 수밖에 없다. 군대와 군인의 본질이 적나라케 드러나는 순간, 슬픔과 두려움 속에서 국적 없는 '난민'의 목소리가 등장하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죽음인가, 군대라는 것은 누구를 지키고 있는가, 왜 내 자식이 비명횡사를 당한 것인가? 그러나 이 죽음이 '순고한 희생'이라는 검은 상자 속에 갇히면서 '난민'의 말 역시 봉쇄된다.

사람으로서 46명의 젊은이에게 다가가는 것은 봉쇄된 '난민'의 말을 이어가는 것이다. 그들의 마지막 유언은 "조국은 우리를 기억할 것이다"가 아닌 "무섭다, 살고 싶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후자의 말은 "대한민국의 아들"로서는 가져선 안 될 목소리였다. 누가 죽은 이의 말을 정해주는가? 누가 침묵을 강요하는가?

숭고한 희생 속에서 강요된 침묵

 19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함미부분의 절단면을 포장으로 씌운 채 육상거치를 위한 크레인 작업이 한창이다.
 19일 오후 경기 평택시 포승읍 원정리 해군 2함대사령부에서 천안함 함미부분의 절단면을 포장으로 씌운 채 육상거치를 위한 크레인 작업이 한창이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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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는 죽음을 미화해야 한다. 대통령을 비롯한 관료들은 최고의 예우를 다짐한다. 장례식장에 모든 정치인들이 총출동하고, 유족들의 손을 잡고 어깨를 두드린다. 어떤 정신 나간 인간들은 '인증샷'까지 찍는다. 그러나 죽은 가족들이 이를 바랄까? 제 자식 장례식장에서 대통령 손을 잡아봐서 기쁠까? 대통령은 눈물을 보이면서 이들을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앞으로 단 한 순간도 이 죽음을 잊지 못할 이들은 말하지 못했다. 가장 고통 받는 이들의 목소리는 없었다.

죽음을 미화하는 이유는 젊은이들을 계속 군복을 입혀 데려가야 하기 때문이다. 죽더라도 철저하게 보상해주겠다, 부모님 손 꼭 잡아 주겠다, 세상에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미화'의 본질은 폭력이다. 울분에 찬 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외치며 뛰어들자, 헌병들은 총으로 그들을 막아섰다. 정부의 올바른 대응을 촉구하는 집회는 봉쇄되었다. 유가족들은 대한민국을 용서할 수 있을까?

숭고한 희생의 미화가 각본대로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가족들 역시 장례식장에서 대통령의 위로에 눈물을 흘리면서, KBS가 모으는 국민성금에 감동받고, 한화가 주는 '유가족 취업특혜'를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꿋꿋하게 살아가야 한다. 죽은 장병들의 목소리가 처음부터 정해졌듯이, 유가족들의 역할도 선을 넘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마음은 딱 하나였다. 왜 죽었는지 알려 달라. 결국 들러리 밖에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합동조사단의 참여를 포기하기로 했을 때, 그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잊지 않겠다고 쉽게 말하지 말자

우리는 너무 쉽게 "그대들을 잊지 않겠다"고 한다. 기억은 정치적인 일이다. 무엇을 잊지 않을 것인가? 국군 장병의 숭고한 희생? 그 곳에 '사람'은 없다. "잊지 말자 6·25"를 외치며 살아오고, 평화박물관이 아닌 전쟁박물관만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우리는 또 이들을 희생을 딛고 만들어지는 투철한 안보정신만을 기억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해군 천안함 함미가 인양된 지난 15일 오후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의 시신이 의무대에 도착하자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해군 천안함 함미가 인양된 지난 15일 오후 평택 해군 2함대에서 의 시신이 의무대에 도착하자 유가족들이 울부짖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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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추웠을까? 얼마나 무서웠을까? 누구를 원망했을까? 사람으로서의 그들의 목소리는 철저한 통제 속에서 사라져가고 있다. 초계함은 왜 그곳에 갔을까? 국방부는 왜 정보를 통제할까? 이런 맥락들이 역시 기억의 맹세 속에는 없다.

통곡의 시간을 기억해야 한다. 자식의 시체가 태극기에 싸여 오자, "왜 죽어왔어"라고 외치는 가족들 앞에서 최고 수준의 보상금 이야기를 꺼내는 권력의 천박한 본질을 기억해야 한다. 죽은 이들이 하지 못한 말은 이어가는 것이 남은 자의 몫이다. 조국을 위해 희생되었다고 말하지 말자. 이유도 모른 채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이들은 대한민국을 원망했을 지도 모른다. 희생이란 이름 속에서 가려지는 그들의 두려움과 억울함을 기억하자.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이들은 단 한 번도 희생한 적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자.

진보적 언론에 부탁한다. 원인규명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 걸음 더 나아가주길 바란다. 고통을 담아주길, 그래서 우리가 진정 기억해야 할 것을 전해주길 바란다. 일본의 진보언론들은 야스쿠니를 비판하기 위해서 일본 총리와 관료들의 참배 여부만이 아니라, 야스쿠니 앞에서 "살인자, 내 아들을 살려내라"라고 외치는 전사자 가족들의 말을 담기 위해 뛰었다.

미국의 반전 단체 중 "Not in Our Name"이란 단체가 있다. 이라크전 희생자 가족들이 주축이 된 단체로서, 우리의 이름으로 전쟁을 하지 말하는 것이다. 이번 천안함 침몰 사건 유가족들은 어떤 결론이 나와도 군사적 공격을 반대한다고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희생과 고통이 없길 바란다는 것이다. 궁극의 슬픔을 겪은 이들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감히 조금이나마 공감하고 나눠야 할 것은 바로 이 슬픔이다.


#천안함#군사주의#군인#희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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